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산 가공용 쌀 걱정 없게 대준다더니…원료 수급 곤혹”

입력 : 2021-03-03 00:00 수정 : 2021-03-0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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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후 ㈜제주막걸리 회장이 멈춰 선 막걸리 생산라인을 지켜보고 있다.

‘정부양곡 5월까지만 공급’ 통보받은 제주 막걸리공장 가보니

10여년 전 우리쌀 이용 권장에 50억 들여 전용 생산설비 구축

쌀값 폭등해도 꿋꿋이 만들어

지역에서 벼농사 거의 안 지어 육지부 농협·업체서 조달해야

정부 도움 없이 사실상 불가능

수입 쌀 막걸리 농협 납품 못해 판로 잃어…연매출 15억 손해

 

“하루아침에 쌀 공급을 끊겠다니, 대체 어디서 쌀을 구하란 말입니까?”

고상후 ㈜제주막걸리 회장은 최근 한국쌀가공식품협회로부터 ‘정부가 국산 가공용 정부양곡을 5월까지만 공급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고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정부양곡 재고 부족으로 국산 가공용 쌀 공급량을 지난해 11만t에서 올해 5만t으로 절반 이상 줄이고, 이마저도 5월까지만 공급한다고 밝혔다는 것.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막걸리 제조용 국산 쌀을 공급받아왔던 고 회장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 같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988년 제주지역의 영세 막걸리공장 8곳이 합병하면서 설립된 제주막걸리는 지역을 대표하는 막걸리회사로서 전통주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막걸리는 2000년대초까지 밀가루와 쌀을 혼합해 막걸리를 생산했었다. 그러다 2009년 정부가 쌀 공급과잉에 따라 국산 쌀 이용을 권장하면서 약 50억원을 들여 쌀 막걸리 전용 생산설비를 구축했다.

고 회장은 순조로이 자리 잡아가던 공장에 괜한 변화를 주는 것 같아 처음엔 설비 투자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쌀 공급은 걱정 말라”는 당시 정부 관계자의 말을 믿었고, 국산 쌀 소비 확대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는 명분도 있어 과감히 결단했다. 설비 구축을 마친 2011년부터는 100% 국산 쌀로 만든 막걸리를 생산했다. 지난해 막걸리 원료로 사용한 국산 쌀이 180여t에 달한다. 비록 2014년 쌀값이 폭등했을 때 수입 쌀을 원료로 만든 막걸리 생산 비중을 약간 늘렸지만, 국산 쌀 막걸리 생산은 꿋꿋이 이어왔다. 또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기에 쌀값이 올라 공장 운영이 어려워졌을 때도 가격 인상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올초 정부가 국산 가공용 쌀 공급 중단을 통보하면서 고 회장은 이제 더 버틸 재간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 회장은 “정부가 쌀이 없어 정부양곡 공급을 멈추는 건 서운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정부양곡에 의존해 원료를 수급하던 업체들이 다른 경로로 쌀을 구할 수 있게 대책이라도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가공업체가 알아서 쌀을 구하라는 식의 태도는 그동안 정부 정책에 따랐던 쌀 가공업체들을 내팽개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제주도에서는 쌀이 거의 생산되지 않아 육지부 농협이나 유통업체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영세한 막걸리업체가 정부 도움 없이 민간에서 안정적으로 쌀을 공급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고 회장의 설명이다.

또 국산 쌀을 구하지 못해 수입 쌀로만 막걸리를 제조하면 전통주의 정체성이 훼손될 뿐 아니라 이후 정부양곡 공급이 재개되더라도 정부를 믿고 다시 국산 쌀을 원료로 쓸 업체가 몇이나 되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입 쌀로 만든 막걸리는 농협 하나로마트에 납품할 수 없다. 제주막걸리로선 지역 내 47개에 이르는 하나로마트 판로를 잃게 된다. 현재 하나로마트는 국내 농업·농민 보호를 위해 수입 쌀을 원료로 한 막걸리나 수입 과일의 입점을 제한하고 있다.

고 회장은 “지난해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식당 영업이 위축돼 막걸리 소비가 크게 줄었는데 하나로마트 판매까지 막히면 연간 15억원가량의 매출을 고스란히 날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심재웅 기자 daebak@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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