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가락시장의 ‘진짜 위기’

입력 : 2019-08-19 00:00


농업계에서는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을 향해 10년 가까이 똑같은 비판을 이어오고 있다. 유통환경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데 ‘중앙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은 제자리걸음만 반복한다는 것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거래제도를 두고 갈등도 불거졌으나 결국 도매법인과 중도매인 모두 경매에만 매달려왔다”며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주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가락시장 종사자 사이에서도 일부를 빼면 위기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말로는 출하자의 권익보호과 농산물 유통발전을 내세우지만 아무도 기득권은 내려놓지 않는다. 당장 도매법인은 경매에 더 치중할 뿐 정가·수의매매 내실화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중도매인 역시 매매참가인의 거래참여에 여전히 높은 벽을 세워두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위기니 어쩌니 해도 여전히 가락시장이 농산물의 ‘기준가격’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막강한 기능이 여전한데 위기가 와닿을 리 없다. 지금도 그날그날 매겨지는 경락값이 수급·소비 동향을 반영한 결과물이자 낙찰과 함께 누구에게나 공개되는 가장 투명한 유통정보로 받아들여진다.

그건 가락시장 바깥에서도 매한가지다. 전국 공영도매시장 가운데 가락시장은 품목별 경매시간이 가장 빠르다. 다른 도매시장에서는 가락시장 경락값을 확인한 다음 거래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산지가 소비지와 직거래를 할 때도, 정부가 농산물 수급상황을 가늠할 때도 가락시장 경락값부터 들여다본다.

게다가 올해에만 가락시장 도매법인 두곳이 500억원을 훌쩍 넘기는 돈에 팔렸다. 경영진 입장에서야 기존처럼만 해도 회사가치를 키울 수 있으니 투자에 나설 이유가 없다. 거래물량 확대에만 힘써도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수수료사업자가 아닌가.

결국 정부가 나서 칼을 빼 들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가락시장 경락값만 기준가격으로 쓰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로컬푸드직매장 거래가격과 공공급식 납품가격까지 반영한 새로운 기준가격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가락시장이 지닌 고유한 기능을 뺏는다는 의미”라며 “사실상 가락시장을 향한 경고신호로 읽힌다”고 풀이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산기구 설립으로 도매법인과 도매법인, 중도매인과 중도매인 사이의 경쟁도 강화할 방침이다. 정가·수의매매 내실화를 위한 제도개선 역시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정책이 올 연말께면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제도개선 작업에 참여 중인 한 전문가는 “지금껏 가락시장이 겪어보지 못한 혁신적인 변화가 곧 찾아올 것”이라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매법인과 중도매인 모두 도태가 불가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락시장도 스스로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안주했다간 도매법인이든 중도매인이든 ‘진짜 위기’에 직면할지 모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박현진 (농민신문 산업부 기자) ji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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