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 근로자 단속강화… “농업현실 맞는 인력 수급대책이 먼저”

입력 : 2019-03-06 00:00
법무부와 경찰청이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자 농민들은 “농촌현실과 다른 행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은 한 육묘장에서 정식 허가절차를 밟아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토마토 모종을 정리하고 있는 장면.

농촌현장, 정식허가 입국 외국인 고용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워

일손부족으로 적기영농 차질 농사 규모 축소·포기할 수밖에

순환근무제 도입 등 대책 시급
 


“농촌현장을 제대로 알기나 하고 단속한다는 겁니까!”

본격적인 영농철을 앞두고 농민들은 요즘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분노마저 치밀어오른다. 법무부와 경찰청이 최근 불법으로 체류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단속을 상시·강화체제로 운영하면서 농사를 접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지 몰라서다.

지금 농촌은 고령화·부녀화에 따른 일손부족과 최저임금 인상 등의 여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가 아니고서는 ‘인력난’과 ‘임금 상승’을 견뎌낼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장의 대다수 농민들은 ‘단속 강화’보다는 ‘대책’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불법단속도 중요하지만 농촌현실에 맞는 외국인 근로자 운영방안을 먼저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충북 청주의 애호박농가 정모씨(58)는 “지금까지 수년간 정식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쓰려고 애써봤지만 제때 인력을 구하지 못해 낭패를 겪었다”며 “현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불법체류 외국인 2명을 고용해 1만여㎡(약 3000평)에서 애호박농사를 짓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시인력도 못 구하는데 정식 허가를 밟아 입국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정씨는 “그런데도 무턱대고 단속을 강화하면 농사짓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정부 단속으로 불법체류 외국인마저 농장을 떠나면 농사규모를 지금의 30% 수준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풀밭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고 한숨 쉬었다.

인근 지역의 딸기 재배농민인 김모씨(62)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겨울부터 늦은 봄까지만 이뤄지는 딸기농사의 특성상 일년 내내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을 줘야 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면 경영부담만 커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음성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정모씨(41)는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생산비 부담은 커진 반면 농산물가격은 평년 수준을 보장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결국 최저임금을 주고 나면 헛농사나 다름없다”고 하소연했다. 인건비 상승으로 불법체류 외국인을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다른 지역도 이곳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경남 밀양에서 9917㎡(3000평) 규모의 시설하우스에 참나물과 깻잎을 재배하는 문병철씨(68)는 “깻잎·참나물 농사에는 외국인 상시고용이 가능하지만 고추 등 다른 작목의 농가들은 성수기가 아니면 일손이 필요 없기 때문에 사실상 불법체류 외국인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손부족에다 최저임금 상승까지 겹쳐 가뜩이나 힘든데 대안도 없이 연중 상시단속만 한다면 농사는 어떻게 지으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양평에서 시설채소농사를 짓고 있는 이모씨(63)도 “임금의 많고 적음을 떠나 내국인은 힘든 농사일 자체를 기피해 일손 구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면서 “사실상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저임금이 잇따라 오르면서 경영이 어려워 기존에 고용하고 있던 외국인 근로자 일부를 내보내고 힘들게 농사를 짓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불법체류자 단속까지 강화하면 농가의 인건비 부담 증가와 적기영농 차질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강원 춘천 일대에서 배추·오이 등을 10만여㎡(약 3만평) 규모로 재배하는 양모씨(54)는 “주변에서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고용해 농사를 짓는 사례를 심심찮게 접한다”면서 “단속강화 이전에 농촌현실에 맞는 인력 수급대책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재두 영농조합법인 청원한우리육묘장 이사는 “축산을 제외한 국내 농업은 대부분 상주가 아닌 단기노동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재배시기나 작형이 서로 다른 농가가 외국인 근로자를 함께 고용할 수 있는 순환근무제를 도입, 농민의 임금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청주·음성=김태억, 밀양=김도웅, 양평=김은암, 춘천=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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