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커져도 법 차별받는 ‘여성농’

입력 : 2021-10-15 00:00 수정 : 2021-10-15 23:45

15일 ‘세계여성농업인 날’ 맞아 법제연 농업·농촌 관련법 분석

남성농보다 농지소유 비율 낮고 농산물거래 거의 남편 명의로

법적 ‘농업인’ 기준 충족 어려워

공장·식당 일 등 겸업하면 공동경영주로 인정 못받아

 

10월15일은 유엔(UN·국제연합)이 정한 ‘세계여성농업인의 날’이다. 유엔은 농업·농촌 발전과 식량안보 증진에 기여한 여성농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날을 국제기념일로 제정했다. 가정과 사회에 성차별적인 관행과 규범이 남아 있어 여성농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려는 목적도 있다. 우리나라도 농사일 중 여성농이 담당하는 비중이 2018년 기준 평균 53.9%에 달하는 등 농업에서 여성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성농의 법적 지위는 여전히 남성농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법제연구원은 농업·농촌 관련 법령 가운데 정책 수립과 시행의 근거가 되는 법률 3개를 선정해 성인지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법령이 특정 성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지, 성역할 고정관념이 반영돼 있지 않은지 등을 검토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현행법은 여성농이 남성농과 견줘 농업인으로 인정받기 쉽지 않은 구조였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농업식품기본법)’은 여성농을 정책 대상으로 각종 육성 및 지원 정책을 수립토록 한 조항을 두고 있는데, 이때 여성농의 자격 기준은 농업식품기본법상 농업인 기준과 동일하다. 농민들은 ▲1000㎡(303평) 이상의 농지 경영 혹은 경작 ▲연간 농산물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 ▲영농조합법인·농업회사법인의 활동에 1년 이상 계속 고용 등 4가지 기준 가운데 하나를 충족해야 농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여성농에게 이 기준을 적용하면 많은 여성농이 정책 대상에서 배제된다. 여성농은 남성농과 비교해 농지 소유 비율이 낮은 데다 농산물 거래도 주로 남편 명의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은 “농지 소유나 농산물 거래가 남성 명의로 이뤄지면서 여성농이 정책 대상에서 배제되는 일은 오래된 문제”라며 “여성농 단체에서 문제제기를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농이 남성농과 동등하게 경영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공동경영주 제도’도 있지만 차별적 요소가 많다. 농업경영체는 ‘경영주’와 ‘경영주 외 농업인’으로 구분되는데, 일반적으로 농가 대표인 경영주가 남성이다보니 배우자인 여성농 대다수는 경영주 외 농업인으로 분류된다. 이에 정부는 배우자인 여성농도 경영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공동경영주 제도를 2016년에 도입했다. 하지만 공동경영주는 법령상 경영주와 같은 지위·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차별적 요소는 농업경영체 경영주는 농업 이외 겸업활동을 해도 농업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공동경영주는 겸업 소득이 발생하면 경영주로 등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부족한 농업소득을 보완하기 위해 노인요양시설, 학교 식당, 인근 공장 등에 취업해 일하는 상당수 여성농은 공동경영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공동경영주 제도는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농어업경영체법)’ 본문이 아닌 시행규칙 서식에만 근거를 두고 있다.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반영된 법령도 있다. 농촌 여성의 복지증진에 관한 내용을 담은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농어업인삶의질법)’ 제18조는 농촌 여성의 모성보호, 보육여건 개선,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지원을 규정하고 있다. 이 중 ‘보육여건 개선’은 보육이 여성의 책임이라는 고정관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구진은 “농업·농촌에서 여성이 농사일 외에도 가사노동·육아·부양 등 돌봄 역할도 담당해왔기 때문에 돌봄을 여성의 몫으로 여기는 인식이 법령에서도 나타난 것”이라며 “이런 법 조항은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은정 기자 onjung@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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