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리’ 식량정책 뒷전 …정부지원 ‘홀대’

입력 : 2021-04-07 00:00

2012년 이후 수매제도 폐지

재배면적은 크게 줄지 않아 농가, 수확철 때면 판로 불안

밀·콩 육성엔 적극…예산 쑥 보리농가, 상대적 박탈감 커

대야농협 등 활로 모색 나서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커져가면서 콩·밀 등 국산 식량작물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대폭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유독 보리에 대해서는 정부 관심도가 바닥을 기면서 농가들이 한숨짓고 있다.


◆“팔 곳이 없어요”=1일 전북 군산시 대야면 옥교리의 한 보리밭. 어느새 발목 높이로 성큼 자란 보리가 봄철 특유의 초록빛 싱그러움을 더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얼굴엔 웃음보다 근심이 앞섰다.

농민 한동구씨(54·보덕리)는 “현재 생육상태로만 보면 5월 하순께 수확에 들어갈 것 같고, 비가 자주 내리지 않는다면 풍년이 예상된다”면서도 “값이 하락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그나마 농협경제지주·지역농협이 농민과 약정해 해당 물량만큼 사주고 있지만 수요처인 주정업체와의 협상 결과 공급가격이 해마다 떨어지는 추세다보니 매년 이맘때만 되면 마음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농협경제지주를 통한 계약재배물량 매입단가는 40㎏들이 한가마당 3만4000원으로 2019년과 견줘 4000원 내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보리는 2011년을 마지막으로 정부수매제가 전면 폐지됐다. 그러면서 판매는 고스란히 농민의 몫이 됐다.

정부 손을 떠났지만 보리 재배면적은 크게 줄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평년(최근 5년 중 최대ㆍ최소치를 뺀 평균치) 보리 재배면적은 3만8443㏊, 생산량은 13만4932t에 달한다. 같은 하곡인 밀과 견줘 재배면적은 9.6배, 생산량은 9배에 달한다. 밀은 2019년 기준 재배면적이 4000㏊, 생산량은 1만5000t에 그친다.


◆정부 관심 밖=적지 않은 생산기반을 가졌음에도 보리에 대한 정부지원은 ‘홀대’에 가깝다. 수매제 폐지 이후 보리에 투입하는 농식품부 예산은 전무한 실정이다. 다만 농촌진흥청 등을 통해 품종 개발 등을 간접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밀에 대해선 지난해 11월 제1차 밀산업 육성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콩에 대해선 올해 예산을 지난해 대비 86% 많은 1675억원을 책정한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콩은 정부가 올해산 수매가격을 1㎏당 200원 올리고 최초의 계약재배사업인 두류계약재배사업을 추진하면서 농가의 생산의욕이 크게 높아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산지에선 소비기반이 다르긴 하지만 보리의 기여도를 고려한 최소한의 정부 관심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민윤기 군산 대야농협 조합장은 “보통 보리 1필지(3967㎡·1200평)를 재배해서 연간 100만∼150만원의 순소득을 얻는데 농가들은 주로 이것을 이모작하는 벼 생산비로 충당하는 상황”이라면서 “보리를 그 자체로의 수익성으로만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민 조합장은 이어 “농가소득에 큰 보탬이 되는데도 국내 식량정책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어 농가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고 아쉬워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미자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작물기초기반과 연구관은 “물론 밀은 1인당 연간 소비량이 30㎏대로 1.3∼1.4㎏ 안팎인 보리보다 훨씬 많아 자급률 제고 필요성이 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건강 기능성 측면에선 결코 뒤지지 않는 보리의 소비기반을 넓혀 고품질 생산기반을 유지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관에 따르면 보리는 식이섬유의 일종인 베타글루칸 함유량이 밀에 뒤지지 않고 ‘혈당지수(GI)’를 낮춰 체중 감소와 당뇨 예방에 탁월하다.

일부 산지에선 다양한 자구 노력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검정보리’, <누리찰> 등 상품성이 좋고 재배가 수월한 품종을 도입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대야농협만 하더라도 올해 ‘검정보리’ 30필지를 농가와 계약재배해 60t(40㎏들이 1500가마)을 수매할 계획이다. ‘검정보리’는 폴리페놀이 일반 보리보다 2배 이상, 프로안토시아닌이 4배가량 많아 노화나 암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병철 농협보리전국협의회장(경북 신경주농협 조합장)은 “보리 수확철만 되면 과잉물량 처리를 위해 관계기관을 쫓아다니는 게 다반사인데 서로 책임을 미루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게 사실”이라면서 “식량안보 위기감이 커지는 이때 보리를 애물단지가 아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건강 곡물로 접근하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군산=김소영 기자 spur222@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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