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워

입력 : 2018-12-07 00:00


며칠 전 충남 홍성에서 한 농민을 만났을 때다. 그는 김장철만 되면 울화가 치밀어 화병이 도질 지경이라고 했다. 올해 역시 가을무를 재배했다는 그는 김장철이 거의 끝나가는데도 수확을 반도 못한 채 포기했다고 하소연했다. 워낙 시세가 낮다보니 출하 경비와 인건비도 건지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사정이 이런데도 농촌현실은 외면한 채 자극적인 보도만 하는 언론의 행태와 정부 대책을 보면 더욱 화가 난다며 그는 가슴을 쳤다.

사실 김장철을 앞둔 10월초부터 대다수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김장 관련 뉴스를 쏟아냈다. ‘배추·고춧가루값 폭등 올해 김장 비상’ ‘차라리 사먹고 말지…김장포기 가정 늘어’. 지금도 인터넷 검색창에 ‘김장’이란 두 글자를 치면 이런 제목의 뉴스가 넘친다. 심지어 일부 신문은 김장을 포기한 사람을 뜻하는 ‘김포족’이란 용어를 자연스럽게 지면에 옮기기까지 했다.

김장을 놓고 이렇게 ‘위기감’이 조성되자 정부는 11월6일 김장채소 수급안정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이 대책을 발표하면서 배추와 무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급이 줄어드니 값이 오를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김장이 집중되는 시기에 배추·무의 비축물량 등을 활용, 공급량을 늘려 가격안정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값을 떨어뜨리겠다는 뜻을 가격안정이라는 표현으로 치장한 것이다.

이후 김장채소값은 뚜렷한 내림세로 돌아서더니 폭락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 때문에 농촌에선 언론과 정부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높다. 채소값이 조금만 오르면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고, 정부는 큰일이라도 난 듯 가격 낮추기에 돌입하지만 농민들이 가격하락으로 시름에 잠겨 있을 땐 대책마련에 인색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자 정부는 4일 배추 3000t과 무 4000t을 긴급 수매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배추·무 수급안정 대책을 발표했지만 농가 반응은 시큰둥하다. 김장철이 다 끝나가는 시점에 나온 대책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김장채소가격 등 밥상물가는 서민경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언론과 각종 기관, 정부에서 많은 관심을 갖는다. 올해도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4인 가족 기준 김장비용이 전통시장을 이용하면 25만1400원 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근거로 김장김치 먹는 기간을 90일이라고 가정하고 단순 계산을 하면 한명당 하루에 698원, 끼니당 겨우 232원 드는 셈이다.

농민들은 한잔에 2500~5000원 하는 커피값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김장채소값이 비싸다고 떠드는 언론도 얄밉지만, 수급안정 대책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을 해가며 가격 낮추기에 앞장서는 정부를 더 원망한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옛 속담이 꼭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김광동 (농민신문 전국사회부 선임기자) kimgd@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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