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금융인을 꿈꾸라고?

입력 : 2017-11-15 00:00 수정 : 2017-11-16 13:25


“청소년들아, 금융세계에서 꿈을 품고 미래를 향한 문을 두드리렴.”

8일 첫 방송을 시작한 EBS의 <금융인을 꿈꿔라> 소개글이다. <금융인을 꿈꿔라>는 금융감독원과 6개 금융협회가 만든 청소년 직업탐구 방송프로그램으로, 이달 한달간 수요일마다 방영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TV 프로그램처럼 문을 두드리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다. 9월 감사원 감사 결과 금감원 간부들이 특정인의 채용청탁을 받고 특혜채용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얼마 전 금융위원회·금감원 국정감사장은 정책감사보다 채용비리 질타와 사과로 점철됐다. 비단 금감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도 채용비리 논란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금융인을 꿈꿔라’라고 말하기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금융당국은 뒤늦게 채용비리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금융당국은 이달부터 14개 국내은행의 채용추천제도를 집중점검하고 온·오프라인 창구를 만들어 신고 접수를 한다. 아울러 서류·필기·면접 등 채용절차도 구체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만약 조사과정에서 미비한 점이 발견되면 각 은행은 보완대책도 만들어야 한다. 논란이 있던 금감원도 ‘인사·조직문화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채용 때 면접관 절반을 외부인으로 발탁하고 객관식 1차 필기시험을 도입하는 등 전반적인 조직 쇄신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신뢰와 공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공기업과 금융회사가 채용비리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대중에게는 엄청난 충격이다. 한 취업준비생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부모님이 ‘힘도 못 써주는 집에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며 “정말로 취업이 어려울 것 같아 겁이 나서 하루 종일 울었다”는 글을 남겼다. 가슴이 시리다.

‘사다리 걷어차기’. 이미 주도권을 잡은 기득세력이 그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계층간에 이어진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뜻이다. 공정한 취업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 곳이 비단 금융계뿐일까. 그렇지 않아도 사회 전반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이른바 ‘개룡남’이 사라지고 계층이 고착화된다는 우려가 높다. ‘꿈을 꾸라’는 100마디의 말보다 청소년·청년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지금 바로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박준하 (농민신문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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