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전체를 호텔로”… 다시 활기 찾은 골목길

입력 : 2019-12-04 00:00 수정 : 2019-12-04 23:54
강원 정선군 고한읍 고한18리 부녀회원들이 함께 만든 공예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들 공예품은 마을 골목길 곳곳에 놓여 ‘고한18번가 마을호텔’을 찾는 손님들을 맞게 된다.

‘대표적 폐광촌마을’ 강원 정선군 고한읍 고한18리의 도전

이장 유영자씨 마을 회생 주도 주민들과 ‘마을만들기위’ 구성

예술자문 맡았던 강경환 대표 마을호텔사업 아이디어 제안

올겨울 메인숙소 공사 완료 후 시범운영 거쳐 내년초 정식개장

도시재생 관련 모범사례 평가 향후 마을기업 전환 등 계획
 


“이곳은 마을 전체가 호텔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민박집은 호텔 객실이 되고 중국음식점은 호텔에 딸린 중식 레스토랑, 다방은 호텔 커피숍, 마을 골목길은 손님을 맞는 호텔 로비 역할을 하죠. 200여명의 마을주민들은 모두 호텔리어입니다.”

최근 강원 정선군 고한읍 고한18리를 찾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폐광촌마을인 이곳은 현재 ‘고한18번가 마을호텔’이라는 이름을 달고 대대적으로 변신 중이다. 주민들은 호텔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식당·민박·세탁소·미용실·카페 등 각자의 사업장과 집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일반 호텔은 수직으로 높게 솟은 하나의 커다란 건물 안에 먹고 자고 하는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다. 그러나 고한18번가 마을호텔은 길과 골목을 따라 호텔의 각종 시설이 펼쳐진다. 잠은 이 건물에서, 식사는 저 건물에서, 빨래나 이발은 또 다른 건물에서 하면 된다. 물론 이들 시설은 이용이 편리하도록 가까이 붙어 있다.

관광차 마을을 방문한 천보석씨(30·부산 해운대구)는 “발상의 전환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져 직접 찾게 됐다”며 “어딜 가나 주민들의 친절한 안내와 깨끗하게 정비된 골목길을 만날 수 있어 폐광촌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때 이곳은 ‘강아지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만큼 석탄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2000년 전후 석탄산업이 쇠퇴하자 마을 또한 급격히 쇠락했다. 폐광지역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인근에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인 ‘강원랜드’가 들어섰지만 주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때 마을을 되살리자고 나선 이가 있었다. 이장 유영자씨(63·여)였다. 고깃집을 운영하던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벽에 나와 골목의 담배꽁초를 줍고 쓰레기를 치웠다. 또 이웃들과 200여만원을 마련, 마을에서 가장 낡은 주택을 리모델링했다.

그러자 주민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여럿이 힘을 합치면 우리 마을도 뭔가 변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싹튼 것이다. 유 이장과 주민들은 곧 ‘마을만들기위원회’를 꾸린 후 지저분한 폐전선을 치우고 방치된 게시판과 담장을 허문 자리에 꽃을 심었다. 이들은 또 서울 마포구 연남동과 성동구 성수동 등 잘 꾸며진 마을을 찾아다니며 성공요인을 꼼꼼히 살폈다.

‘마을 자체를 호텔화하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건 마을만들기위원회에서 문화예술분야 자문을 맡았던 영화제작소 ‘눈’의 강경환 대표(50)였다. 그는 “고한18리 골목길 하나에 숙박시설과 식당·상점·카페·세탁소 등 다양한 업종이 한데 모여 있는 것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마을호텔추진단이 만들어졌다. 추진단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상향식 도시재생 방식을 주장했다. 지방자치단체나 외부단체가 아닌 주민들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필요한 부분을 고민할 때 비로소 차별화된 도시재생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정선군 고한읍 고한18리를 찾은 관광객들이 내년초 정식개장을 앞두고 있는 ‘고한18번가 마을호텔’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다.


고한18번가 마을호텔사업은 지난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주최한 ‘2018 균형발전박람회’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장상을, 국토교통부가 주최한 ‘2018 도시재생 한마당’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주민 주도형 도시재생’의 모범사례로 평가받았다. 마을호텔의 메인 숙소로 사용될 식당이 올겨울 공사를 마치면 내년초 시범운영을 거쳐 3월경 정식으로 개장한다.

유 이장은 마을호텔이 원주민과 관광객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고 있다. 유 이장은 “식당을 하던 주민은 그 자리에서 계속 식당을 하고 민박집 주인은 계속 민박집을 하면 되기 때문에 도심 개발로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향후 마을호텔을 마을기업으로 전환해 주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를 지역농산물 판매와도 연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선=김윤호 기자 fact@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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