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 경로당…어르신들 ‘속앓이’

입력 : 2020-02-14 00:00 수정 : 2020-02-14 23:39

‘신종 코로나’가 바꾼 농촌 풍경

공동생활 시설 폐쇄 잇따라 식사 챙기기 버거워 ‘한숨’

일자리사업 중단 생계 걱정


“언제 다시 연대요? 얼른 다시 열어야지. 하루가 열흘 같아요.”

11일 오후 12시30분, 경기 여주시 강천면에 있는 ‘카네이션 하우스’는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카네이션 하우스란 홀몸어르신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신체적·심리적 문제를 예방할 수 있도록 경로당·마을회관을 개조한 곳이다.

평소대로라면 식사도우미들이 와서 점심을 챙겨줄 시간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사태로 카네이션 하우스가 문을 닫으면서 송순자 할머니(77)는 집에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시간을 때우려 동네 길을 걷는 중이었다. 항상 함께 밥을 먹던 ‘형님들’ 얼굴을 못 보니 입맛도 뚝 떨어졌다. 한평생 농사짓느라 팔다리 성한 곳이 없지만 병이 전염될까 무서워 병원도 못 가는 요즘이다. 공동생활을 하던 형님들 중에는 올해 92세가 된 어르신도 있다. 송 할머니는 자신보다도 “혼자 사는 형님들이 밥은 잘 챙겨드실지”가 걱정이라고 했다.

경로당과 같은 복지시설은 어르신들에게 삶터이자 쉼터다. 요즘 같은 농한기에는 경로당이 문을 열면 ‘출근’하다시피 한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 사태로 경로당 등 복지시설의 문을 닫는 지방자치단체가 늘면서 어르신들이 갈 곳을 잃었다. 여주시에선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신종 코로나 확산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관내 경로당과 카네이션 하우스의 휴관을 최근 권고했다. 어르신들은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것을 알면서도 답답하고 불편한 심정이다.

겨우내 어르신들이 함께 식사하던 능서면 광대2리 경로당은 ‘절절 끓던’ 마룻바닥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경로당에 매일같이 다니시던 박군순 할머니(83)는 최근 쓸개에서 돌을 빼내는 수술을 했다.

겨우 걷기만 하는 형편이지만 경로당이 문 닫으면서 끼니를 챙기기가 버거워졌다. 보건소에서 가끔 나와 건강체크도 해주고 안마의자에 앉아 뭉친 다리를 풀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집에서 애꿎은 TV 리모컨만 붙들고 있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지자체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12일 기준 확진자가 3명 나온 전남도의 경우 노인 복지시설뿐 아니라 노인 복지정책도 ‘올스톱’ 됐다.

전남도에 따르면 보성·장성·순천·나주·목포·여수·신안·화순 등에서 기초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노인 일자리사업이 잠정 중단됐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의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다. 전남도 관계자는 “상황이 개선될 경우 다음주부터 일부 시·군에서 사업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재개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노인 상당수가 생계유지를 위해 일자리를 구한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나타난 한국 노인의 삶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대다수가 ‘생계비 마련(73%)’을 목적으로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에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인 일자리는 월 10일, 30시간 이상 일해야만 ‘활동비’를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태로 노인 일자리 참여자가 월 30시간을 채우지 못할 경우 다음달 시간을 채워 활동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남 13개 시·군(12일 기준)에선 취약계층 노인을 대상으로 한 공동 무료급식도 중단된 상태다. 전남도 관계자는 “함께 모여 밥을 먹지는 않지만, 취약계층에게 식사를 배달하고 있다”며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식사에 문제가 없도록 공동급식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에 없던 전염병이 취약 노인들을 차가운 방바닥에 묶어두고 있다. 유난히 따뜻했던 올겨울, 막바지에 찾아온 불청객 때문에 노인들은 이번 겨울을 유독 시리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여주=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