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선 ⑧] “농촌지역에 기피시설 몰려 시름…읍·면 지방자치 살려야 대응 가능”

입력 : 2021-10-13 00:00 수정 : 2021-10-1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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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선] 농정전환 방향은 ⑧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마을에 각종 혐오시설 들어와도 법·행정절차 복잡…대처 한계

정부가  산업폐기물 책임지고 지자체, 생활폐기물 처리해야

대도시·산단과 거리 먼 농촌에 태양광 등 에너지시설 왜 짓나

주요 전력 소비지에 만들어야

정부·지자체 권한 분산도 필요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은 도시에 산다. 지역의 인구는 그곳의 정치력과 직결된다. 인구를 무서운 속도로 흡수한 도시는 입김이 세다. 도시에서 발생한 각종 폐기물을 농촌으로 밀어내고 도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전기를 농촌에서 끌어다 쓰고 있다. 그러는 사이 농촌은 마을의 경관과 환경을 파괴하는 각종 기피시설로 시름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기에 큰 관심이 없다. 이에 하승수 변호사는 올초 농촌을 지키기 위한 공익법률센터 ‘농본’을 개소했다. 하 변호사를 만나 농촌을 지킬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 우리나라에 농업·농촌·농민을 위한 공익법률단체는 ‘농본’이 유일하다.

▶4년 전 충남 홍성으로 귀촌하면서 농촌을 둘러싼 문제를 피부로 느끼게 됐다. 마을공동체와 환경을 파괴하는 시설이 유독 농촌지역에 몰려 있지만 관련법이 워낙 복잡하다보니 지역주민들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그런데 국내에 소수자·노동자들을 위한 공익법률단체는 있어도 농민을 위한 곳은 없더라. 이에 농민 편에서 농촌을 지킬 수 있는 공익법률센터 문을 열었다.

- 전국 각지에서 농촌주민들이 농본을 찾아왔다고 들었다.

▶마을에 기피시설이 들어서는 걸 막으려는 농촌주민들이 대부분이다. 몇몇 주민들이 힘을 합쳐 개별 대응을 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하나의 현안에 적용되는 법과 행정 절차가 복잡한 탓이다. 가장 많이 문제가 된 산업폐기물 처리장만 해도 폐기물관리법·국토계획법·농지법 등이 엮여 있다. 이런 법은 일선 공무원들도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어렵다. 게다가 특정 시설이 설립 허가를 받기까지의 행정 절차도 복잡하다.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대응하는 곳도 있지만 담당 공무원이 고문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대처하는 수준이다. 반면 돈이 되는 시설을 짓기 위해 업체는 대형 로펌을 선임한다. 법률적 역량에서부터 싸움이 안된다.

- 법적 지원을 통해 기피시설 설치를 무산시킨 곳이 있나.

▶홍성군 갈산면에 들어설 예정이던 산업폐기물 처리장 설립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업체가 낸 행정심판에서 패소한 지자체를 도와 설치 불허라는 행정처분의 합당한 사유를 다시 찾아낸 지역도 있다. 그런데 이런 대응 방식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특정 지역에서 설치를 막은 기피시설은 다른 지역으로 가게 돼 있다.

-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있나.

▶산업폐기물을 국가가 책임지고 공적으로 관리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법은 생활폐기물만 지자체가 책임지게 하고, 전국 폐기물의 약 90%를 차지하는 산업폐기물은 민간에 맡겨두고 있다. 농촌주민·환경단체와 함께 머리를 맞댄 결과 산업폐기물은 중앙정부가, 생활폐기물은 지자체가 책임지도록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냈다.

- 탈석탄이 시대적 과제가 되면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태양광 발전시설이 농촌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다.

▶바람직한 에너지 전환을 달성하려면 지역분산형 전원이 이뤄져야 한다. 재생에너지 시설을 전력 소비지 가까이에 설치하면 불필요한 송전선로 건설을 막고, 송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엉뚱하게 주요 전력 소비지인 대도시·산업단지와 거리가 먼 농촌에 태양광 발전시설 등이 지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도 소비지로 보내기 위한 변전소·송전탑이 필요하다. 차기 정부는 ‘산업단지 태양광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산업단지부터라도 단지 내 태양광 설치를 의무화해 필요한 전력을 직접 생산하도록 해야 한다. 공장 지붕이나 유휴공간을 활용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장려하거나 지원하는 데서 벗어나 강제할 필요가 있다.

- 기피시설이 농촌으로 유입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최소 지방자치를 시·군 단위로 한다.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굉장히 크다. 주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힘든 구조다. 지자체가 행정적인 대응능력이 부족하면 지역주민들의 의견수렴이라도 잘해야 하는데 그것마저 못한다. 도시화한 읍지역에 사는 공무원은 멀리 떨어진 면(面) 단위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기 쉽다. 그런데 모든 예산과 권한은 군청이 갖고 있다. 국가 전체로 보면 농촌 소외가 심각하지만, 농촌지역 안에서는 읍과 멀리 떨어진 외곽의 면들이 소외당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산업폐기물 처리장 등이 들어서는 면의 위치를 보면 읍과 멀리 떨어져 있다. 읍·면 단위의 지방자치를 살려야 한다. 주민들이 마을의 공간계획을 세우는 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 지자체의 역량 부족도 원인이라고 보나.

▶시설의 인허가 업무를 기초지자체의 일선 공무원 1∼2명이 담당한다. 그들이 그 일만 맡고 있는 것도 아니다. 기초지자체가 대응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권한의 문제도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중앙정부의 허가만 받으면 송전탑·변전소를 설치할 수 있다. 기초지자체는 협의 대상일 뿐이다. 농본을 찾은 충남의 한 지자체 공무원은 고향에 송전탑이 들어서는 걸 막고 싶은데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국가가 해야 할 산업폐기물 관리는 민간에 맡겨놓고, 지자체에 나눠줘야 할 전력시설 관련 권한은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다.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 최근엔 농업예산에도 관심 있다고 들었다.

▶농업예산은 전체적인 크기를 늘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러려면 농업·농촌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떤 부문의 예산이 정말 절실한지 살펴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른 부처에서 삭감 가능한 예산은 없는지도 들여다볼 계획이다. 적은 농업예산을 두고 재정당국 탓을 많이 하는데 농업계도 우선순위 경쟁을 해야 한다. 농업·농촌 부문에 늘려야 할 예산이 있다면 기획재정부가 통제하는 국가 전체 예산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부처가 예산을 낭비하는데 왜 농업·농촌에는 인색하게 구는지 따져야 한다.

- 대선을 앞두고 개헌 논의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현 정부 초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반영한 개헌안이 발의됐다.

▶농업계는 헌법에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반영해달라고 요구했고, 실제로 개헌안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를 두고 자문기구 안에서는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 여러 산업 중에서 왜 농업만 특별하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지적이 나온 것이다. 농업가치의 헌법 반영은 농업·농촌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도시에 사는 한국사회 여론 주도층의 사고에는 농업·농촌이 없었다.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논의한다면 농업계는 이전처럼 우리의 가치를 인정해달라는 식의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선 안된다. 기후위기 시대 농업·농촌 없이는 국가가 존속할 수 없다는 내용을 헌법 전문에 명시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고, 이를 논쟁에 붙여야 한다.

홍성=오은정 기자, 사진=김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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