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빈 강정’ 농어촌상생기금 활성화 방안…“농민 우롱”

입력 : 2019-11-08 00:00 수정 : 2019-11-09 00:00

정부, WTO 개도국 지위포기 관련 대책이라 내밀었지만

실상 보니… ‘출연기업 인센티브 3년 연장’ ‘현물 출연 허용’ 등

개도국문제와 관계없이 추진해왔던 방안으로 확인돼 ‘허탈’

정치권·농업계 “기존 대책 재탕…무역이득공유제 도입 검토를”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포기와 관련해 내놓은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하 상생기금) 활성화 방안이 실상은 ‘속 빈 강정’인 것으로 드러났다. 농업계는 우리 농업을 지킬 마지막 보루로 여겼던 개도국 지위를 잃게 된 데다 정부의 대책마저 농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분개하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10월24일 농민단체와의 간담회에서 “상생기금은 기업 출연이 활성화되도록 인센티브 확대, 현물 출연 등 필요조치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개도국 지위포기를 결정하기 위한 대외경제장관회의 개최를 하루 앞두고 농심을 달래고자 내민 카드였다. 기재부의 이같은 발표와 관련, 일각에선 ‘부진했던 상생기금 조성이 탄력을 받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언급한 출연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는 지금까지 제공해온 세제혜택을 3년 더 연장하는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 입장에서 추가적인 유인책이라고 느끼긴 어려운 대목이다. 현재 상생기금 출연기업들은 ▲법인세 공제 ▲지정기부금 손금(損) 인정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 등을 통해 절세혜택을 받고 있다.

더구나 기재부는 올 연말 일몰이 도래하는 이런 특례를 2022년말까지 연장하는 세법 개정안을 9월3일 국회에 제출했다. 개도국 지위문제와 관련해 농민단체들이 상생기금 1조원 조성대책 등 6개 요구사항을 정부에 전달한 시기보다 한달 이상 앞선다. 개도국문제와는 관계없이 조세특례 연장을 추진했던 셈이다. 정부는 출연기업에 대한 동반성장지수 가점도 현행(1점)보다 확대하기로 했지만 가점을 얼마나 늘릴지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상생기금에 현물 출연을 허용하는 방안은 11월28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이 역시 황주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민주평화당, 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이 대표발의한 법안이 8월2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도입되는 것으로, 개도국 지위포기와는 관계가 없다는 지적이다. 서용석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부총장은 “조세특례와 현물 출연 조치는 개도국 지위포기와 관계없이 추진된 일인데도 정부가 마치 후속대책인 것처럼 포장해 농민을 우롱하고 있다”며 “상생기금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정부 출연이 가능토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일 청와대에 대한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이만희 자유한국당 의원(경북 영천·청도)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을 상대로 “(정부가 내놓은 개도국 지위포기 대책들은) 기존 정책들의 재탕 삼탕”이라고 추궁했다. 이에 김 실장은 “개도국 지위와 관련해서 특별히 추가된 것은 아니다”라며 새로운 대책이 아님을 시인했다.

김광천 한국농축산연합회 사무총장은 “정부가 그동안 상생기금 조성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신뢰를 잃은 마당에 또다시 실효성 없는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며 “기업들이 출연에 나설 만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고, 그래도 충족되지 않는 기금은 정부가 출연해 농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전북 전주을)은 정부가 민간기업 등에게 상생기금 조성을 위한 출연 협조 및 지원 등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1일 대표발의했다. 정 의원은 “정부가 기부금 모집·요청에 나설 수 없다는 이유로 상생기금문제에 뒷짐을 지고 있다”며 “국회에서 법을 개정할 테니 정부는 적극적으로 상생기금 조성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경진 기자 hongkj@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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