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양봉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

입력 : 2018-08-10 00:00

<꿀벌과 철학자>. 기자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다. 양봉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로서 가져야 할 상식에 도움이 될까 싶어 고른 책인데 내용이 제법 흥미롭다. 꿀벌의 독특한 생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산업적 측면으로만 바라봤던 꿀벌의 가치에 철학적인 시각을 더해준다는 점에서 새롭다.

올해는 그야말로 양봉의 수난시대였다. 봄철 저온현상으로 최대 밀원인 아카시아꽃이 많이 피지 않았다. 당장 아카시아꿀 수확량은 2017년의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9월까지 싸리꿀·감로꿀 등의 수확이 남아 있지만 전문가가 아니라도 올해 전체 꿀 수확량이 평년과 견줘 크게 떨어지리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다른 모든 가축과 마찬가지로 요즘은 폭염이 문제가 되고 있다. 더운 날씨에 등검은말벌이 기승을 부리며 꿀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10년 동안 근절되지 않고 고질병이 돼버린 낭충봉아부패병 역시 토종벌농가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다. 병이 발생해도 살처분을 꺼리는 몇몇 농가 때문에 인근의 벌들이 모두 감염되곤 하지만, 이들을 탓하기도 어렵다. 살처분은 강제사항이 아니고, 올해부터 적용된 가축보험 특약은 아직 홍보가 덜 돼서다. 벌통을 태울 만한 동인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 몇가지 희소식도 들린다. 6월 정인화 민주평화당 의원과 7월 황주홍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이 각각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양봉법)’을 대표발의했다. 또 낭충봉아부패병에 저항성을 가진 토종벌을 육성했다는 최근 소식도 너무나 반가웠다. 2019년이면 농가에 보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개운치 않다. 양봉산업을 바라보는 우리의 근본적인 시각이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다. 여전히 정책 수립의 긴급성은 규모를 우선시한다. 사육농가가 많고 시장이 클수록 중요한 축종으로 분류된다. 효율성 측면에서는 백번 옳다.

그렇지만 양봉산업의 가치는 농가수나 산업의 규모로만 평가돼서는 안된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유명한 예언이 있지 않은가. ‘만약 지구상에서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그로부터 4년 후 멸망할 것이다. 꿀벌이 많아야 꽃가루도 더 많이 옮길 수 있고, 그래야 더 많은 동식물이 건재할 수 있으며, 그래야 인간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꿀벌의 가치는 벌꿀과 양봉부산물로 먹고사는 사람의 수나 그 매출규모로 결정되지 않는다. 양봉법에 대한 더 큰 관심이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2013년 발의됐던 양봉법안이 2016년 제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꿀벌에 대한 철학적 재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다정 기자 (농민신문 산업부 기자) kimdj@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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