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금융위원회의 일탈

입력 : 2017-10-13 00:00 수정 : 2017-10-16 13:21


누군가 ‘저가항공사는 저렴한 요금으로 항공편을 제공하니 그 대가로 안전규정을 느슨하게 풀어주자’고 한다면? 열이면 열 ‘큰일 날 소리’라고 펄펄 뛸 게 뻔하다. ‘안전’은 항공료 몇푼과 맞바꿀 수 없는 절대가치라서 그렇다. 그런데 금융업계에서 이와 비슷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주도한 금융위원회다. 금융위는 인터넷은행의 편의성·혁신성을 이유로 은산분리(산업자본에 대한 은행지분 제한) 규제 완화를 포함한 각종 혜택을 주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9월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 등이 주최한 ‘인터넷전문은행의 도입 및 운영상 문제해결을 위한 입법과제 모색 토론회’에서는 4월 탄생한 인터넷은행 케이뱅크에 대한 특혜시비 논란이 일었다. 케이뱅크의 대주주인 우리은행이 예비인가 신청 때 재무건전성 요건 가운데 하나인 자기자본비율(BIS)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금융위가 불법적으로 인허가를 내줬다는 것이다. 금융위의 주장처럼 인터넷은행이 충분히 혁신적인지도 의문이다. 시중은행은 이미 비대면 거래가 가능한 모바일은행을 출시해 경쟁한 지 오래다. 한국씨티은행은 3월 기존 영업점의 80%를 줄이겠다는 처방까지 내놓은 상태다. 특히 금융감독기관인 금융위가 은산분리 규제완화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2011년 저축은행들이 대주주에게 5조3000억원의 불법대출을 해주면서 후순위채권 등에 투자한 서민들의 땀 묻은 돈이 공중분해됐다. 2013년에는 부실화된 동양그룹 계열사가 동양증권을 이용해 사기성 회사채를 발행, 투자자들에게 1조3032억원의 손해를 끼친 적도 있다. 이처럼 은산분리 규제는 조금만 느슨해져도 산업자본의 먹잇감이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위는 편의와 혁신이라는 잣대만 가지고 인터넷은행에서 은산분리 칸막이를 빼내려 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안’ 개정을 통해 비금융대기업들의 은행 지분참여를 늘리려는 것은 뻔히 보이는 꼼수다.

12일부터 시작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케이뱅크를 인가할 당시 금융위가 우리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기준을 의도적으로 완화해줬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너무 멀리 왔다’는 이유로 잘못된 길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이문수 (농민신문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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