[취재수첩] 농장, 시장, 국감장

입력 : 2019-10-05 13:17

“올해는 포기했어요.” “버린 거죠, 뭐. 올해는….”


농장과 시장 등 올 한해 숨 가쁘게 돌아갔던 농산물 생산·유통 현장에서 유독 많이 들었던 말이다. 신바람과 자부심이 있어야 할 곳에서 마주한 건 이같은 자조와 한숨이었다.


실제로 올해 역대 최저 물가상승률의 일등공신(?)은 농산물이었다. 8월 소비자물가는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0.038% 떨어졌다. 9월엔 낙폭이 확대돼 0.4%나 하락했다.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은 1965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봄과 여름을 거치는 동안 대파·양파·마늘·자두·복숭아·배추·무·감자·사과 등 출하되는 족족 값이 폭락했다. 최근 80일 만에 다시 찾은 지방의 마늘 산지공판장 시세는 여전히 바닥이었고,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선 저장양파 경락값이 1㎏당 평균 400원대로 햇양파 홍수출하 시절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른 추석과 불리한 날씨로 판매가 부진했던 조생종 사과는 재고가 넘쳐나 울상이었고, 최근엔 건고추까지 값하락 대열에 동참할까 산지가 노심초사 중이다. 농장과 시장의 이런 모습들을 지면에 활자로 부지런히 옮긴다고는 했지만 현장이 겪은 고통의 10분의 1이라도 표현했는지 되묻는다면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아우성인 현장과 달리 정부는 농장과 시장에 냉담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후보시절 “농업은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한 대통령은 그 흔한 제철농산물 시식행사 한번 벌이지 않았고, 정치인 출신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역구 챙기기에 더 분주한 모습이었다.


대규모 시장격리(산지폐기)로 곤욕을 치른 농식품부 실무자들도 농민 주머니 사정이 얼마나 나빠졌는지보다는 예산 주판알 튕기는 데 급급했다.


30년 넘게 농식품분야 정통관료로 일해온 현 장관도 현장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는 인색해 보인다. 오히려 최근 고랭지배추값이 날씨악화에 따른 출하물량 감소로 일시적으로 급등하자 수매비축한 저급품 봄배추를 번개처럼 시장에 유통시켰다. 또 헐값일 때는 잘 찾지도 않던 서울 가락시장을 고위 관계자가 발 빠르게 방문하는 모습은 농가들을 허탈하게 했다.


2019년 국정감사가 2일 시작됐다. 20대 국회 마지막 국감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국내 첫 발생, 검찰개혁을 둘러싼 여야 대립 등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그걸 바라보는 농업현장의 속내는 심란하다.


현재진행형인 농산물값 폭락의 실태를 국민적 공론의 장에 올려놓기 위해서라도 국감장을 경남 창녕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경북 서안동농협 농산물(고추)공판장, <홍로> 사과 재배농장 등으로 차라리 옮겨보면 어떨까. ‘유통은 버려진 자식’이란 자조가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김소영 (농민신문 산업부 차장) spur222@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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