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파업’에 발 묶인 제철 농수산물

입력 : 2021-06-14 00:00 수정 : 2021-06-1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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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양시 다압면의 매실농장에서 새벽에 수확한 매실을 선별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농가는 이날(10일) 직거래 주문을 열건 이상 받았지만 택배노조 파업으로 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 매실을 어떻게 처리할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광양=이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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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역의 한 우체국에 비치된 택배 배달거부 내용에 관한 안내문. 이희철 기자

우체국 택배기사 대거 참여 신선식품 접수 거부에 비상

직거래 통로 막히고 품질저하 산지 APC·농민들 전전긍긍

“신선농산물 볼모 파업 안돼 택배사 서둘러 대안 마련해야”

 

전국택배노동조합 파업의 불똥이 출하기를 맞은 농수산물 산지로 튀었다. 배송 인력이 줄어 배송 지연이 예상되자 택배사들이 신선식품 중심으로 택배 접수를 받지 않으면서다. 한창 바빠야 할 시기에 직거래 통로가 막혀버린 농가들은 “택배사들이 국민의 먹거리인 농산물을 볼모로 삼았다”고 비판한다. 문제는 파업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마땅한 대안도 없다는 점이다.

택배노조는 9일부터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8일 택배기사 과로사문제를 둘러싼 노사정 합의가 불발된 데 따른 것이다. 택배사와 택배노조는 택배 분류인력 투입 등을 담은 합의안의 시행 시점을 두고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이 일부 농산물 출하기와 맞물리면서 산지는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농촌에서 의존도가 높은 우체국택배가 신선식품 택배 접수를 제한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우체국택배를 맡고 있는 우정사업본부는 위탁택배기사 약 3800명 중 2700명이 준법투쟁 형식으로 대거 파업에 참여하면서 인력 운용에 어려움이 생기자, 배송 지연 때 상할 우려가 있는 냉동·냉장 식품은 접수를 제한했다.

우체국택배로 방울토마토를 판매하는 충남 부여 세도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의 구본창 장장은 “하루 3000여건의 택배를 보내다 요 며칠 300건으로 배송 물량이 10분의 1로 줄었다”면서 “1년 중 방울토마토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에 배송에 차질이 생겨 농가와 APC의 피해가 심각하다”고 걱정했다.

다른 택배사들도 파업 참여율이 높은 지역으로 배송하는 상품에 대한 접수는 제한하고 있어 대안 마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농가들은 고객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환불해주느라 품은 품대로 들고, 판매하지 못한 상품은 그것대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탓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전남 광양의 매실농가 김준수씨는 “청매실은 하룻밤 사이에도 누렇게 변해 상품성이 떨어지는데, 택배사가 일부 지역은 배송에 2∼3일이 넘게 걸린다고 해 최근 주문을 50건 이상 취소했다”면서 “20년 넘게 직거래를 하면서 확보한 단골이 많은데 이번 일로 고객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한숨 쉬었다.

제주시 애월읍에서 초당옥수수를 재배해 직거래로 판매하는 박영선씨도 “경기 용인, 경남 거제, 울산 등이 배송 불가지역으로 분류돼 송장 출력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초당옥수수는 열이 많아 배송이 하루 이틀만 늦어져도 품질이 떨어지고 반품 가능성이 커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수산물과 가공식품도 문제가 심각하다. 홈쇼핑을 통해 매실 제품을 판매하는 한 농협 관계자는 “신선농산물이 아니라 절임 제품을 판매했는데도 배송 일정이 늦어지자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전남 완도에서 주로 수도권 소비자들과 전복을 직거래하는 한 어민은 “그야말로 택배 전쟁”이라면서 “계약을 체결한 우체국택배는 배송이 완전히 중단됐고, 대안으로 찾은 다른 택배사들도 저마다 배송불가지역이 달라 배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산지에선 손쓸 도리 없이 파업이 하루빨리 마무리되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사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의 다음 회의는 15∼16일로 예정돼 있다. 경기 여주의 참외농가 김근형씨는 “지역특산품인 <금사참외> 출하기가 맞물려 한창 택배를 보낼 시기인데, 8일에도 택배를 부치러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면서 “참외는 수확 후 2∼3일 정도만 보관이 가능해 파업이 장기화하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업계는 택배기사 처우 개선엔 공감하지만 배송 중단에 가장 민감한 농수산물을 볼모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최범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대외협력실장은 “택배기사의 열악한 처우 개선에는 공감하나 신선식품 위주로 배송을 거부하면 농축산물 판매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어 농민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면서 “택배노조는 파업에 신중을 기하고, 택배사도 서둘러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종합, 양석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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