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비준 후 보완’…알셉 밀어붙이는 정부

입력 : 2021-11-24 00:00
그래픽=이유미

의원들 “15만쪽 협정문 검토 시간 촉박

정확한 농업 피해분석·농민과 소통 우선”

 

내년 1월1일 발효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 열차에 올라타기 위해 정부가 국회 비준 동의를 밀어붙였지만 역풍이 만만찮은 모양새다.

2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공개한 회의록을 보면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16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된 알셉 비준동의안과 관련해 “대외적으로 발효가 되는 비준 동의 과정은 조속히 마치고 (농업) 대책은 지속적으로 보완해가는 게 전체적인 국익 차원에서 제일 바람직하다”고 발언했다. 알셉 발효에 따른 농업 피해를 우려하는 지적이 나오자 조속한 추진이 필요하다는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였다.

알셉은 한국을 포함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과 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초대형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회원국 협상은 지난해 11월 타결됐다. 회원국 중 10개국이 비준서 기탁을 마쳐 2022년 1월1일 발효 조건은 충족됐으나, 우리나라는 국내 비준이 마무리되지 않아 지각 탑승이 예상된다. 알셉 발효 이후 비준서를 기탁한 국가들은 그 시점으로부터 60일이 지나야 협정문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정부는 연내 비준을 마치고 회원국과 협의해 내년 1월1일 발효에 동참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피해산업인 농업 지원대책은 나중에 보완하더라도 비준 절차는 서둘러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의원들은 정부가 10월에야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고 국회 처리를 촉구하는 데 난색을 표했다. 15만쪽이나 되는 협정문을 불과 30분 토의하고 통과시켜야 한다면 너무 불합리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은 “데드라인이 임박한 시점에서 무조건 통과를 시켜야만 하는 환경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당사자인 농민 피해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라든가 보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안양동안을)도 “하루가 급한 상황인 걸 국회도 잘 알고 있기에 미리 소통하고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정부가 왜 갖지 못했는지 질책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알셉에 대한 농업계의 반대가 크지 않다고 보고했다가 견강부회식 해석이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알셉 자체에 대해서 ‘영향이 크다’거나 ‘대책이 부족하다’ 이런 논의는 농업계에서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15일 세종시에서 열린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집회에서도 알셉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당일 한농연 집회는 내년 농정예산 확보가 주된 의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은 “시위 주제가 알셉하고 상관이 없으니까 얘기가 안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알셉에 대한 반대가 안 나왔으니까 농민들이 다 찬성한다는 식으로 정부가 얘기해선 안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알셉 영향평가 결과, 농업분야에 20년간 1531억원의 누적 피해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선행적으로 10년간 1580억원을 투자하는 국내 보완대책을 농업계와 협의해 마련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하지만 농업계는 정부의 피해 분석을 신뢰하기 어렵고 대책 마련 과정에서 충분한 협의도 없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농업계와 소통하는 자리를 갖지 않았고, 농림축산식품부가 농민단체 대표자 등과 몇차례 협의회를 했지만 협의가 아닌 설명의 자리였을 뿐”이라며 “농업계가 우려하는 ‘원산지 통합규정’의 파급력 등을 감안, 실질적 피해액 산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국내 과수 생산액이 연 4조5000억원이나 되는데 정부가 피해액을 너무 축소해서 보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며 “공청회를 열어 농산품 피해를 점검하고 농민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경진 기자 hongkj@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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