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농산물 재배지 코앞에 골프장이라니”…농민 ‘눈물’

입력 : 2019-07-12 00:00 수정 : 2019-07-13 23:48
전남 함평군 대동면 월송리에 사는 한 주민이 골프장 건설 예정지인 금곡리 산66-2번지에 있는 얕은 산을 가리키며 주변 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곳 바로 앞에는 친환경농법으로 벼를 키우는 논이 자리하고 있다.

함평군 대동면 친환경농가들 3개월째 전남도청 등서 농성

골프장 잔디 살포 농약 유출 땐 친환경인증 취소 가능성 높아

시행사, 골프장 인허가과정서 환경자료 축소 보고 정황까지

전남지역 골프장 개수 크게↑ 농촌 환경파괴…난개발 중단을
 


농촌 곳곳에 골프장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농민들이 힘들게 가꾼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 대부분의 골프장이 논밭 등 농경지와 가까운 낮은 산에 조성되는 데다, 잔디에 뿌리는 농약으로 주변 환경이 오염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다수 농민들은 골프장 건설을 반기지 않고 있다. 친환경농산물로 유명한 전남 함평군 대동면 월송리의 경우도 최근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려는 군과 시행사, 이를 막으려는 주민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이다.



◆골프장 세워지면 친환경인증 취소 우려=대동면 월송리·금곡리·백호리·상옥리 주민들은 3개월째 전남도청과 함평군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ㅂ회사가 마을 인근에 166만㎡(약 50만2000평) 규모의 골프장을 세우려 하자 친환경농산물 생산기반이 무너진다는 이유로 반대시위에 나선 것이다.

골프장 건설 예정지인 대동면 금곡리 산66-2번지 주변 친환경인증면적은 141.4㏊에 달한다. 이곳에서는 80여농가가 친환경농법으로 벼·밀·보리·단호박·감자 등을 키우고 있다.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는 배순조 나비골월송친환경영농조합 대표는 “이곳 친환경 재배농가 대부분이 단체로 친환경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일부 농가에서 농약이 검출돼도 전체 인증이 취소된다”면서 “농가들은 각 농지마다 연결된 농수로를 활용하기 때문에 골프장 농약이 조금이라도 농수로로 흘러들어가면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송리에서 토종벌을 키우며 연간 5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는 오병석씨(50)는 “벌의 비행거리가 반경 최대 9㎞가 될 정도로 멀리 날아가는데 이곳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농약에 민감한 벌을 키울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같은 마을에서 한우 70마리를 키우는 김용진씨(49)는 “축사에서 100m도 안되는 거리에 골프장이 생긴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며 “골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소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육이나 임신 등에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걱정했다.



◆추진과정도 불투명…주민의견 반영 안돼=골프장 건설 시행사가 영산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한 ‘주변환경여건변화보고서’를 확보해 확인한 결과 각종 자료와 수치를 골프장 인허가 때 유리하도록 취사선택해 보고서를 작성한 정황이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시행사는 골프장 예정지 주변의 친환경인증면적을 대폭 줄여 보고했다. 현재 친환경인증면적은 140㏊가 넘는데도 보고서엔 2007년 기준인 8.45㏊로 기재한 것이다. 또 마을 인근 농업용수 시설인 행골저수지의 수혜면적을 실제보다 20배 가까이 줄인 0.9㏊로 축소해 표기하기도 했다.

이밖에 삵·수달·수리부엉이·잿빛개구리매·팔색조·원앙 등 멸종위기동물과 천연기념물이 서식하고 있는데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특히 골프장 건설 추진과정에서 해당 마을주민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됐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올초 시행사가 군에 골프장 실시계획인가 신청을 한 이후 월송마을 주민들이 반대의견서를 제출했지만 군과 시행사 측은 10일 현재까지 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관수 월송리 이장은 “주민들이 문제 제기를 했는데도 시행사 측은 조치계획서를 아직 보내지 않고 있다”면서 “군 역시 조치계획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관계기관과의 협의에 나섰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군 투자개발과 관계자는 “사전열람 공고기간에 주민 의견을 받는 것과 동시에 관계기관과 협의에 나서는 것은 일반적”이라면서 “사업시행사가 조치계획서를 제출하는 대로 주민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자 골프장 인허가에 관련 있는 유관기관들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의 경우 “(시행사가 제출한) ‘주변환경여건변화보고서’로 지난 10년간 환경이 얼마나 변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함평군에 추가자료를 요청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중앙토지수용위원회(중토위)도 “골프장 건설이 공익우월성·공익지속성·수용필요성을 충족하지 않아 ‘토지수용’이 부적정하다”는 의견을 군에 통보했다.

이와 관련, 전남도 건설도시과 관계자는 “중토위가 ‘부적정’ 의견을 냈기 때문에 시행사가 주민과 협의해 전체 토지를 매입하지 않는 이상 전남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가 이를 뒤엎고 시행사의 손을 들어주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골프장 등 농촌 난개발 중단 목소리 커져=이는 비단 함평군의 사례만이 아니다. 농도인 전남도만 하더라도 해마다 골프장이 크게 늘어 농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전남도 스포츠산업과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골프장 개수는 64곳이나 된다. 면적으로 따지면 3642만㎡로 10년 전인 2008년(2245만㎡)과 견줘 62% 이상 급증했다.

이에 따라 골프장 등 농촌지역 난개발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광주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골프장 등 대형 상업시설이 농촌에 들어서면 환경파괴는 물론 농촌공동체가 무너지는 사례가 많다”면서 “농촌이 지닌 공익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농촌지역 난개발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골프장과 같은 대규모 상업시설이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함평군의 경우 지역 내 골프장 두곳에서 거둬들인 지방세는 지난해 2억5500만원에 불과했다. 군 전체 지방세 360억원의 1%에도 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함평군 ㅇ골프장이 소재한 학교면 곡창리의 한 주민은 “골프장에 많은 외지인들이 수시로 드나들지만 식사나 숙박은 거의 골프장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면서 “인근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는 경제적 혜택이 없는데 누가 반기겠느냐”고 반문했다.

함평=이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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