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수매현장 가보니…“자동시장격리제 서둘러 발동해야” 쏟아진 목소리

입력 : 2021-10-13 00:00
01010100501.20211013.001317504.02.jpg
8일 충남 당진해나루쌀조합공동사업법인에서 한 작업자가 농가로부터 수매한 벼를 투입구에 쏟아붓고 있다.

당진해나루쌀조공법인 벼 수매 현장 가보니

생산량, 수요량보다 3% 이상 많으면 발동…올해는 요건 충족

정부 “쌀값 낮춰야” 뒷짐…농가 “이미 가격 하락세 조치 시급”

 

“자동시장격리제 발동 요건이 충족됐다고 하는데 정부는 발동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네요. 이러다가는 어렵게 회복된 쌀값이 다시 곤두박질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8일 충남 당진해나루쌀조합공동사업법인(대표 박승석). 9월29일 시작된 햇벼 수매가 한창이었다. 조공법인은 당진 송악농협·송산농협·당진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이 합쳐진 통합 RPC로 해마다 약 2000농가로부터 2만7000여t의 벼를 수매한다.

수매 초기라 하루에 입고되는 벼의 양은 100t가량으로 많지 않았다. 게다가 이날까지 3일 연속 비가 내려 수확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못해 입고 물량은 매우 적었다. 추수철답지 않게 한산하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수매 현장을 찾은 농가와 RPC 관계자들의 속내는 어느 해보다 복잡했다.

올해 ‘쌀값이 높은 상황에서 풍년’이 드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되다보니 쌀 수급 안정을 위해 도입한 자동시장격리제가 제대로 작동할지, 향후 쌀값이 어떻게 전개될지, 벼값은 괜찮게 받을 수 있을지 등으로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인지 수매 현장에서 만난 벼농가들은 올해 작황과 농가들이 원하는 벼값 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자동시장격리제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태도부터 지적하고 나섰다.

최원묵씨(65·송악읍 부곡1리)는 “발동하지도 않을 제도를 뭐 하러 만들어놨느냐”며 “과거 경험으로 봤을 때 적기에 시장격리를 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가들이 이 제도의 발동 여부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날 발표된 ‘2021년 쌀 예상생산량 조사 결과’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올해산 쌀 생산량은 382만7000t으로 전망된다. 이는 예상 수요량 357만∼361만t을 21만7000∼25만7000t 초과하는 양이다. 이 초과되는 양이 생산량의 3% 이상이면 자동시장격리제를 발동해 정부가 일부 물량을 시장격리한다.

올해는 초과 생산량이 생산량의 5.7∼6.7%다. 농협이 가지고 있는 2020년산 구곡 재고 7만t까지 포함하면 7.5∼8.5%로 높아진다. 발동 요건이 차고 넘칠 정도로 충족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쌀값이 유례없이 높은 현 상황에서는 시장격리를 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당초 자동시장격리제 발동에 긍정적이었으나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커지면서 쌀값을 더 낮춰야 한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급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노재학씨(68·송악읍 가교2리)는 “수십년간 공산품 가격 올라간 걸 생각하면 현재 쌀값은 80㎏에 40만원쯤 해도 높은 게 아니다”라며 “올해 쌀 생산량이 굉장히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정부가 자동시장격리제를 통해 적정 물량을 격리하지 않으면 쌀값은 수확기 이후 줄기차게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번 떨어진 쌀값을 다시 높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동안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느냐”고 덧붙였다.

김석태 한국쌀전업농당진시연합회장은 “정부는 물가상승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적은 쌀값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며 “자동시장격리제는 쌀 변동직불금 폐지에 따른 쌀 수급 안정 장치로서 치열한 논의를 거쳐 마련했고 올해의 경우 요건까지 충족한 만큼 반드시 발동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쌀값은 이미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서둘러 자동시장격리제를 발동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승석 대표는 “추석 명절 이전에 5만원을 넘던 쌀 도매가격(20㎏ 기준)은 현재 4만6000∼4만8000원으로 떨어졌고, 소매가격도 4만8000∼5만원으로 내려갔다”며 “이런 상황에서 올해 생산량까지 수요량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선제적인 시장격리 조치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자동시장격리제를 발동해 선제적으로 시장격리를 해야 벼값이 안정적으로 정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당진지역 농민단체들은 올해산 벼수매 값으로 40㎏(특등 기준)당 8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7만원선보다 1만원 정도 높은 가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RPC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올해 초과 생산량을 고려했을 때 아무런 시장격리 조치가 없을 경우 쌀값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벼값을 높게 줄 순 없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정부가 시장격리를 통해 올해산 쌀의 수요 공급을 어느 정도 선에서 맞춰줘야 벼값도 정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진=서륜 기자 seolyoon@nongmin.com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