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선 ⑨] 농업·농촌 여전히 ‘남성 중심’ 양성평등 위해 제도개선 선행

입력 : 202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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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선] 농정전환 방향은 ⑨ 김영란 목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내세울 만한 여성농 정책 없어 농촌여성정책팀 ‘유일한 성과’

농식품부 과 단위 전환 바람직 지자체도 전담 부서 만들어야

젊은 여성 찾지 않는 농촌 암울 제도·생활·인식 변화 등 노력을

농업경영체 여성 비율 28% 불과

보완책인 공동경영주 유명무실 권한·책임 공유 등 법에 명시를

출산·육아 인프라 부족 큰 문제 매력적인 콘텐츠로 유입 유도

 

농가인구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은 농업과는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뿐인가. 가임기 여성인구수를 노인인구수로 나눠 지역소멸위험 등급을 구분하는 데서 알 수 있듯, 농촌 소멸을 막을 열쇠는 여성이 쥐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농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은 열악하다. 농촌에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 탓에 집안일을 도맡고, 농사와 가사를 병행하느라 문화·교육에서는 소외된다. 특히 기계화가 덜 된 밭농업에 종사해 농부병을 달고 살지만 농촌의 열악한 의료체계 탓에 병을 키우기 일쑤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김영란 목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부터 들어봤다.


―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 농어촌여성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위원회의 역할은.

▶농특위 출범 이후 여성농 정책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지난해 ‘희망을 만드는 농어촌 여성정책 포럼’을 4차례 열었는데, 이때 여성농 정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위원회 구성이 합의됐다. 위원회에 참여하는 15명의 위원들은 농어촌 여성을 위한 법·제도 개선 및 정책을 제안한다. 지난해 포럼 당시 위원장에 이어 이번 위원회 위원장까지 맡게 됐다. 어깨가 무겁다.

― 그동안의 여성농 정책을 평가한다면.

▶현 정권만 놓고 보면 여성농 정책이라고 콕 집어 말할 게 있는지 잘 모르겠다. 농업예산이 전체의 3%도 채 안되는 등 ‘농업패싱’ 논란이 나오는 마당에 여성농 정책은 오죽하겠나.

유일한 성과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에 여성농 정책을 전담하는 ‘농촌여성정책팀’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기존 여성농 정책이 구체화됐고 여성농 대상 영농여건 개선 교육, 농촌형 성평등 강사 육성 및 교육 콘텐츠 개발, 농업 관련 교육에 대한 성인지 모니터링 등이 진행됐다. 내년부터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이 추진되도록 예산을 확보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 농촌여성정책팀의 역할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그렇다. 향후 농식품부 공식 편제 속에 과 단위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 인력 보강도 필요하다. 여성농 정책은 교육, 농업 생산, 건강 및 복지 등으로 분야가 다양하다. 무엇보다 농촌여성정책팀은 다른 부서에서 만들어내는 농업정책이 성평등한지 성인지 감수성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7명의 인원으로 이 모든 일을 하기엔 역부족이다.

농촌여성정책팀은 농특위의 거버넌스 파트너이기도 하다. 농특위와 농촌여성정책팀이 ‘같은 지향점’을 공유하는 덕분에 농특위가 여성농이 처한 현실을 반영하는 정책을 제안할 수 있었다.

그런 정책이 실제 현장에서 시행되고 호응을 얻으려면 궁극적으로는 각 지방자치단체에도 여성농 정책을 전담하는 부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는 4곳의 광역지자체에만 여성농 전담 부서가 있고, 2곳은 전문관만 두고 있다. 나머지에선 농정과의 누군가가 여러 업무 중 하나로 여성농 정책을 담당할 뿐이다. 어떤 정책을 추진해보라고 제안하기도 미안할 정도다.

지자체 단위에 여성농 전담 부서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행정체계 흐름이 연결된다. 현장 상황을 잘 아는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정책을 제안할 수도 있게 된다. 이처럼 정책이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흐를 때 정책은 역동성을 띠고 수혜자인 여성농들의 만족도도 높아진다.

― 농촌여성정책팀과 농특위가 공유하는 같은 지향점이란.

▶과거엔 농촌에서 여성이 ‘그림자 노동(무보수 노동)’을 했다. 농업의 보조자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농촌에서 여성은 최소한 남성과 동일한 노동을 한다. 돌봄노동, 각종 마을사업, 가사노동을 포함하면 여성농의 노동은 상당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책과 농업·농촌을 보는 시선은 남성 중심적이다. 이를 바꾸자는 게 우리의 지향점이다.

이는 인권적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실리적으로 따져봐도 바뀌어야 할 문제다. 지금과 같은 농촌에는 젊은 여성이 들어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이 찾지 않는 농촌엔 미래가 없다.

― 농업과 농촌이 어떤 점에서 남성 중심적이라는 것인가.

▶사소하게 여겨질 만한 것부터 아주 중요한 것까지 몇가지 사례를 들겠다. 한 여성농이 말하길 농산물을 출하할 때 좋은 상품에는 남편 이름을, 상대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은 상품에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더라. ‘좋은 것은 남자 몫’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여성 승계농들은 또 어떤가. 아들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딸은 농지 등의 소유권을 받지 못한다. 농촌엔 여전히 남성이 가계를 이어받는다는 생각이 강해서다.

게다가 여성 이장은 전체의 9.4%에 불과하다. 농어촌체험마을 여성위원장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마을 일은 여성이 대부분 하는데 대표성은 남성이 갖고 있다.

질적 연구를 수행할 때 한 청년 여성농이 들려준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그는 “마을 아저씨들이 모여 여자가 왜 농사짓느냐고 말하는 것도 불편했지만, 아저씨들끼리 ‘너 그 나이 먹고 어떻게 장가갈래. 동남아 여자라도 데려와라’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점도 듣기 불편했다”고 말했다. 농촌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처럼 젠더와 인권 감수성이 높은 청년들의 유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 더 큰 문제도 있나.

▶농업경영체 제도가 대표적이다. 농업경영체의 여성 비율은 약 28%에 그치는데, 경영체에 등록할 때 필요한 토지 등을 대부분 가구의 대표로 여겨지는 남성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동경영주 제도도 유명무실하다. 등록률이 6.9%에 불과하다. 공동경영주가 아무런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동경영주는 경영주와 함께 경영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공유한다는 점, 경영주는 공동경영주의 위임에 의해 경영을 대표로 한다는 점 등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 요컨대 그야말로 ‘공동’ 경영권을 인정하는 취지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공동경영주도 경영 성과, 수익, 자산을 공유하는 존재로 인정받고 민법상 재산권도 갖게 된다. 공동경영주 제도개선은 최근 우리 위원회에서 가장 주력하는 사안 중 하나다.

― 농촌 양성평등을 위해 제도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보는 건가.

▶최근에야 성인지 감수성이 우리나라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대다수가 고령층인 농촌의 변화는 더욱 더디다. 제도를 먼저 바꾸고, 제도가 생활을 바꾸고, 생활이 인식을 바꾸는 게 방법일 수 있다.

공동경영주 제도개선뿐 아니라 가구당 지급하는 농민수당을 개인에게 지급하자는 목소리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제도가 여성을 농민으로 인정하면 자연스레 인식도 바뀔 것이다. 물론 이와 동시에 농촌 성평등 교육 확대도 필요하다.

― 젊은 여성의 농촌 유입을 막는 요인으로 열악한 출산·육아 인프라가 꼽힌다.

▶중요한 문제다. 출산·육아 인프라 부족으로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안 들어오고, 아이가 안 태어나니 인프라는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악순환을 개인이 끊긴 어렵다. 결국 국가의 몫이다.

육아 인프라의 경우 어린이집을 짓는 것에만 초점을 두면 필패다. ‘굉장히 매력적인’ 어린이집을 만드는 게 관건이다. 뉴스 속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어린이집과는 정반대로 작은 유치원이되 최고의 선생님이, 건강한 먹거리를 먹여가면서, 훌륭한 콘텐츠로 아이를 돌보는 곳이 돼야 한다. 그러면 도시민들이 돈을 내고서라도 찾아올 것이다. 이런 환경에 매력을 느낀 젊은 보육교사가 농촌에 유입될 수도 있다. 결국 예산이 문제일 텐데 ‘농어촌기초생활거점사업’ 등을 잘 활용하면 안될 일도 아니다.

출산·분만의 경우 임산부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에스코트 서비스’ 등을 통해 교통 접근성을 확보해주는 게 대안일 수 있다.

목포=양석훈 기자,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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