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들, 돈 더 주는 곳으로 훌쩍…코로나 인력난이 부른 씁쓸한 농촌풍경

입력 : 2021-06-14 00:00 수정 : 2021-06-1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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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석모씨가 외국인 근로자가 야반도주한 탓에 수확을 포기한 채 방치된 비닐하우스에서 시들어버린 방울토마토를 살펴보고 있다.

코로나로 근로자수 부족 중개업체 인력 빼가기 일쑤

수확작업 차질…농민 한숨 스트레스에 극단적 선택도

대체인력 구하기 어려워 7만~8만원 하던 인건비 12만~13만원으로 치솟아

정부 강력단속 … 지원책 시급

 

“외국인 근로자들이 야반도주한 바람에 수확을 못한 방울토마토가 밭에서 썩고 있습니다.”

충남 논산시 성동면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석모씨(60)는 이렇게 하소연하며 가슴을 쳤다. 석씨의 영농 규모는 비닐하우스 40동으로 꽤 크다. 이에 외국인 근로자 4명을 고용해 일했는데 5월20일 이 중 3명이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졌다. 전날 지급한 월급만 챙겨 떠난 것이다.

석씨는 “그동안 근로자들한테 잘해줬는데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숙소 개선 정책에 맞춰 자신의 집을 근로자들에게 내주고 남편과 함께 읍내 아파트로 이사 갈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서운함은 더 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석씨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지역농민들의 말이다. 인근에서 배추를 재배하는 김승권씨는 “외국인 근로자의 야반도주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들어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고 전했다. 실제로 논산시 은진면에서 딸기농사를 짓는 이재현씨는 “함께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11명이 올해 모두 말도 없이 떠나버렸다”고 말했다.

한 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법인 회원 120농가 가운데 10곳 정도가 외국인 근로자 야반도주 피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례까지 발생했다. 성동면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A씨는 최근 데리고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가 줄행랑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가 없어서 수확작업을 못하게 되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근로자의 야반도주 사례가 크게 늘어난 이유는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수가 부족해지면서 인력중개업체들이 고용허가제(E-9)를 통해 합법적으로 일하는 근로자까지 빼간다는 것이다. 근로자들은 농가에 고용돼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도망가면 불법체류자가 되는데도 야반도주를 감행한다고 한다.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이 떠안고 있다. 석씨의 경우 일할 외국인 근로자가 부족해 더이상 수확작업이 불가능해지자 비닐하우스 40동 가운데 8동은 로터리를 쳐버렸고, 다른 11동은 손도 못 대고 방치하고 있다. 방치된 비닐하우스에 있는 방울토마토는 물러져 썩고 있다.

석씨는 남은 근로자 1명과 함께 나머지 비닐하우스에서 방울토마토를 근근이 수확하고 있다. 인력중개업체를 통해 어렵사리 인력을 공급받기도 한다. 하지만 껑충 뛴 인건비는 또 다른 어려움이 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7만∼8만원이던 일당이 지금은 12만∼13만원으로 치솟았다는 게 농민들의 얘기다. 김승권씨는 “이런 돈을 주고도 인력을 구할 수 없다는 게 지금 농촌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가 이탈하는 일이 잦아지자 농민들은 근로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한다는 전언이다. 한 농가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잘 보이려고 수시로 피자·치킨을 시켜주기도 하고, 일할 때 싫은 소리나 추가 작업을 지시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경남 밀양에서 4958㎡(1500평) 규모로 깻잎농사를 짓는 권모씨(55)는 올 4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농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2명 중 1명이 야반도주한 것. 해당 외국인 근로자는 그동안 일을 썩 잘하진 못했지만 사정을 봐줘서 함께 일해왔다. 권씨는 “믿었던 근로자였는데 저녁에 일 끝나고 말 한마디 없이 짐을 다 챙겨 가버려 괘씸하기도 하고 배신감마저 들었다”며 “특별히 문제가 있지도 않았는데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웃 김모씨(64) 농장에서도 같은 달에 7년 가까이 데리고 있던 외국인 근로자가 월급을 받고는 아무 말 없이 사라져버렸다. 여러번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6∼7차례나 보냈지만 이렇다 할 답이 없었다. 김씨는 “그동안 쌓인 정이 있어 잘해줬는데 이렇게 나가버리니 씁쓸할 따름”이라며 “외국인 근로자수에 맞춰 농사지어 왔는데, 갑자기 한명이 빠져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농촌에 인력난이 심화하면서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건비가 크게 오르자 이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는 게 농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는 모습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가 정해진 작업장을 이탈할 경우 신고하면 다른 근로자를 다시 배정받는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면서도 “새로운 근로자가 언제 배정될지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논산시에서 상추를 재배하는 김모씨는 “신고해봐도 소용없다”며 “원래 배정받은 인원도 들어오기 힘든 시국인데 언제 다시 신청해서 어느 세월에 입국하길 기다리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농가를 무단으로 이탈한 외국인 근로자와 이를 조장하는 인력중개업체를 강력히 단속하는 동시에, 근로자가 사라질 경우 신속하게 대체 인력을 보내주는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논산=서륜, 밀양=노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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