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 꼼수·저가 중국산 공세·동시다발 FTA…우리 식탁 잠식

입력 : 2020-06-10 00:00 수정 : 2020-06-30 18:40

FTA 이후 수입 농축산물 범람 원인 3가지

고추 관세 270% 달하지만 냉동은 고작 27%에 그쳐

국내 반입 어려운 과일은 가공품으로 만들어 거래

값싼 중국산 수입량 급증 배추, 최근 4년 20배나 늘어

선진국과 협정 체결 때마다 농축산물 수입 꾸준히 증가
 


우리나라는 세계 농업대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도 핵심 작목만큼은 고율관세로 보호해왔다. 그렇지만 수입 농축산물의 공세는 점점 거세지는 게 현실이다. 농협미래경영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FTA 이후 농축산물 수입동향’ 보고서를 토대로 본지는 수입 농축산물이 급증한 원인을 3가지로 짚어봤다. 보고서는 국내 생산량 대비 수입 비중이 높은 28개 품목을 선정해 2000년대 초반(2000~2003년 평균)과 최근 4개년(2016~2019년 평균)의 수입동향을 비교·분석했다.



① 냉동·가공 거쳐 고율관세 피해=우리나라는 2004년 칠레와 처음으로 FTA를 발효하고 나서 지금까지 57개국과 FTA를 체결했지만 주요 식량작물과 핵심 작목만큼은 고율관세로 보호해왔다. 예를 들어 고추 관세는 270%, 마늘은 360%에 달한다. 쌀을 제외한 모든 농축산물을 관세화를 통해 개방하기로 합의했던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상의 결과물이다. 당시에는 이처럼 높은 관세율은 외국산이 거의 못 들어오는 수준의 높은 관세장벽이라고 여겨졌다.

그렇다면 고추·마늘은 얼마나 수입됐을까. 2000년대 초반엔 연간 2만1000t에 불과했던 고추 수입물량이 최근 4개년에는 23만1000t으로 껑충 뛰었다. 고율관세가 매겨진 품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993%라는 증가율은 가히 폭발적이다.

문제는 ‘냉동’이었다. 냉동고추의 수입 관세는 27%로 건고추(270%)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수입이 냉동형태로 이뤄진다. 최근 4개년간 우리나라에 수입된 고추의 98%가 냉동고추였다. 마늘도 상황은 비슷하다. 360%의 고율관세를 피하고자 30%가 부과되는 냉동마늘의 수입 비중이 높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마늘의 69%가 냉동마늘이다.

가공식품도 복병이다. 한국 대표 과일인 사과는 병해충 우려로 국내 반입이 막혀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거의 없다시피 하던 사과 수입량은 최근 4개년에는 1만2000t으로 집계됐다. 신선사과가 아니라 가공을 거쳐 들어왔기 때문이다. 세부 수입품목을 보면 96%가 사과주스다. 우리나라에 사과주스를 가장 많이 파는 나라인 칠레는 FTA에 따른 관세 인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45%였던 칠레산 사과주스 관세는 10년간 단계적으로 낮아져 2014년 완전히 사라졌다. 신선토마토 역시 검역문제로 수입실적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토마토페이스트·토마토소스 같은 가공품 수입이 늘어나는 추세다.

② 거세지는 중국 농축산물 공세=얼려서 또는 가공을 거쳐 들어오는 농축산물의 상당수는 중국산이다. 특히 김치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배추(김치 포함)는 전량 중국산이다.

국내 외식산업이 저렴한 중국산 배추에 의존하면서 수입량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배추 수입량은 2000년대 초반에는 1만t을 웃돌았는데 최근 4개년에는 28만2000t으로 폭증했다. 이 기간에 20배 넘게 수입량이 껑충 뛴 품목은 배추가 유일하다.

이욱 농협미래경영연구소 북방통상팀장은 “고추·마늘 등 각종 양념채소가 들어가는 김치는 고율관세를 피해서 우리 식탁을 잠식하는 대표적인 품목”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중국산 김치에 매겨지는 관세는 19.8%에 불과하다. 냉동고추(27%)·냉동마늘(30%)보다 더 낮은 셈이다.

UR 농업협상 이후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농업을 둘러싼 현실이 크게 달라진 점도 한몫했다. 이 팀장은 “1993년 당시에는 농산물 처리기술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고, 농축산물 소비 문화상 냉동채소나 가공상품은 관심 밖이었던 측면이 있다”면서 “지금처럼 고율관세가 유명무실해질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와 중국이 수교를 맺은 게 1992년”이라면서 “UR 농업협상 당시에는 값싼 중국산 농축산물에 대한 우려가 1순위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③ 누적된 FTA 파급 영향=동시다발적인 FTA 체결 영향도 크다. 농협미래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 최근 4개년 수입물량과 수입액은 각각 45%, 251% 증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수입이 잠깐 주춤했던 때를 제외하면 2000년대 이후 농축산물 수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무역수지 적자도 심화하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는 2000년대 초반 59억달러에서 최근 4개년엔 196억달러로 230% 증가했다.

특히 세계적인 농업 선진국과 FTA를 체결할 때마다 수입량은 빠르게 상승곡선을 탔다. 과실류 수입은 2012년 한·미 FTA 발효 이후 빠르게 늘어났다. 한·미 FTA 이전과 비교해 최근 4개년 수입량과 수입액은 각각 129%, 381% 증가했다. 낙농품은 한·유럽연합(EU) FTA 발효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수입이 늘었다. 한·EU FTA 이전과 비교해 최근 4개년 수입량은 150%, 수입액은 428% 증가했다.  

함규원 기자 o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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