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통제로 식량안보 위협…자급률 목표치 법제화해야”

입력 : 2020-05-22 00:00 수정 : 2020-05-23 23:57
‘코로나19 이후 한국농정,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가 19일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주최로 농민·정관계·학계 등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희철 기자 photolee@nongmin.com

민주당, 국회서 ‘코로나19 이후 한국농정’ 토론회 열어

외국 물자·인력 수급 비상 식량문제 주요 과제로 부상

통합형 계약재배 확대해 기초농산물 자급도 높여야

비대면 경제활동 가속화 맞춤형 물류체계 구축 시급

지속가능한 농업발전 위해 생산구조·농정조직도 개선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전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잦아든다 해도 갖가지 영역에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농업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위원장 이낙연)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코로나19 이후 한국농정,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를 열었다. 코로나19가 국내 농업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에 농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세계적 이동 제한…식량 확보 위협=글로벌 공급망이 헐거워지는 환경에서 식량·인력 수급문제가 주요 과제로 부상했다. 종전까진 값싼 물자와 인력을 국경의 제약 없이 들여올 수 있었지만 코로나19가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밀·옥수수 등을 사실상 전량 수입하고 주요 농업 생산을 외국 인력에 크게 의존하는 국내 현실에 직격탄인 셈이다.

주제발표를 맡은 유영봉 제주대학교 산업응용경제학과 교수는 노동력과 종자·자재·기계 등의 이동 제한을 초래한 코로나19 위기가 과거의 위험과는 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과거의 식량안보 위험은 자유무역 시장질서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였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새로운 국면의 식량안보와 푸드체인의 안정성 확보가 매우 중요한 위험관리 요소로 대두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유무역에만 의존할 수 없는 식량안보문제를 국가가 단단히 챙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호 단국대학교 환경자원학과 교수는 “농정에서 시장보다 정부와 공공영역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며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법제화해 기초농산물 자급도를 높이고 이를 뒷받침할 생산·가공·유통 통합형 계약재배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코로나19 이후 20여개국이 식량 수출 제한에 나섰는데 세계무역기구(WTO)는 이와 관련해 단 4개국의 통보만 받았을 뿐 허수아비처럼 대응 조치를 못하고 있다”며 “WTO의 약화 또는 해체를 전제한 식량주권 유지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은 “WTO 체제의 후퇴가 예상되지만 국내 경지면적이 국민 1인당 330㎡(100평) 수준에 불과해 풍요로운 식탁을 꾸리려면 해외 의존은 불가피하다”며 “국내 생산과 수입의 적정한 포트폴리오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면·저밀도 전환 가속화=감염병 확산이 비대면 활동을 증대시키면서 농산물 생산과 유통 측면에서 ‘언택트(Untact·비대면)’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생산영역에선 빅데이터·인공지능(AI)을 활용한 농업의 디지털화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가 될 것이란 진단이다.

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정책기획관은 “핵심 방역대책으로 ‘거리 두기’를 추진하면서 축산·시설농업은 물론 노지농업에서도 인력수요 자체를 줄이는 자동화 생산방식이 중요해졌다”며 “정부도 노지 정밀농업 관련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견돼 일대 혼란을 겪었는데 도매 유통의 변화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며 “농산물을 도매시장으로 가지고 올 필요가 없도록 산지공판장 온라인 거래 전환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로컬푸드 등 대안유통과 온라인 거래 증가에 따른 물류체계 구축도 급선무로 꼽혔다. 장철훈 농협경제지주 농업경제대표는 “온라인 거래가 늘면 벌크(대용량) 판매가 어려워 소포장·가공 등의 작업이 추가되고, 상품이 소비자에게 최종 전달되기 전까지 판매자의 책임범위가 늘어난다”며 “비대면 시장 확대에 따른 상품 개발과 물류체계 확립이 시급하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저밀도 농촌공간에 대한 수요를 창출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김홍상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코로나19가 촉발한 저밀도 생활방식이 농촌의 공간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며 “4차산업혁명 기술과 사회적 자본의 결합을 통해 농촌에서 재택근무·케어팜(치유농장)·저밀도경제에 적합한 공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호 교수는 “농촌이 쾌적한 정주공간으로 조명받을 기회를 살려야 한다”며 “토건사업 중심의 농촌 개발을 지양하고, 생태계 순환원리에 기초한 공간관리, 농업 생산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농산업 구조 대수술 필요=전문가들은 한국농업의 생산구조와 농정조직 등이 ‘기저질환’을 앓는 상태에서 코로나19라는 충격을 받았다고 진단했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선 체질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유영봉 교수는 “첨단 정밀농업에 대응하는 대규모 농지 정비사업으로 미래형 생산 기반을 갖춰야 한다”며 “예산 확보 및 투자계획 수립과 동시에 농지 소유와 이용에 관한 제도적 정비를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농민이 매우 다양한 구조로 분화했는데 농민의 정의는 여전히 1960년대 관점에 머물러 있다”며 “정책대상으로서의 농민 기준을 명확히 설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환 이사장은 “공익직불제가 농정의 주요 축으로 등장하면서 영농행위 모니터링이 중요해졌고, 코로나19 국면에서 농업통상·고용 부문에도 새로운 역할이 부여돼야 할 상황”이라며 “농식품부와 산하 농정조직을 어떻게 전면 개편할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 내용을 청취한 이낙연 위원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농업의 오랜 과제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다 해결되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해야 할 일은 완급을 가려 추진하고, (제시된 의견들을) ‘한국판 뉴딜’과 병행할 과제로 중요하게 다루겠다”고 밝혔다.

홍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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