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로 준설 요청했는데”…예견된 인재

입력 : 2018-07-11 00:00 수정 : 2018-07-12 00:06
6월말 폭우로 큰 피해를 본 전남 나주시 왕곡면 신원리의 오리농장주 백형길씨(맨 왼쪽)와 주변 시설하우스 농장주들이 6일 토사와 수초가 쌓여 물길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배수로를 가리키고 있다.

전남 나주 6월말 180㎜ 폭우로 왕곡면 신원리 오리 폐사 피해

배수로, 비 많이 내릴 때마다 흙 쌓여 물길 막히는 악순환

오리농장주, 인근 농가와 함께 농어촌공사에 6년째 개선 요구

담당자들, 해결 위한 노력 안해
 


예견된 인재였다. 몇년 전부터 관계기관을 찾아가기도 하고 담당자에게 전화로 “장마철 배수로가 넘칠 수 있으니 준설작업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힘없는 농민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6월28일 전남 나주지역에 18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배수로에서 6~7m 떨어진 오리농장으로 수로 물이 역류하면서 1만여마리 오리 대부분이 폐사하거나 다쳐 상품가치를 잃고 말았다.

나주시 왕곡면 신원리에서 오리농장(4628㎡·1400평 규모)을 경영하는 백형길씨(45) 이야기다. 그는 오리를 키우면서 인근에 있는 배수로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폭 6m, 높이 1.7m, 길이 1㎞에 이르는 인근 대형 배수로는 비가 많이 내린다 싶으면 물이 넘실댔다. 장마철마다 배수로에 연결된 12개 농수로는 쉼 없이 토사물을 쏟아냈고, 배수로에는 흙이 쌓여 물길이 막히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현재 배수로 구간마다 높게는 1m가량 토사가 쌓여 있고, 키 높은 수풀이 자라고 있어 원래 수로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침수로 5000여만원의 피해를 본 백씨는 “6년 전부터 인근 농가들과 함께 왕곡면 배수로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 반남지소에 여러번 찾아가 담당자에게 준설작업을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현장조사를 나와 주변을 살펴보거나 제한된 구간의 수초를 치우는 게 전부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년간 세번 바뀐 반남지소 담당자들의 답변은 백씨와 주변농가를 더욱 좌절하게 했다. 준설해서 나온 흙을 옮길 사토장을 농민에게 직접 마련하라거나, 직접적인 관리 책임이 없는 나주시에 준설을 요청하라는 등의 성의 없는 말만 되풀이했기 때문. 거기에다 반남지소 담당자는 상위부서인 농어촌공사 나주지사, 지방자치단체인 나주시 등에 공식적인 문서를 보내 해결방안을 모색한 적이 단 한차례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농어촌공사 나주지사의 한 관계자는 “반남지소에서 2~3차례 현장조사 이후 ‘24시간 이내 물이 빠지면 될 정도로 수로를 관리해야 한다’는 공사 내부 규정에 비춰 해당 배수로는 충분한 배수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결론에 따라 준설에 나서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나주시 건설과 기반조성팀의 한 관계자는 “배수로 정비 등에 쓰라며 농어촌공사에 지원하는 비용만도 매년 최대 5억원에 달한다”며 “배수로를 준설하는데 공사 자체 예산이 부족하거나 사안이 시급한 이유로 공사에서 공식적인 협조문서를 보냈더라면 시가 직접 준설작업에 나섰을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농가 피해가 발생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농어촌공사가 뒤늦게 피해농가에 복구비 일부를 지원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농장주 백씨는 “폭우가 쏟아진 당일 공사 관계자가 찾아와 폐사한 오리를 치우는 인부를 섭외해주고, 사비를 털어 인건비를 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는 공사가 간접적으로 잘못을 시인했다는 얘긴데, 적법한 보상절차 없이 이제 와서야 인건비를 지원한 것을 두고 어느 누가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김영화 반남지소장은 “지소 직원이 오리 사육장이 큰 피해를 봐 안타까운 마음에 농가 복구작업에 도움을 주고자 자발적으로 한 행위를 ‘공사가 책임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배수로 인근 농가들의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돼 배수로 역류나 범람이 언제 또다시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992㎡(300평)의 시설하우스에서 멜론·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이형식씨(75)는 “이달말까지 방울토마토 정식을 해야 하는데 배수로 범람으로 시설하우스 내부가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물에 잠길까봐 걱정된다”면서 “이런데도 공사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준설작업 계획을 내놓지 않아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나주=이문수 기자 leemoonsoo@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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