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종자 개발 불철주야 …밥상 위 전쟁 선봉장

입력 : 2021-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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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농업기술원 농산물원종장 양성년 연구사(왼쪽)와 전은미 주무관이 연구용 비닐하우스에서 국내 육성 메밀 품종인 ‘양절’을 살펴보고 있다.

종자주권 지키기 현장

양평 ‘전국 토종벼 농부대회’ 농업회사법인 우보농장 활약 250여개 품종 상품화 공들여

제주, 메밀 국산 점유율 0.8% 도농기원 품종 보급 적극 나서

전남도 자체 개발 벼 ‘새청무’ 외래종 대체 특화쌀로 인기

 

세계 각국마다 경쟁력 있는 종자를 확보하려는 소리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식량주권이 중시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종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K―종자’ 육성 현장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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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이 농업회사법인 우보농장 대표가 토종쌀을 들어 보이고 있다.

◆경기 양평 ‘토종벼’ 육성·보급 한창=조용했던 경기 양평군 청운면 토종벼 채종포 단지가 최근 사람들로 북적였다. 각 지역 토종벼 재배농민들이 참여하는 ‘전국 토종벼 농부 대회’가 열린 것. 이 행사에서 90여명의 농민들은 각자 생산한 토종볍씨를 나누고 관련 정보를 교환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토종볍씨 복원·보급을 목표로 2014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이 행사의 중심에는 이근이 농업회사법인 우보농장 대표가 있다. ‘토종벼 전도사’로 유명한 이 대표는 10여년째 토종벼를 기르며 직접 채종한 볍씨를 전국에 보급하고 있다. 그가 키우는 품종만 250여개. 이렇게 수많은 품종을 보유하기까지는 토종 종자를 지키려는 이 대표의 노력이 컸다.

이 대표는 “10여년 전 자급자족을 목표로 토종작물로 밭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이후 진정한 자급자족 실현을 위해 토종쌀 생산에 도전하게 됐다”면서 “문화적·역사적 가치가 무궁무진한 토종벼를 우리가 심고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16㎡(약 5평) 남짓한 논에 토종벼 30여품종을 심었고, 더 많은 볍씨를 구하고자 발품을 팔았다.

그가 꼽는 토종벼의 매력은 다양성이다. 이 대표에 따르면 1451종에 달하는 토종벼는 각 지역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며 자라 저마다 다른 맛과 특성을 지녔다. 이름마저 모두 다른 데다 그 이름엔 역사성까지 담겨 있다. 이처럼 품종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닌 토종벼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존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의 또 다른 목표는 토종벼 복원과 함께 이들 벼를 상품화해 그 가치를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양평군과 협력해 약 4만9500㎡(약 1만5000평) 규모의 채종포에 250여품종의 토종벼를 재배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한톨의 볍씨에서 1000알의 쌀이 증식하는 과정을 보며 토종벼가 전국 구석구석에 퍼질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낀다”며 “수많은 벼가 지역 고유의 품종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토종볍씨 복원과 보급에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제주, 국산 메밀 품종 육성 박차=제주에선 메밀 품종을 국산화하기 위한 연구가 본격 시작됐다. 제주는 국내 메밀 최대 산지로 연간 생산량은 974t에 달하며, 재배면적도 전국(2330㏊)의 약 47.5%를 차지한다. 그러나 국내 육성 품종 점유율은 0.8%에 불과하다. 농가가 품종 미상의 외국산 식용 메밀을 파종하거나 혼종 종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게 주된 원인이다. 또한 농가 대부분이 메밀을 주소득작목이 아닌 사이짓기(간작)용 작물로 생산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재배관리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제주도농업기술원은 국산 메밀 품종 안정생산 기술개발과 종자 보급체계 확립을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1995년부터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육성하는 <양절>을 주 연구·보급 품종으로 삼았다. 연구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진행되며, 약 4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한다.

구체적으로 ▲재배기술 개발 ▲농가 현장연구 ▲채종단지 조성 ▲도내 메밀산업 현황조사 등에 대한 연구가 수행된다. 특히 국산 메밀 품종 채종단지를 조성해 2023년부터 매년 30t의 국산 종자를 도내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다. 양성년 도농기원 농산물원종장 작물종자연구팀 연구사는 “메밀의 기대 생산량은 파종량의 10배 정도로 한번 보급하면 약 300t의 국내 품종 메밀을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식용 메밀은 타가수분(같은 종의 식물에서 한식물이 다른 식물의 꽃가루에 의해 수정되는 것)하는 특성이 있어 국산 종자 보급이 확대될수록 도내 메밀 품종의 국산화도 가속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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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의 ‘새청무’ 품종 쌀.

◆전남도, 자체 개발 벼 품종으로 고품질 쌀시장 겨냥=농도인 전남에서도 K-종자 바람이 거세다. 특히 전남도가 개발한 벼 품종 <새청무>가 무서운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이같은 영향으로 지난해 전남에서 재배된 쌀 품종 중 <고시히카리> <히토메보레> 등 외래 품종이 차지한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전남도농업기술원은 전남농협지역본부와 함께 2019년 <새청무> 보급을 본격 시작했다. 사업 첫해 재배면적은 5000㏊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2만㏊로 4배 늘어났고, 올해는 8만㏊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남 전체 벼 재배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전남 지역의 재배환경에 ‘맞춤형’으로 개발된 품종으로, 쓰러짐(도복) 피해가 감소하는 등 재배가 용이한 장점 덕분이다. 거기다 밥맛도 좋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보급 확대의 이유라는 게 도농기원의 설명이다.

여기에 <새청무> 확대를 통해 전남만의 특화 품종을 정립하려는 전남농협의 노력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조기영 농협경제지주 전남지역본부 양곡자재단장은 “10여년 전에 개발됐지만 빛을 보지 못하던 <새청무>를 다시 꺼내 보급하기 시작한 것이 전남농협”이라면서 “그동안 도농기원과 협력해 농가 홍보와 교육은 물론이고 계약재배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새청무>의 인기에 힘입어 전남농협은 도와 협의를 통해 올해를 ‘전남 쌀 종자주권 독립의 해’로 선언하고 국산 고품질 쌀 종자산업 육성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5월 중 선언식을 갖고 외래품종 배제, 기후변화에 대응한 국산 쌀 품종 개발, 전남쌀 이미지 고급화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양평=최문희, 제주=심재웅, 무안=이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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