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WTO 개도국 지위 잃으면 …농업보조금 절반 이상 ‘싹둑’

입력 : 2019-04-29 00:00 수정 : 2019-05-01 23:48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손질하자고 나선 가운데 불똥이 우리나라로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잃게 되면 관세와 보조금을 대폭 감축해야 하는 등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부활절 축하행사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관세로 농산물 보호 못하고 농업보조금 절반 이상 ‘싹둑’  

특별품목 등 최대 17.3% 관세감축 적게 해 보호하지만

선진국은 농산물 4%만 해당

AMS 지급 한도도 7000억원대로 떨어질 듯

대책은

개도국·선진국 중간 수준의 의무이행 선제적 선언 필요

개도국 지위 유지 위한 논리 개발과 국제사회 설득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의 개발도상국 지위 논의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다. 특히 농업부문에서 개도국과 선진국의 의무이행 차이는 어마어마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면 한국 농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앞으로 우리 정부는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지를 알아본다.
 



◆개도국 지위란=현재 국제법상 선진국과 개도국을 나누는 일반적인 정의나 기준은 없다. WTO에서도 회원 당사국의 선택과 그에 대한 다른 회원국의 암묵적인 동의에 따르고 있다. 이른바 ‘자기선언(Self-declaration)’의 원칙에 맡기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WTO 164개 회원국 가운데 개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가 3분의 2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상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당시 우리나라는 농업의 취약성을 근거로 개도국 지위를 주장했고, 이를 인정받음으로써 개도국 우대혜택을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개도국 지위가 중요한 이유는 선진국이냐 개도국이냐에 따라 농산물시장 개방의 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임송수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선진국 조건에서는 관세감축 등으로 농산물시장의 대부분을 열어젖혀야 하고, 국내 농산물가격 지지를 위한 보조금 규제도 엄격해진다”면서 “우리가 선진국으로 인정받으면 관세와 보조금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WTO 체제 이후 새롭게 시작된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에서 가장 최근 제시된 농업분야 세부원칙(관세·보조금 감축 기본 틀) 4차 수정안에 따르면 선진국과 개도국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개도국은 특별품목 12%, 민감품목 5.3% 등 최대 17.3%에 대해 관세감축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반면 선진국은 전체 농산물의 4%만 민감품목으로 보호하고 나머지는 관세를 대폭 깎아야 한다. 선진국은 특별품목도 활용할 수 없다. 

농업보조금의 한도 역시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 농업보조총액(AMS)을 연간 1조4900억원까지 쓸 수 있다. 쌀값 안정장치 역할을 하는 쌀 변동직불금으로 쓰이는 중요한 예산이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세부원칙이 정해진 것이 없어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개도국 지위를 잃게 되면 AMS 지급 한도는 7000억원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응방안은=통상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WTO 논의를 남의 일처럼 손 놓고 지켜볼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지속해오면서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진 만큼 현실적으로 개도국 지위를 고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임송수 교수는 “예전보다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라며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면서도 우리 여건에 맞는 (선진국으로서의) 의무는 받아들여야 할 단계에 왔다”고 평가했다. 서진교 선임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99% 기정사실”이라고 전제한 뒤 “개도국과 선진국 중간 수준의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선제적으로 연착륙방안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선제적 제안의 대표적 사례로 대만식 전략이 있다. 대만은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것을 최대한 미루기 위해 DDA 이후의 차기 다자간협상에서는 개도국 우대를 요청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번은 아니지만 다음부터는 선진국 지위로 참여하겠다는 전략이다.

개도국 지위를 지키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는 등 개도국 지위 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개도국 지위를 잃게 되면 AMS 감축 등 한국 농업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개도국 지위 유지는 어떤 문제보다도 우선순위가 높은 협상과제”라며 “한국 농업 여건상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야만 하는 논리를 발굴하고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규원 기자 o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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