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평등한 법’이라는 허구

입력 : 2017-12-06 00:00


“법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법의 이름으로 누가 극심한 고통을 당한다면 문재인정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올 9월28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1년을 맞아 마련한 토론회 자리에서 박은정 권익위원장이 한 말이다. 박 위원장은 “권익위는 법밖에 안 보이고, 피눈물 흘리는 농민은 안 보이느냐”고 외치는 농민들의 기습시위를 30분간 묵묵히 지켜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과연 법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일까. 때로는 ‘동일한 잣대’가 오히려 ‘차별’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아름다운 도시경관 조성을 위해 다리 아래에서 노숙을 금지하는 법을 만든다고 해보자.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법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돈이 많고 집이 있는 이들이 다리 아래에서 노숙할 일은 없다. 가난하고 집이 없는 이들만이 다리를 지붕 삼아 한뎃잠을 잔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지만 이런 식의 기계적 평등은 약자에게만 적용되는 불평등이 될 수 있다.

김영란법이 청렴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다. 그렇지만 특정 사회계층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청탁금지법의 경제적 영향분석’을 보면 법 시행 이후 1년간 국내 총생산액(GDP)은 9020억원 감소했으며 이중 한육우(7682억원)가 85%를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다른 연구기관의 예상 감소치보다 적게 나왔다는 점은 논외로 치더라도 농업계가 피해를 봤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선한 의도로 만든 법이라도 의도치 않게 피해자가 생긴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이 정의다. 하지만 정의로운 개선을 기대했던 농업계의 바람은 ‘1표’ 때문에 산산조각났다.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액을 10만원으로 올리는 시행령 개정안이 11월27일 권익위 전원위원회에 상정됐지만 찬성표 1표가 모자라 부결됐다. 법은 모두에게 공평하다던 박 위원장은 이날 전원위에 불참했다.

11일 선물비를 농축수산물에 한해 10만원으로 올리는 개정안이 재상정될 예정이다.

농업계는 또 한번 박 위원장의 의사표시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그는 앞서 “농민의 고충과 눈물을 진정으로 담을 수 있는 지혜로운 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약속과 표심의 일치를 기대한다.

함규원 (농민신문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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