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교역이 식량안보 보장? 감염병 확산에 헛구호 판명

입력 : 2020-04-06 00:00 수정 : 2020-04-06 23:46

주요 식량 수출국 빗장 걸어 FAO “식량위기 발생 전망”

WTO 역할, 허수아비 불과



“신자유주의가 식량안보를 공고히 해줄 것이다.”

미국이나 케언즈그룹(농산물 수출국 모임) 같은 식량 수출국들의 주장이다. 시장 개방과 관세 인하를 통한 식량의 자유로운 교역이 식량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식량안보를 강화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주장은 허구라는 게 다시 한번 입증됐다. 코로나19로 검역장벽이 높아지면서 국제적인 식량 수급에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첨병인 세계무역기구(WTO)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3월24일부터, 캄보디아는 4월5일부터 쌀 수출을 금지했다. 러시아도 3월20일부터 열흘 동안 모든 종류의 곡물 수출을 일시적으로 제한했다. 카자흐스탄도 최근 밀가루와 메밀·설탕 수출을 중단했다. 중국은 쌀 수매를 사상 최대 규모로 확대해 향후 수출 물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식량 수출국들의 이같은 조치로 수입국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식료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같은 나라들은 곡물 수입을 늘리는 등 식량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자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조만간 식량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FAO는 “코로나19가 국제 식량 공급체계에 미칠 악영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4~5월에 식량 공급망의 붕괴가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피치그룹 산하의 컨설팅업체인 피치솔루션스도 “일부 국가들은 식량안보 차원에서 무역 통제나 공격적인 비축에 나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농산물 수출국이 곡물 수출을 중단하고, 수입국에서 식량 폭동 사태가 발생해도 WTO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WTO는 모든 무역장벽을 허물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바탕으로 설립된 기구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지역적인 식량 수급에 불균형이 발생하더라도 신자유주의 아래에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2006~2008년, 2010~2011년 발생했던 두차례의 국제적 식량위기 때도 WTO는 허수아비에 가까웠다. 러시아·중국·우크라이나 등 주요 곡물 생산국이 수출 통제에 나서면서 국제 밀·옥수수·콩 가격이 폭등했지만, WTO가 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WTO 농업협정 아래에서는 수출국이 수출세 인상이나 수출 수량 제한 같은 수출 규제 정책을 시행할 때 WTO에 ‘통보’만 하면 된다.

이에 따라 식량안보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식량 수입국들의 주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한국·일본 같은 식량 수입국들은 국내 생산을 늘려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려야 식량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양승룡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식량안보를 강화하려면 국내 생산 기반 유지를 위한 식량자급률 법제화 등의 노력이 우선 필요하고, 국제시장에서의 곡물 조달 능력 제고, 수입선 다변화 등 다양한 정책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륜 기자 seolyoo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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