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조류독감’ 용어 안 쓰기로 한지가 언젠데…

입력 : 2018-06-11 00:00

며칠 전 충남의 한 행정기관 주변 식당에서 취재원과 점심을 먹으며 겪은 일이다. 뷔페식으로 운영되는 이 식당 한쪽 귀퉁이엔 고객들이 직접 달걀프라이를 해먹을 수 있도록 시설이 마련돼 있었다. 달걀 반숙을 즐기는 취재원이 반쯤 익은 달걀을 접시에 옮기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공무원들에게 들었다며 충남지역엔 ‘조류독감’이 자주 발생하니 달걀도 바짝 익혀 먹을 것을 당부한 것.

그래서인지 달걀프라이를 하려다 그만두는 사람이 더러 보였고, 프라이를 하더라도 그야말로 너무 바짝 익혀 탄내가 진동했다.

충남에선 2016년부터 올 3월까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67건이나 발생했다. 특히 주요 철새도래지의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방송을 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식당주인이 ‘조류독감’을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했다.

하지만 AI를 굳이 ‘조류독감’으로 표현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뭔가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었다. 정부는 ‘조류독감’이란 용어가 국민 불안감을 조성하고 가금산물의 소비를 위축시켜 관련 산업에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보고, 2004년 8월30일부터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또는 ‘AI’라는 용어로 바꿔 사용하기로 했다. 이런 사실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통보됐고, 언론도 이를 받아들여 용어를 순화했다. 따라서 이제는 일반인들도 ‘조류독감’이란 표현을 잘 쓰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충남에서는 이른바 ‘알 만한 사람’인 공무원들조차 ‘조류독감’이란 용어를 여과 없이 사용하니 일반 도민들도 이를 자연스레 따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충남도정 홍보신문인 <충남도정> 810호(2018년 5월5일자) 2면을 보면 ‘조류독감 방역대 전면 해제’라는 제목의 뉴스가 실려 있다. 올 3월17일 아산에서 AI가 발생했을 때 설정한 충남의 마지막 방역대를 38일 만인 4월25일부로 전면 해제한다는 내용의 뉴스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이다. 충남지역의 최상위 행정기관인 충남도가 ‘조류독감’이란 표현을 쓰는데, 산하 시·군이라고 다르겠는가. 지금도 충남도 내 각 시·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상당수가 ‘조류독감’이라고 표기돼 있는 문서를 그대로 놔두고 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AI는 한번 발생하면 관련 산업을 넘어 국가경제에 큰 손실을 끼친다. 축산업계에선 AI에 대한 잘못된 상식에서 생기는 2차 피해를 더 걱정한다. 이 때문에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선 AI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 차단방역과 대국민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지만 지자체에서 아직도 ‘조류독감’이란 표현을 여과 없이 사용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 이런 노력이 제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김광동 (농민신문 전국사회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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