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 담고 국가 지원의무 명시해야”

입력 : 2017-09-11 00:00 수정 : 2017-09-11 09:33

개헌 논의 ‘농업 사실상 배제’…헌법 조문 손질 목소리

농산물시장 환경 급변하고 농촌경제, 갈수록 위기인데 농업 관련 조문은 ‘구시대적’

식량안보·환경보전 기능 등 정부의 적극적 정책지원 필요 농민기본권 신설 주장도

개헌특위 ‘경자유전’만 언급 원칙 삭제·신중 검토 ‘이견’ 농업계 의견수렴 후 논의 지속

 


헌법에는 국가의 정체성과 시대정신이 담긴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제정된 이후 아홉차례 개정과정에서 시대의 변화와 국민적 열망을 고스란히 담아내기도, 때로는 배반하기도 했다. 30년 만에 찾아온 개헌 국면에서 농업계는 농업·농촌 관련 조문을 시대적 흐름에 맞게 손질할 것을 바라고 있다. 농업계의 목소리가 헌법에 반영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 왜 헌법인가=1987년 9차 개헌 이후 30년이 지났다. 전문가들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며 헌법상 농업 관련 조문을 다듬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헌법에서의 농업 관련 조문은 지주들의 농민수탈 방지, 수출주도형 경제에서의 농산물 저가격 정책 등을 뒷받침하는 구시대적 범주에 머무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지만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시장 개방 이후 농업·농촌을 둘러싼 환경은 급격하게 바뀌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농업과 농촌경제의 피폐, 도농간 소득격차의 심화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헌법적 근거가 부족해 농업·농촌 지원정책의 정당성 부여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농업 홀대 분위기를 뒤바꿀 근본적 방안이 개헌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헌법은 국가 법질서상 최상위 규범이다. 농업·농촌의 가치와 그에 따른 국가의 지원 의무를 헌법에 담으면, 국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법률을 만들고 정책을 시행할 책무가 생긴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쌀 문제를 풀려면 농림축산식품부 차원이 아니라 기획재정부와 청와대의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게 현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헌법을 고치지 않으면, 농민이 소외되고 농업이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농업 홀대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헌법상 농업 조항은=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이하 개헌특위)에 따르면 정치권의 개헌 논의 대상에서 농업은 사실상 배제됐다.

130개 조문으로 구성된 현행 헌법에서 농업 관련 조문은 단 두가지다. 농지는 농사를 짓는 농민이 소유해야 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담은 121조와 국가의 농어업·중소기업 보호와 육성 의무를 명시한 123조다.

이 가운데 개헌특위가 주요 쟁점사항으로 다룬 것은 단지 경자유전의 원칙 폐지 여부였다. 농지의 절반 이상이 소유자와 경작자가 다르다며 경자유전의원칙 삭제를 검토한 것이다. 김관영 국회 개헌특위 제1소위원장은 “소위원회를 여러차례 개최했지만 농업 관련 조문에 대해 의견이 제대로 개진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자유전 폐지 관련 논의 결과에 대해 김 위원장은 “식량안보라는 관점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과 농업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한 상황을 고려해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개진됐다”며 “농민단체 등 농업계 의견수렴을 거쳐 논의를 지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농업계 요구는=농업계는 새로운 헌법에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과 그에 따른 국가의 지원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조문을 신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농업은 식량 안보, 환경과 경관 보전, 농촌사회 전통문화 보전, 생물다양성 유지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일반 상품과는 달리 대가 없이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스위스 같은 선진국에서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 유지를 위해 농업과 농촌 지원이 필요하다는 정당성을 헌법에 명시하고, 농업과 농촌부문 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5·9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대선주자들은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식량주권과 농민기본권을 헌법에 담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를 위해 진보적 농민단체에서는 범농업계가 참여하는 ‘농민헌법 운동본부’ 구성을 제안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은 “헌법개정에 관한 농민토론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해 농민 의견을 모아가겠다”며 “고(故) 백남기 농민 1주기 추모기간인 9월23일께 운동본부를 발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함규원 기자 o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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