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링링’ 피해] “수확 앞뒀는데…” 강풍에 날아간 대풍의 꿈

입력 : 2019-09-11 00:00 수정 : 2019-09-15 23:43

태풍 ‘링링’이 전국을 강타했다. 기록적인 강풍으로 1만7956㏊(9일 오전 8시 기준)에서 농작물피해가 발생했다. 태풍으로 애지중지 키운 농작물과 시설하우스 등을 잃은 농민들은 망연자실했다. 더욱이 현장을 수습할 일손이 부족해 피해가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배·사과 등 낙과 심각…“매달려 있어도 상품성 없어”

과수피해

상처난 과실에 약제 못 뿌려 병해충 감염 등 2차 피해 우려

 

8일 전국의 배·사과 과수원은 태풍이 휩쓸고 간 흔적으로 처참했다. 나무 밑에는 배·사과가 널브러져 있고 찢기고 쓰러진 나무도 적지 않았다. 여름 내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대풍’을 꿈꿨던 농민들은 한순간에 몰아쳐온 ‘강풍’이 남긴 깊은 생채기를 쳐다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특히 9~10일 비가 내리면서, 나무에 매달려 있지만 가지·잎에 스쳐 상처가 난 과실에 약을 뿌리지 못한 탓에 병해충 감염 등으로 인한 2차 피해마저 우려돼 농가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충남 천안시 성환읍에서 2만6400㎡(약 8000평) 규모로 수출용 배를 재배하는 황보성씨(63)는 “9월말 수확할 예정이었는데 60%가량 떨어졌다”고 한숨지었다. 그러면서 “올해 병이 없고 과형도 아주 좋아 상품화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예산군 오가면 조용원씨(69)의 사과농장에선 13년생 사과나무 30여그루가 뿌리째 뽑혔다. 조씨는 “바람을 덜 타는 곳이었는데 순식간에 휘몰아친 바람에 맥없이 넘어갔다”고 피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 뒤 “나무를 치우고 약을 쳐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경기 평택시 서탄면 이한복씨(60)의 2만8100㎡(8500평)에 이르는 배농장에서도 수확을 20여일 앞둔 배가 40% 이상 떨어졌다. 성장촉진제(지베렐린)를 처리하지 않은 배라 이씨가 느끼는 체감피해는 훨씬 크다.

이씨는 “한창 비대할 시기에 배가 떨어졌다”면서 “가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지도 불투명하다”고 했다.

강원 춘천시 신북읍 김부영씨(56)의 6611㎡(2000평)에 이르는 사과농장에선 떨어진 사과들이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썩어가고 있었다. 김씨는 “<후지> 수확철인 11월만 바라보면서 계속 공을 들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상품성을 잃게 돼 너무 허망하다”고 탄식했다.

전남 나주시 왕곡면 배농가 노봉규씨(61)는 “이번 태풍으로 배 10개 중 3개가 떨어졌다”며 “지금 떨어진 배만 문제가 아니라 강풍에 꼭지가 훼손된 나머지 과일도 언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피해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가들은 복구인력 부족으로 인한 2차 피해를 걱정했다. 농작물재해보험과 관련된 손해평가가 끝나는 대로 바닥에 나뒹구는 과실들을 치워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바람에 할퀴고 찍혀 상처가 나거나 멍이 든 과실은 키워도 상품성이 없다.

김원영 천안배원협 차장은 “평균 30% 정도 낙과가 발생했는데 가공용으로 팔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어쨌든 모두 주워야 하기 때문에 많은 복구인력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산군 오가면에서 4만1250㎡(1만2478평)의 사과농사를 짓는 한영철씨(64)는 “과실에 당이 올라 있어 4~5일만 지나면 상처 난 곳에 벌레들이 달려들고 금방 썩는다”며 “매달려 있다고 해도 떨어진 것과 진배없다”고 했다. 한씨는 그러면서 “20~30% 되는 낙과 이외에도 상처 난 과실을 피해산정에 반영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준우 예산능금농협 상무는 “아직 수확하지 못한 30~40%의 <홍로>는 피해가 더 크다”며 “매달린 과실의 피해를 반영해주지 않으면 농가 손실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현성 경기 평택과수농협 조합장은 “평택지역은 배 낙과가 특히 많았다”면서 “정부의 가공용 수매 때 수매값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 농가 재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천안·예산=이승인, 평택·화성=유건연, 춘천=김윤호, 나주=이문수 기자

 

전남 해남군 해남읍 백야리의 벼농가 김재국씨(가운데)가 벼 쓰러짐(도복) 피해를 본 자신의 논 옆에서 군농업기술센터 담당자(오른쪽)에게 피해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쓰러짐 속출…비 계속 내려 수발아·도열병도 걱정”

벼피해
 


수확을 앞둔 벼논에서도 쓰러짐(도복) 피해가 속출해 농가들이 속을 태웠다.

8일 전남 해남군 해남읍 백야리에서 만난 벼농가 김재국씨(60)는 “하늘도 무심하지…”라며 말끝을 흐리더니 연신 쓰러진 벼만 바라봤다.

7일 태풍 ‘링링’이 전남 남부지역에 상륙함에 따라 해남은 벼 쓰러짐 피해가 극심했다.

군농업기술센터 식량작물팀에 따르면 태풍 때문에 발생한 논 피해면적은 삼산면·북평면·옥천면·마산면·산이면 일대 880㏊에 이른다. 같은 마을이라도 키가 크고, 벼 낟알이 굵은 것이 특징인 <히토메보레> <신동진> 품종이 유독 피해가 컸다.

김씨는 “태풍이 지나간 이후에도 비가 계속 내렸고, 구름 낀 날씨가 이어져 피해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남읍 내사리에서 2만6446㎡(8000평) 규모로 벼농사를 짓는 부상환씨(62)도 “벼가 쓰러진 상태에서 비까지 내려 수발아가 발생할 수 있고, 흰잎마름병이나 도열병도 빠르게 퍼져나가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박정동 군농기센터 식량작물팀장은 “벼 성숙 정도에 따라 피해가 달라질 수 있는데 황숙기 벼는 15% 정도지만, 유숙기 벼는 33% 이상 감수율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원도의 경우 쌀 주산지인 철원지역의 피해가 컸다.

도에 따르면 이번 태풍으로 1017㏊에 이르는 논에서 쓰러짐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쌀 주산지인 철원지역의 벼 피해면적이 926㏊에 달해 추석 대목을 앞두고 농가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이용금 한국쌀전업농철원군연합회장(48)은 “올해 재배하는 벼 면적이 9㏊ 정도 되는데 그중 절반가량이 쓰러지는 피해를 봤다”면서 “11일까지 벼베기를 마칠 계획이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남=이문수, 철원=김윤호 기자 fact@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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