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이 걸어온 길] 한국농업과 궤를 같이…“농민의 영원한 동반자로”

입력 : 2019-08-15 00:00 수정 : 2019-08-15 23:57

1964년 창간…‘녹색혁명’ 기폭제 역할 1978년 ‘100만부 돌파’ 대위업 달성

1980~1990년대, 농산물시장 개방 위험성 알리고 대응방안 제시 ‘온힘’

농협 ‘신토불이’ 운동 확산 뒷받침

1991년 ‘주 3회 발행 체제’ 도입 1997년 ‘인터넷 농민신문’ 개설

2000년대 ‘새 농정 패러다임’ 제시

2006년 ‘한국기자협회’ 가입 2017년 발행부수 ‘40만부’ 돌파

NBS 개국…‘종합언론사’ 초석
 


<농민신문>이 창간 55주년을 맞았다. 1964년 8월15일 보릿고개란 단어가 고달픈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어로 통했던 당시 <농협신문>이란 이름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농민신문>은 반세기를 훌쩍 넘는 동안 한국 농업의 부침과 궤를 같이해왔다.




◆보릿고개 탈출에 사활…농민 계몽에 앞장=창간의 기쁨도 잠시, <농민신문>은 그 시대의 과업이었던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안을 찾는 데 몰두해야만 했다. 창간과 동시에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식량증산 7개년 계획을 집중 보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농민 계몽을 위해 ‘새농민운동’을 제시하며 과학영농의 씨앗을 심는 데 주력했다. 이처럼 <농민신문>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정부와 농민을 도와 배고픔의 악순환을 끊는 ‘녹색혁명’에 불을 당기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70년대 들어서도 이같은 사명에는 변함이 없었다. 농촌 근대화를 위한 ‘새마을운동’에 부응, 잘사는 농촌 만들기에 앞장섰다. 이와 함께 ‘영농교실’을 비롯해 ‘새농민교실’ ‘영농일지·농사메모’ ‘세계의 농업사’ 등 다양한 코너를 신설해 과학영농정보와 외국의 선진 영농기술을 집중 소개하며 농민들의 영농기술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데 힘썼다. 1975년 <통일벼>를 통해 이뤄낸 쌀 자급 달성의 이면에는 <농민신문>의 이러한 노력들이 곳곳에 배어 있다. <농민신문>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진정한 농민의 신문이 되기 위해 1976년 <농협신문>에서 <농민신문>으로 제호를 바꿨고 1978년 10월에는 발행부수 100만부를 돌파, 한국 신문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했다.

◆개방화의 파고…늘 농민 곁에=1980년대는 우루과이라운드(UR) 출범과 함께 농산물시장 개방압력이 본격화하며 우리 농업을 옥죄기 시작했다. <농민신문>은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을 지키기 위해 선봉에 섰다. 농산물시장 개방의 위험성을 국민에 적극 알리고 수입 반대여론을 형성하는 데 집중했다. 이때 기획된 ‘쌀, 기필코 지켜야 한다’라는 연재기사에는 당시 농업과 농촌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개방화의 파고는 더 높아졌고, 농업계와 농민의 저항도 세계화의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994년 UR협상 타결,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등으로 우리 농업은 큰 위기에 몰렸다. 이에 <농민신문>은 ‘UR 파고를 이긴다’ ‘UR 이후 우리 농업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등의 대형 기획기사를 통해 개방화에 따른 대응방안을 제시하고, 농민 편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요구들을 정부와 국회에 쏟아냈다. 특히 개방화에 맞서 농협이 주창했던 ‘신토불이(身土不二)’ 운동의 선봉을 맡아 우리농산물 애용운동에 불을 붙였다.

국민에게 우리 농업·농촌의 가치를 재확인한 계기가 된 이 운동은 현재 농협의 핵심가치로 여겨지는 ‘농심(農心)’과 ‘동심동덕(同心同德)’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민신문>도 시대의 변화에 발을 맞췄다. 농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1991년 주 3회 발행 체제를 도입하고, 1997년 12월에는 국내 농업전문지로는 최초로 ‘인터넷 농민신문’을 개설했다.

◆미래농업 대비…영원한 농민의 동반자=2000년을 맞이한 농업계는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농정의 패러다임이 필요해졌다. 이전과는 다른 미래농업이 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농민신문>은 여기에 발맞춰 친환경농업과 농산물 전자상거래, 해외 선진농법 등 새롭게 등장한 농업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어 농촌관광, 6차산업, 스마트팜 등 미래농업의 중심이 될 화두를 다양한 기획을 통해 농업계에 제시하는 등 우리 농업·농촌의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에 충실했다.

특히 거세지는 개방화의 물결 속에서도 우리 농업의 근간인 쌀산업을 지키기 위한 <농민신문>의 노력은 계속됐다. 이런 가운데 쌀의 가치와 문화, 쌀의 중요성을 총망라한 2004년의 6부작 기획시리즈 ‘쌀사랑 나라사랑’은 <쌀을 말한다>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엮였고, 농업서적 가운데 3쇄에 들어갈 정도로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우리의 다짐=이렇듯 <농민신문>은 우리 농업·농촌의 중요한 시기마다 올곧은 여론을 주도하며 한국 농업의 발전을 이끌어냈다. 한국 농업과 궤를 같이해온 <농민신문>은 국내 농업전문지 가운데 유일하게 일간지의 위상에 걸맞게 2006년 한국기자협회에 가입한 데 이어, 2017년에는 발행부수 40만부를 돌파해 국내 164개 일간지 중 유료부수부문에서 5위에 오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신문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반세기를 넘는 동안 농업분야 최고의 언론사로 자리매김한 <농민신문>은 지난해 8월 농업 전문 방송인 NBS한국농업방송을 개국하며 명실공히 종합언론사로 큰 걸음을 내디뎠다. 이에 <농민신문>은 55년간 농민과 함께한 저력을 밑바탕으로 100년을 향한 정론지로서 희망찬 한국 농업 역사의 수레를 힘차게 견인해나갈 것이다.

류호천 기자 fort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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