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배추 ‘꽁꽁’ 시설채소·화훼 ‘시들’…냉가슴 앓는 농가

입력 : 2021-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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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 한파로 언피해를 본 전북 김제시 광활면 은파리의 시설감자 재배 비닐하우스 내부 모습. 온풍기를 돌려도 워낙 기온이 낮아 한파 피해를 막을 수 없었다.

‘북극 한파’ 농촌 강타

전국 농작물 언피해 심각 일부 배추 무름 증상 발생

시설감자는 줄기 얼어붙어 부추 등 잎채소 누렇게 변해

화훼, 난방비 부담에 ‘한숨’

 

최근 불어닥친 기습 한파로 농작물과 농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겨울배추와 시설채소 주산지의 언피해가 심각해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게다가 지하수나 계곡물 등 간이상수도를 식수로 활용하는 일부 농촌 오지마을에서는 수도관이 얼거나 파열돼 식수난까지 겪고 있는 실정이다. 북극발 한파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전국의 농촌을 살펴봤다.


◆겨울배추·시설감자 언피해=“여기 보세요. 배추 밑동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며칠 더 두고봐야겠지만 이대로라면 물러 썩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정원 전남 해남 화원농협 조합장은 최근 지역 내 배추밭을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배추농가들이 7일부터 이어진 한파로 배추가 얼고 물러지는 피해를 보고 있어서다.

이번 한파에 겨울배추 주산지인 전남 해남지역에선 언피해가 크게 발생했다. 8일 최저기온이 영하 17℃ 아래로 떨어지는 등 4일 이상 평균기온이 영하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배추 겉잎과 밑동이 어는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일부 밭에서는 배추 속잎까지 얼어 언피해로 인한 무름 증상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치영 농협경제지주 전남지역본부 원예유통사업단장은 “특히 지난해 9월 집중호우로 아주심기(정식)가 늦어지면서 아직 결구가 되지 못한 배추밭이 상당수 있는데 이들의 피해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구례에서는 시설감자에 언피해가 크게 났다. NH농협 구례군지부에 따르면 용방면 비닐하우스 단지 내 128동 중 70%가량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감자의 생육 최저온도는 4℃인데, 7∼8일 이틀간 영하 9℃, 영하 14℃까지 떨어지면서 감자가 얼어버린 것이다. 이 단지에서는 난방비 절감을 위해 대부분 수막재배를 하는데, 최근 지하수 부족으로 물을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한파가 닥쳐 피해가 발생했다.

시설감자 주산지인 전북지역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9일 오전 11시께 전북 김제시 광활면 은파리에서 만난 윤종철씨(70)는 “6일부터 불어닥친 기습 한파와 폭설로 시설하우스 안팎이 꽁꽁 언 탓에 감자 줄기가 다 얼어죽어 성한 게 없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 상태라면 감자 잎이 자라지 않고, 운 좋게 살아남아도 감자가 기형이거나 크기가 작아 상품성이 없을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광활농협(조합장 신광식)에 따르면 80여감자농가가 110여㏊ 규모에서 언피해를 봤다. 특히 지난해 11월초에 정식한 감자는 최근에야 줄기가 막 나와 농가들의 피해가 컸다는 것. 신광식 조합장은 “1㏊당 각종 자재비로 5000만원 정도가 소요돼 모두 55억여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웃마을 농민 진수철씨(57·광활면 옥포리)도 마찬가지 피해를 봤다. 진씨는 혹시 모를 피해에 대비하기 위해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려 했다. 하지만 행정기관 등에서는 진씨에게 ‘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 지역에서는 벼 수확이 끝나면 비닐하우스를 세워 감자를 재배하고, 감자 수확이 끝나면 철거한다. 이를 보통 ‘이동식 하우스’로 부른다. 그런데 현행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대상은 일정 장소에 고정된 ‘고정식 시설하우스’만 인정되고 설치·철거하는 이동식 하우스는 가입이 안된다는 것. 진씨는 “농가들은 일제강점기부터 간척지를 일궈왔는데 지역특수성을 감안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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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에서 시설토마토를 재배하는 조원기씨가 언피해로 축 처진 토마토 잎을 허탈하게 바라보고 있다.

◆시설채소도 생육장해=경남의 시설채소 주산지 농가들도 언피해를 크게 봤다. 10일 김해에서 9917㎡(3000평) 규모로 부추·아욱·참나물 등 시설 잎채소류를 재배하는 최승영씨(52·화목동)는 언피해를 본 작물을 살펴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파릇파릇해야 할 부추 잎은 누렇게 변해 잎끝이 말려 있었고, 노랗게 뜬 아욱 잎은 바닥에 축 처져 있었다.

최씨는 “잎채소는 추위에 약해 언피해가 발생하면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음식점 등의 영업이 원활치 않아 잎채소류 판매에 어려움이 많은데, 설상가상으로 강추위까지 덮쳐 피해가 불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8∼9일 올겨울 최강 한파가 몰아치면서 김해지역은 1973년 이후 가장 낮은 기온인 영하 13.9℃를 기록했다. 영하 10℃ 이하의 추운 날씨로 인해 시설작물엔 언피해가 발생했다. 토마토 출하를 한달여 앞둔 조원기씨(56)는 “시설하우스 4동 중 2동의 토마토가 생육장해를 봤다”면서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시설하우스의 난방기가 갑작스런 추위로 고장난 탓에 피해가 더욱 커졌다”고 속상해했다.



◆화훼농가는 난방 포기=한파에 농사를 포기하는 화훼농가들도 속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소비가 급감하면서 값이 폭락한 상황에서 난방비 부담이 만만치 않아서다.

“자식같이 기르던 꽃이 얼어죽는 모습을 지켜보는 심정이야 누가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충남 태안군 남면에서 안개꽃·설유화·리시안서스 등을 시설재배하는 박은례씨(58)는 최근 비닐하우스 30동 가운데 출하 중이거나 출하를 앞둔 8동의 재배를 포기하고 더 이상 난방을 하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한 지난해 11월쯤부터 하락한 꽃 가격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난방비마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돼서다. 박씨에 따르면 꽃들이 정상적으로 생육하려면 비닐하우스 내 기온을 10∼15℃로 유지해줘야 하는데, 요즘같은 추위에 이 정도 온도를 유지하려면 평소보다 난방기 기름을 2배는 더 많이 때야 한다.

박씨는 “이번 작기는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며칠 전 해당 비닐하우스의 난방기 전원을 껐다”면서 “7일부터 북극한파가 들이닥친 가운데 난방기가 꺼진 비닐하우스는 냉기가 가득했고, 결국 꽃들은 얼어죽거나 성장을 멈추고 시들해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눈이 많이 와서 주유 트럭이 어차피 비닐하우스로 접근하지도 못하는데 차라리 잘됐지 싶다”고 스스로를 애써 위로했다. 그의 아들 박진성씨(30)는 “요즘 가족들이 모두 풀이 죽었다”며 “날씨가 빨리 풀리고 코로나19도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씁쓸해했다.

해남·구례=이상희, 김제=황의성, 김해=노현숙, 태안=서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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