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질 농산물 생산해도 제값 못 받아…“농촌은 부도 지경”

입력 : 2019-08-12 00:00 수정 : 2019-08-14 08:16
제주의 한 친환경농가가 판로가 없어 컨테이너에 담아 창고에 쌓아둔 농산물을 살펴보고 있다.

‘농산물값 폭락’에 사지로 내몰리는 농민들

양파·마늘 등 생산비 못 건져 전국 곳곳서 극단 선택 잇따라

수확할수록 손해 눈덩이 ‘한숨’ 농자재값 등 빚도 계속 늘어나

경기침체 장기화로 소비 둔화 정부 가격보장제도 마련 필요

농산물 수급정책 재점검 등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1년 365일 내내 일만 했는데….”

7월31일, 제주 서귀포에서 친환경으로 양파·마늘 등을 재배하던 한 귀농인 부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들 귀농인 부부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면서 제주지역 농업계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특히 친환경농가들은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같은 친환경농가이자 해당 부부의 지인인 윤순자씨(54)는 “이들 부부가 10여년 전 귀농해 오막살이집에 살면서 밤낮없이 농사일에 매달렸는데 결국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 부부는 유기농으로 메밀·단호박·양파·마늘 등을 재배했다. 하지만 재작년엔 저온피해, 지난해엔 태풍피해로 큰 빚을 졌고 올해는 전국적인 농산물 생산량 증가로 판로를 찾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게 주변인들의 전언이다.

윤씨는 “불어나는 빚을 갚기 위해 부부는 매년 더 많은 땅을 빌려 경작에 나서야 했다”면서 “감당이 어려울 만큼 농사일이 많아진 탓에 지난해에는 남편이 트랙터 수리 중 사고로 중상을 입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바로 밭일을 나가야만 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좋았던 올해 작황을 보며 큰 기대를 걸었다고 했다. 하지만 풍년은 독으로 돌아왔다. 전국적으로 농산물값이 폭락하고 팔 곳마저 없어져버린 것이다.

윤씨는 “이번에 농사가 잘됐다며 기뻐하던 부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면서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데 빚만 늘어나는 구조라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산물값 하락 때문에 농가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곳은 비단 제주만이 아니다. 특히 올해는 무·배추·양배추·양파·마늘에 이어 최근엔 고랭지 농산물까지 값이 생산비 밑으로 떨어지면서 농민들을 극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실제 마늘값 파동이 났던 경북에서는 농민 2명이 큰 손해를 보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지역사회에서는 마늘값 하락이 하나의 요인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조심스런 의견을 내놓고 있다.

충북과 강원에서도 무·배추 농가와 산지유통인 등 모두 4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7월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북지역 한 산지유통인의 경우 8월 중순까지 수확하기로 하고 강원 고랭지무·배추 농가들과 17만9000㎡(약 5만4000평) 규모로 밭떼기거래를 했다. 그리고 계약금으로 3억원을 건넸다. 하지만 잔금 지급일이 가까워질수록 무와 배추 값이 폭락하자 결국 경영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7월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무는 20㎏들이 한상자당(상품 기준) 평균 7000원대에 경매됐다.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에 따르면 인건비와 각종 자재비 등을 감안할 경우 적어도 무 20㎏들이 한상자당 1만3000원은 받아야 한다. 수확할수록 손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농민들은 참담하기만 하다. 충북 괴산에서 배추·옥수수 농사를 짓는 문태복씨(64)는 “큰일이다”라는 말부터 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그 역시 올해 1차로 봄배추·옥수수 농사를 지었지만 낭패를 봤다. 문씨는 “농촌은 이미 부도 지경”이라면서 “당장 갚아야 할 농자재값만 1500만원이 넘는데, 이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을배추농사에 희망을 걸어보고 있는데 잘될지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양채류 재배농민 변원섭씨(62·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는 “올해부턴 배추농사를 접고 양채류농사에만 전념했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진 게 없다”며 “‘내년에는 나아지겠지’라는 마음으로 농사짓고 있는데 이마저도 접어야 할 것 같다”고 푸념했다.

사정이 이렇자 정부에 대해 ‘실효성 있는 농산물 수급안정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민단체들은 “농민들을 더이상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면서 “농산물 가격안정과 농가 경영안정에 나서달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충북 영동의 복숭아 재배농민 배정학씨(65)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농산물 소비도 크게 둔화된 것 같다”며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해도 제값을 받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정부가 생산비 수준 이상의 가격을 보장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제주의 한 친환경농가는 “농산물가격이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그마저도 팔기가 어려우니 너무 힘들다”면서 “정부는 농산물 수급정책을 원점에서 재점검해 농민들에게 살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귀포=김재욱, 괴산·청주=김태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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