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족 한국 사회 안착 위해…언어·문화 등 다양한 수업과정 운영

입력 : 2019-10-05 15:29 수정 : 2019-10-07 23:20
기자(가운데 서 있는 사람)가 김선순 광양시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선생님(오른쪽 서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의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다정 기자가 간다 (30)결혼이민여성 교육현장

사회통합프로그램 마지막 단계의 보조교사로서 학생들 앞에 설 기회

12년 경력 베테랑 교사 도움 받아 ‘한국의 의례’ 수업 직접 진행해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도 했지만 전통의례 등 한국 문화 알리고

외국 문화도 배운 보람 있었던 시간 결혼이민여성들 힘찬 발걸음 응원

 

2017년 기준 국내의 ‘다문화가족’은 31만가구다. 다문화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초·중·고등학생들은 12만2212명(추계)에 달하고, 한해 출생아 20명 중 1명은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다. 그러니 이제 결혼이민자들의 성공적인 한국 사회 안착은 ‘그들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 됐다. 기자가 직접 결혼이민여성을 위한 교육현장을 체험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힘든 섭외과정 끝에 전남 광양시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수업을 도울 수 있는 ‘보조교사’ 허락을 받았다. 사회통합프로그램의 마지막 단계인 5단계 학생들 앞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수업 준비가 절반


원래 이 수업을 진행하는 김선순 선생님(74)을 수업 시작 전 먼저 만났다. 준비를 위해 미리 서울에서 내려갈 수 없는 기자를 배려해 이른 아침에 나온 선생님이 제일 먼저 보여준 것은 파워포인트(PPT). 일흔이 넘은 선생님이 수업을 위해 만들어온 자료란다.


“사회통합프로그램은 법무부에서 만든 공식적인 책자로 수업을 하도록 돼 있어요. 하지만 보다 쉽게 학생들에게 전달하려면 시각적인 자료와 함께 제시하는 게 필요하니 집에서 이렇게 다 만들어와요. 때로는 수업 중 자료로 쓸 수 있겠다 싶은 드라마 장면을 직접 녹화해오기도 하지요. 한국 드라마는 결혼이민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높아 수업시간 집중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에요.”


김 선생님이 보여준 것은 무당이 굿을 하는 드라마 장면. 이날 1교시로 진행되는 수업의 주제인 ‘한국의 종교’를 위한 시청각 자료다. 귀를 울리는 무악(巫樂)과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은 무당의 모습이 단숨에 눈을 사로잡았다.


“미리 자료를 좀 보세요. 주제별로 1시간씩 모두 3시간 동안 수업을 진행하는데, 중간에 10분 정도씩 쉬는 시간이 있을 거예요. 2시간은 제가 진행하겠지만 1시간은 직접 해봐야 할 테니 자료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정확하게 모르는 정보가 있으면 미리 찾아보고 적어두는 게 좋아요.”


그렇게 갑작스러운 공부가 시작됐다. 기자가 수업해야 하는 과목은 ‘한국의 의례’. 결혼식·장례식·제사·생일 등 다양한 의례와 관련된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수업과정 중에 등장하는 한국어 문법에 대한 설명도 해야 한다.


책자를 보자 첫 페이지인 ‘폐백’부터 걸렸다. ‘폐백에서 밤이랑 대추를 신랑·신부에게 던져주는 이유가 뭐였더라? 아, 자녀를 많이 낳으라는 뜻이었지….’


그다음엔 돌부터 환갑(회갑)·칠순(고희)·희수·팔순·미수 등 한국의 독특한 생일 축하문화를 설명해야 했다. 옛날에는 쌀이나 붓을 돌잡이 품목으로 사용했지만 요즘은 마이크(연예인)·마우스(프로그래머) 등을 올린다고 한 기사가 떠올랐다. ‘사례로 설명해야지’ 싶어 표시를 해두곤 수업 준비를 이어갔다.

 

기자(서 있는 사람)가 결혼이민여성들에게 과제물을 나눠주고 있다.


첫 질문부터 말문이 ‘턱’


김 선생님이 진행한 1교시 ‘한국의 종교’가 끝나고 2교시 바통을 이어받았다. 막상 앞에 나가니 대학 시절 내내 한국어와 한국 문화 수업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못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여러분, ‘의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의례는 결혼이나 장례·제사·생일처럼 기억할 만한 일들을 기념하는 행사를 말해요.”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어휘만 사용해서 새로운 단어를 설명하는 일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새로운 단어나 문화를 설명해봐야 전달도 되지 않을뿐더러 학습자의 흥미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한국어 교수법 수업을 듣고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딴 것은 이때를 위한 거였나.’ 스스로 뿌듯해하며 설명을 이어가는데, 기자가 ‘제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자마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희 집에서도 제사하는데요. 제사할 때 과일 윗부분은 왜 깎아요?”


순간 당황스러움이 얼굴에 퍼지는 게 느껴졌다. ‘조상께 드리는 음식이라 그런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 대답이 정확한지 자신이 없었다. ‘혹시 이거 말고 다른 이유가 또 있었나?’ 하는 혼란스러움과 함께 언젠가 배웠을 관혼상제에 대한 예절은 모두 머릿속에서만 뱅뱅 돌 뿐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아는 범위에서만 설명한 뒤 “자세한 건 선생님께 더 들어볼까요?” 하고 김 선생님을 앞으로 모셨다. PPT는 아직 두번째 페이지에 머물러 있는데, 식은땀이 흘렀다.


“이미 영혼인 조상들에게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윗부분을 깎아놓는 거예요. 영혼이 직접 과일을 깎아 드실 수 없기 때문이죠. 대신 모두 다 깎아두면 과일의 색이 금방 변해버리니 윗부분만 깎는 거랍니다.”



대화와 소통으로 한국 생활 길잡이 역할


“한국에서는 생일에 보통 미역국을 먹는데요, 이건 아기를 낳은 후 엄마가 먹는 음식이 미역국이기 때문이에요. 미역은 피를 맑게 해주고 출산 후 자궁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지요. 혹시 여러분 나라에서는 생일날 먹는 음식이 있나요?”


한국의 생일 문화를 설명하며 이런 질문을 던지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프랑스에서 온 학생이었다.


“프랑스에는 생일에 먹는 특별한 음식은 없어요. 아마 케이크? 대신 아기 낳으면 엄마들이 먹는 건 있어요. 닭 먹어요.”


닭을 먹는다고? 한국에는 출산 후 닭을 먹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었다. 닭이 열을 내는 음식이라 출산 직후의 산모에게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수업을 하는 동안 결혼이민여성에게 모국의 문화에 대해 물어보는 첫번째 이유는 물론 학습효과를 위해서다. 관련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면 배운 내용을 더 쉽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목적도 있다. 문화의 차이를 인지하고, 이로 인한 충돌을 줄이려는 의도다.


“한국에서는 보통 아기를 낳고 한동안은 닭을 먹지 말라고 해요.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요. 그러니 혹시 시어머니가 닭을 먹지 못하게 하신다면 한국 풍습대로 그렇게 하시는 거라 생각하고 프랑스 문화에 대해서 잘 설명드리는 것이 좋아요.”


무심코 설명하지 않고 지나친 부분도 많았지만 어쨌든 무사히 수업을 마쳤다. 이제는 다시 보조교사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때. 학생들에게 새로운 과제물을 나눠주는 것 역시 일일 보조교사인 기자의 몫이다. 그런데 숙제를 받아드는 학생들의 표정이 어둡지 않았다. 언제든 물어보고 소통할 수 있는 든든한 선생님 덕이다.


“잘 모르거나 어려운 거 있으면 바로바로 카카오톡으로 물어보세요. 어떤 내용이라도 좋아요. 그냥 넘어가지 말고 꼭 질문하세요!”


광양=김다정, 사진=김도웅 기자 kimdj@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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