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보이스피싱’…노인도 젊은이도 당했다

입력 : 2018-06-13 00:00
일러스트=이철원

지난해 2만4000여건 발생 2016년보다 42.4% 증가 피해액은 68.3%나 늘어

“돈 찾아 집에 보관” 절도형 “대출 안내 앱 설치” 사기 앱 몇년 새 신종 수법 기승

20~40대 피해자 절반 넘어
 


#1. 경남 김해에 사는 최모씨(65)는 최근 아들 친구라는 사람으로부터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빨리 수술비 1000만원을 입금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날벼락 같은 소식에 전화를 끊자마자 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입금했다. 그런데 나중에 수술 중이라던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뒤늦게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에 당한 것을 알게 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2. 4월 수원 등 경기지역 취업준비생 8명이 검찰청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월세 보증금 등을 송금하는 큰 피해를 봤다. 경찰 조사 결과 모두 20대 여성이었고, 피해금액은 9000여만원에 달했다. 특히 이들은 취업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월세 보증금과 아르바이트로 모은 적금 등을 고스란히 보이스피싱 조직에 건넸다.



보이스피싱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보이스피싱 발생건수는 2만4259건으로 2016년(1만7040건) 대비 42.4%나 늘어났다. 피해액은 더욱 늘어 2470억원으로 2016년(1468억원)보다 68.3%나 증가했다. 2017년 기준으로 하루에만 평균 70건 가까이 발생해 약 7억원의 금전적 손실을 본 것이다. 올해 1~4월에도 이미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00여건 많은 1만1196건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같은 피해는 전국적으로 노인은 물론 젊은이에게까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만큼 사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신종수법 기승…근절 쉽지 않아=보이스피싱이 꾸준한 계도활동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수법이 계속 진화하고 있어서다. 이전에는 피해자를 기망해 대포통장에 입금케 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으나, 몇해 전부터는 사기에 이어 물리적으로 돈을 훔치는 ‘절도형 보이스피싱’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오전 11시쯤 울산 울주에 사는 박모씨(60)에게 ‘070’으로 시작하는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금융감독원 직원이라며 개인정보가 노출됐다는 내용이었다. 곧이어 경찰서라며 전화가 뒤따랐다. “금감원에서 신고를 받았는데 개인정보가 노출돼 돈이 인출될 것 같으니 현금으로 찾아서 냉장고에 보관하라”는 말이 들려왔다. “집 열쇠는 현관문 옆에 있는 우편함에 넣어두고, 은행 직원이 현금 인출 이유를 물으면 절대로 말하지 말라”며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돈을 노리고 있으니 눈치채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박씨는 순간 이성을 잃고 시키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고 박씨는 은행으로 달려갔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박씨의 모습에 창구직원이 보이스피싱임을 의심하고 대처해준 덕분에 그는 힘겹게 모은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만약 박씨가 인출한 현금을 집에 보관했더라면 사기범은 박씨를 집 밖으로 유인하고 그 틈을 타 돈을 훔쳤을 것이다.

최근에는 은행에서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사기 앱을 이용한 신종 수법도 나타났다. 서울 강동경찰서에 따르면 5월 황모씨는 최저금리로 정부지원 대출이 가능하니 안내해주는 앱을 설치하라는 보이스피싱범의 전화를 받았다. 해당 앱에는 실제 금융기관 이름과 로고가 표시돼 있었다. 범인은 이후 황씨에게 평소 이용하던 은행에 남아 있는 수천만원의 대출금을 정리하도록 유도했다. 황씨가 설치한 앱은 실제 은행이나 정부기관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결되도록 설계돼 있었고 결국 황씨는 수천만원을 사기범에게 넘겨주는 피해를 봤다.



◆보이스피싱, 안전지대는 없어=이처럼 보이스피싱은 수천만원이 넘는 심각한 금전적 손해를 입히지만 경각심을 갖는 이들은 생각보다 적다.

특히 젊은층은 보이스피싱이 나이 든 사람만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7년 기준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54%(1154건)가 20대이며, 30대 19%(412건), 40대 9%(204건)다. 대출 사기형도 20~40대 피해자가 60%(5480건)나 된다.

실제로 1월에는 인천시 연수구에 거주하는 20대 대학생이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한 범인으로부터 “본인 명의의 불법통장이 개설돼 수사 중이니 돈을 인출해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전달하라”는 전화에 속아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830만원을 보내기도 했다.

5월14일 농촌마을에 자리 잡은 전남 여수 여천농협 화동지점에도 한 20대 중반 여성이 찾아와 다급히 3000만원 인출을 요구했다. 이 여성은 “예전 중고거래 사이트 가입 때 작성한 개인정보가 유출돼 대포통장이 개설됐는데 이 통장이 80억원 규모의 사기 사건에 연루됐으니 당장 예금을 지정 통장으로 송금하라”는 보이스피싱범의 전화를 받은 터였다.

다행히 여성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이찬수 여천농협 과장이 기지를 발휘해 보이스피싱은 미수에 그쳤다.

이 과장은 “이번 사건을 통해 노인은 물론 젊은 사람들도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판단을 잘못하면 보이스피싱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평소 금전과 관련된 이상한 전화는 일단 의심을 하고 은행직원 등에게 문의를 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천·수원=김은암, 울주·김해=노현숙, 김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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