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 고생 아랑곳없는 바닥시세 …농민 깊은 한숨에 무거운 발길

입력 : 2019-08-19 00:00
절임공장으로 보내기 위해 기자가 배추가 담긴 상자를 4.5t 트럭에 싣고 있다.

[현장 속으로, 기자체험 25시] 농민신문 김윤호 기자가 간다

(26)고랭지배추 야간수확작업

한낮 고온 피해 작업능률 높이고자 일몰 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수확

밑동 칼로 잘라낸 배추, 상자에 담아

1t 트럭에 차곡차곡 쌓은 다음 4.5t 트럭으로 옮겨 실으면 ‘끝’

칠흑 같은 어둠 속 배추와 사투 불빛 찾아 달려든 날벌레와도 씨름

숨 가쁜 작업에 허리까지 부들부들 짬 날 때면 다리 힘 풀려 자동 착석

동 틀 무렵 작업은 끝났지만 홀가분함도 잠시…농민 하소연 어쩌나

피땀으로 얻어낸 결실을 자기 손으로 갈아엎어야 하는 고통 언제나 끝날지
 


밤낮이 바뀌어 돌아가는 곳들이 있다. 대리운전업계와 군대 불침번 초소가 그렇고,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이 그렇다. 여기 강원도엔 특별하게 한곳이 더 있다. 바로 여름철 고랭지배추 수확현장이다. 한낮의 고온을 피하기 위해 보통 일몰 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수확작업을 한다. 인부들은 저마다 동굴탐사라도 하듯 이마에 서치라이트(서치)를 하나씩 매달고 밤샘 수확에 구슬땀을 흘린다. 8~9일 고랭지배추 주산지로 명성 높은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를 찾아 일일 고랭지배추 수확작업 인부가 돼봤다.

 

◆“배추수확은 크게 네단계”…오후 7시30분 작업 시작=출하로 한창 바쁜 시기에 어설픈 일꾼처럼 민폐만 끼치고 싶진 않았다. 양손 두개씩 단단히 목장갑을 겹쳐 끼고, 장화까지 한켤레 사 신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약속시간은 8일 오후 7시. 작업장을 미리 둘러보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횡계리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께. 뜨끈한 황태국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곧바로 대관령 자락에 있는 2만9752㎡(9000평) 규모의 전준섭(64)·박광옥씨(59) 부부 배추밭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급경사지인 데다 제8호 태풍 ‘프란시스코’의 영향으로 전날까지 비가 많이 내린 탓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슬금슬금 미끄러졌다. 96마력의 힘 좋은 1t 트럭도 자꾸 헛바퀴만 돌렸다. 전씨가 겁먹은 기자를 보고 웃었다.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작업반장 박씨(49)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배추수확은 크게 네단계로 나뉩니다. 우선 칼로 배추를 자르고 이를 P(플라스틱)상자나 망에 담죠. 상자에 담은 배추는 주로 절임공장으로 가고, 망작업을 한 배추는 시장으로 갑니다. 오늘은 상자작업만 있어요. 배추가 모두 상자에 담기면 1t 트럭에 차곡차곡 쌓고, 다시 4.5t 트럭에 상자들을 옮겨 실으면 끝납니다.” 반장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스쳤다.

밭을 휘 한번 둘러보는 사이 금세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오늘 목표는 4.5t 트럭 3대 분량. 작업을 함께할 외국인 근로자 10여명이 보였다. ‘열심히 해보자. 아니 버텨보자’는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다. 오후 7시30분이었다.

 

뿌리를  잘라낸 배추를 쌓고 있다.


◆2시간30분 동안 4.5t 트럭 한대 배추로 가득 채워=작업 중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건 배추 뿌리부위를 자르는 일이었다. 쓰임새에 따라 자르는 부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 봐요. 배추의 ‘똥자바리(밑동)’ 쪽에 칼을 대면 겉껍질(외엽)들이 달라붙은 채 잘리는데, 이 배추들은 망에 넣어 시장으로 보내요. 그보다 조금 위를 자르면 배추의 외엽들이 대부분 떨어져 깨끗한 속잎만 남는데, 이런 것들은 상자에 담아 절임공장으로 보내죠. 오늘 배추들은 모두 절임용이니 조금 위로 잘라요.”

10여개의 칼들이 사방에서 군무를 추기 시작했다. 손놀림이 빠른 외국인 근로자들은 고작 칼질 세번으로 배추와 일합을 겨뤘지만 기자는 여섯번 이상 칼을 내리쳐야 했다. 바람이 꽤 서늘했지만 등줄기엔 연신 땀이 흘렀다.

30분쯤 지났을까. 칼질을 멈추고 P상자에 배추를 담기 시작했다. 상자 하나에 배추 여섯포기를 넣으면 딱 맞았다. 마치 ‘테트리스’ 게임하듯 한손으로 척척 꽂아 넣는 주변 근로자들의 내공에 감탄하는 사이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때가 왔구나. 이마에 매단 서치를 야심차게 켰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날벌레들이 빛을 보고 기자의 얼굴로 일제히 돌격했다. 땀인지 벌레인지 모를 것들이 범벅돼 얼굴에 흘렀다.

“이제 상자를 트럭에 올립시다. 기자님은 트럭 위에서 상자를 받아 잘 쌓아요. 자, 빨리빨리.”

근로자들이 트럭 주변으로 달려들어 배추 상자를 올렸다. 쉴 새 없이 쌓았다. 허리와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트럭에 상자가 가득 차면 마을 어귀에 세워놓은 4.5t 트럭에 옮겨 실었다. 그렇게 몇차례 왔다갔다 작업한 끝에 마침내 첫 트럭을 채웠다. 트럭의 목적지는 평창군 방림면에 있는 대관령원예농협(조합장 유영환) 채소사업소 내 절임공장. 이때가 오후 10시께였다. 한차 작업에 2시간30분을 쉴 새 없이 일한 것이다. 잠시 짬이 났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배추인지 땅인지 가릴 새도 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외국인 근로자들과 한팀이 돼 수확한 배추를 상자에 차곡차곡 담고 있다.


◆밤새 수확 힘썼지만…고랭지 무·배추 가격은 ‘똥값’=다시 칼을 들고 배추 밑동을 잘랐다. 약간 속도가 붙었다. 사위가 분간조차 안되는 어둠 속에서 발에 밟히는 건 온통 미끄덩한 배추뿐. 피아가 구별되지 않는 전장이었다. 멀리 리조트 불빛이 유난히 눈부셨다.

다음날 오전 1시쯤이나 됐을까. 깜빡 졸음이 몰려온 기자를 따끔히 혼내기라도 하려는 듯, 난데없이 귀청을 때리는 굉음이 멀리서 퍼져왔다. 전쟁이라도 난 것일까. 문득 불안해졌다. 그런데 주변 근로자들은 태연했다. 알고 보니 옆 마을주민이 이 시간까지 밭을 지키다 멧돼지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굉음으로 멧돼지를 내쫓기 위해 ‘폭음탄’을 발사한 것이었다. 평창과 인근 강릉지역은 최근 4년간 수렵활동이 금지되다보니 야생동물 개체수가 급증해 농가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배추 수확도 힘든데 밤새 밭까지 지켜야 하는 농민의 고충이 눈에 선했다.

“잠깐 대기!”

두번째 트럭을 출발시킨 후 마지막 트럭 상차작업이 한창이던 오전 3시쯤, 갑자기 비가 퍼붓자 작업반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허겁지겁 나무 아래로 숨어 우비를 꺼냈다. 다행히도 소나기였다. 반장이 말했다. “경사지라 자칫 미끄러지면 크게 다칠 수 있으니 진짜 조심해야 합니다.”

마지막 트럭이 5시20분께 출발하며 작업은 비로소 끝났다. 홀가분함도 잠시, 밭주인 전씨가 큰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양반, 여기 배추값이 얼만지 알아? 상품 한망(10㎏들이)에 고작 7000원대라니까. 나는 저짝에 2만8099㎡(8500평) 정도로 무농사도 짓는데 거긴 더 심각해. 한상자(20㎏들이)에 5000~6000원대여. 이러니 누가 농사를 짓겠어. 밤새 캐느라 생고생해봤자 출하비조차 안 나오니 여기저기서 무를 트랙터로 갈아버리는 거여.”

반장도 거들었다. “일하러 다니다보면 ‘정말 뼈 빠지게 농사짓는데 한푼도 못 건진다’는 농가가 태반이 넘어요. 요새 서울 가락시장 무 경락값을 보면 중하품 한상자(20㎏들이)가 500원까지 내려간다는데, 말 그대로 ‘똥값’이죠. 시장에선 경매 때 팔리지 않은 무를 농가보고 도로 가져가라 한다던데, 그럼 그 운송비는 누가 물어주나. 나도 농사지어봐서 알지만 얘길 듣다보면 그냥 눈물이 난다니까요.”

그들의 하소연이 돌아오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키운 농작물을 자기 손으로 갈아엎어야 하는 그 고통을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평창=김윤호, 사진=이희철 기자 fact@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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