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피해 언급조차 안한 ‘부실 공청회’…농민들 뿔났다

입력 : 2017-11-13 00:00 수정 : 2017-11-13 13:03
10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관련 공청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코엑스 회의장 앞에서 농민들이 한·미 FTA 폐기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희철 기자

“한·미 FTA로 생존권 위협” 농민들 실력저지 나서면서 시작 20분 만에 중단

농업계, 정부 태도에 강력 반발 “농축산물 피해 분석 공개 않고 FTA 개정 효과도 극히 미미”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개시를 위해 마련한 공청회가 농민들의 저지로 파행됐다. 10일 오전 9시30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시작된 한·미 FTA 개정 관련 공청회는 농민들이 실력저지에 나서면서 20분 만에 중단됐다. 정부는 공청회가 개최된 것으로 보고 조만간 후속 절차를 밟을 예정이어서 또다시 ‘부실 공청회’ 논란을 빚게 됐다.



◆ 농민 저지로 파행=전국농민회총연맹·한국진보연대를 비롯한 농민·시민단체로 구성된 FTA 대응 대책위원회와 축산관련단체협의회(축단협)는 9시10분쯤 공청회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민들 다 죽이는 한·미 FTA를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문정진 축단협회장(한국토종닭협회장)은 “5년 전 발효된 한·미 FTA로 농민들은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며 “이런 마당에 정부가 농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개정협상을 추진한다는 것은 농민을 국민으로 보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정부가 트럼프의 ‘폐기’ 협박에 굴복해서 한·미 FTA 추가 개악에 들어갔다”며 “아무런 근거 없는 트럼프의 한마디에 제대로 된 평가도 없이 이렇게 추가 개악을 강행하는 나라를 주권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공청회가 시작되자 농민들은 ‘한·미 FTA 체결 결과 농축산업 반토막’ ‘농축산업 볼모로 하는 한·미 FTA 즉각 폐기’ 팻말을 들고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9시50분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한·미 FTA 개정의 경제적 타당성 검토’를 발표하려는 순간 “5년간의 농업피해는 왜 빠뜨렸느냐”며 무대를 향해 달걀과 신발을 던졌다. 또 “공청회는 충분히 국민 의견을 수렴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정협상 돌입을 위한 요식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청원경찰들과 대치했다.

농민들은 이어 공청회 현수막을 벽에서 찢는 등 물리적 행동에 나섰고, 행사를 주최한 산업통상자원부는 낮 12시6분께 “이것으로 오늘 공청회를 마친다”며 종료를 선언했다. 강성천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공청회가 무산된 것이냐’는 질문에 “나중에 말하겠다”고 짧게 대답하고 회의장을 떠났다. 농민들은 공청회 무산을 선언하고 향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파면, 국회보고 저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정부, 농업피해 분석 공개 안해=정부는 공청회에 앞서 배포한 자료를 통해 한·미 FTA 개정 효과를 공개했다. 그렇지만 개정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극히 미미하고 공개 범위도 너무 협소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산업연구원이 분석한 이 자료는 제조업 추가 개방이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감과 소비자 후생 등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담았다.

보고서는 낮은 수준으로 개방하면 실질 GDP는 0.0004%, 소비자 후생은 1200만달러(약 134억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높은 수준으로 개방하면 실질 GDP는 0.0007%, 소비자 후생은 2400만달러(약 268억원)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이미 웬만한 품목이 개방돼 시장 문을 더 열어도 국내 거시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개방 영향과 관련한 개략의 윤곽만 제시했을 뿐 분야별·품목별 관세 인하폭 등 자세한 수치는 아예 담지 않았다. 미국과의 협상 전략이 미리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전해졌다.

보고서는 특히 한·미 FTA 개정협상의 화약고인 농축산물시장 관련 개방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은 “한·미 FTA 발효 이후 5년 동안의 농업피해 분석은 물론 앞으로 농업분야에서 얼마나 피해를 볼지 (자료에) 전혀 나와 있지 않다”며 “이런 허술한 자료는 정부가 농민들을 우습게 본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미 FTA 관련 공청회는 11년 전에도 농민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 정부는 2006년 2월2일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공청회를 열었지만, 농민단체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로 시작 30여분 만에 중단됐다. 당시 공청회는 개회선언과 경과보고만 한 채 주제발표와 토론 없이 종료됐지만, 다음날인 3일 새벽 5시 한·미 통상장관은 미국에서 ‘한·미 FTA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공청회 역시 개회선언과 경과보고만 이뤄졌다.

김상영 기자 supply@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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