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6차산업 권장’ 배치…정책 따라간 농가 상당 피해 우려

입력 : 2021-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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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은 화훼재배를 통한 판매수익만으로는 농장경영이 어려워지자 기존 화훼재배시설 일부를 일반인에게 개방해 부가적인 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화훼재배시설의 일부를 개방해 관람용으로 수익을 내면 농사용이 아닌 일반용 전기요금을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더이상 입장권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농민신문DB

[관람용 화훼재배시설 ‘농사용 전기요금 불가’ 파장]

농촌관광·치유농업 등 운영 농가·법인에도 적용 가능성

6차산업 인증 증가추세 속 정책 지속성에 빨간불 켜져

농식품부, 보완책 마련 절실

한전 약관 명시 ‘농사’ 용어 ‘농업’으로 바꾸는 등 대응도

 

관람객을 받는 화훼재배시설의 농사용 전기 사용이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의 여파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소득을 높이고자 6차산업에 나섰던 농가들의 상당한 피해가 우려된다.


◆1·2심 상반된 판결…대법원은 한전 손 들어줘=한국전력공사와 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의 소송이 처음부터 한전에 유리하게 흘러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1심 판결은 한전의 논리를 모두 반박하면서 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1심 판결 이후 농업계에선 이미 끝난 싸움이라고 보는 시각이 다수였다.

당시 한전은 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이 화훼재배시설을 관람용으로 이용해 수익을 내면 이 시설을 운영하는 데 드는 전기요금을 농사용이 아닌 일반용으로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관이 근거였다. 한전 약관에 따르면 전기를 2개 이상의 용도로 사용하면 계량기를 분리해 설치해야 한다. 또 계량기를 분리하지 않았다면 전기의 90% 이상을 판매단가가 낮은 용도(농사용)로 사용하지 않는 한 일반용 전기요금을 내야 한다. 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이 계량기를 분리하지 않고 전력을 2개 이상의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농사용이 아닌 일반용 전기요금을 적용했다는 게 한전 측의 설명이다.

1심은 한전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은 화훼재배시설에 쓰인 전기가 모두 작물을 재배하는 데 쓰였다는 점에서 시설의 전력 용도는 농사용이 맞다고 판단했다. 화훼재배시설을 관람용으로 개방해도 추가적인 전력 소비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 관계자는 “(생산시설이 아닌) 입장권 판매시설과 관람객용 카페는 한전과 협의를 통해 별도의 전기사용계약을 체결하고 일반용 전기요금을 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는 결과를 내놨다. 대전고등법원은 실제 전기의 사용처보다는 문제가 된 시설이 어떻게 활용됐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의 전체 매출액 가운데 50%가량이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입장료였다는 점을 들어 작물재배업이 아닌 서비스업이 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의 주된 경제활동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한전이 청구한 위약금이 너무 과중하다면서 청구액 9억원 가운데 6억원만 인정했다.

판결에 불복한 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충분한 이유가 없다면서 기각했다.


◆6차산업 기반 흔들=이번 대법원 판결로 농촌관광·치유농업 등 농업의 6차산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전이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과 유사하게 농장을 운영하는 농가·영농조합법인에도 농사용 전기 사용을 제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판결은 농업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정부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정체된 농가소득을 높이기 위해 농업의 의미를 확장한 6차산업을 적극 권장해왔다. 정부가 심사를 거쳐 발급하는 6차산업 인증사업자는 2016년 1130곳, 2018년 1524곳, 2020년 1909곳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6차산업 인증을 받지 않더라도 농장을 일부 개방해 관람용으로 수익을 내는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6차산업을 농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법부 결정이 내려지면서 정책의 지속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 대표는 2017년 5월 농식품부로부터 ‘이달의 6차산업인’으로 뽑혔었다. 이영래 한국신지식농업인회 사무국장은 “정부 정책을 따라간 농가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농식품부는 부처간 협의를 통해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농사용 전기 사용 제한을 위한 한전의 전략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전은 이전부터 농사용 전기요금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한전은 2018년(2080억원)과 2019년(1조3566억원) 대규모 적자를 내자 전기요금 개편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판매단가가 가장 낮은 농사용 전기를 표적으로 삼았다.

현장에선 이미 이러한 한전의 공세가 포착되고 있다. 6611㎡(2000평) 규모로 딸기농사를 짓는 류창영씨(52·전북 김제)는 “부가적인 수입을 올리고자 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전 직원이 와선 ‘농사용으로만 전기계량기를 설치했으니 위약금을 물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다”며 “위약금 운운하니 겁이 나 바로 일반용 전기계량기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농업계가 적극 나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크다. 우선 한전 약관에 명시된 ‘농사용 전기요금’의 ‘농사’라는 용어부터 시대 변화에 발맞춰 ‘농업’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조성호 변호사는 “이번 소송에서 농사용 전기요금의 ‘농사’를 협소하게 해석하는 재판부에 6차산업 등 새로운 농업의 트렌드를 이해시키기가 매우 어려웠다”며 “농사용 전기요금이라는 용어가 지속되는 한 새로운 농업 형태는 농사용 전력을 적용받기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은정 기자 onjung@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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