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희망이다] 관광지로 발전한 일본 시라카와마을

입력 : 2017-08-11 00:00 수정 : 2017-08-11 14:03
덴슈카쿠(天守閣)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시라카와마을 합장촌 전경.

[연중기획-마을이 희망이다]5부 해외 우수마을을 가다(2)일본 기후현 오노군 시라카와마을

누에 키우며 살던 첩첩산중 마을 전통문화·가옥 지키는 협회 결성 후 국가 보전지역 지정…관광지로 발전

공동체문화 ‘유이’ 기반으로 전통 지켜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연간 180만명 찾는 관광지로 우뚝

전통은 자산이다. 오래되고 낡아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소득의 원천이자 주민들의 자부심이다. 일본 기후현 오노군 시라카와마을이 딱 그렇다. 주민들이 굳건히 지켜온 전통가옥과 전통문화 덕분에 세계적인 관광지로 거듭났다. 농촌관광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고자 시라카와마을을 찾았다.

일본 기후현(岐阜 ) 오노군(大野郡) 시라카와마을(白川村)은 자연환경이 열악한 산촌이자 가난한 농촌이었다. 해발 500m에 위치한 시라카와마을은 세면이 산으로, 다른 한면은 협곡으로 둘러싸였다. 특히 겨울철에는 적설 높이가 3m가 넘을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린다.

‘갓쇼즈쿠리’라는 건축양식은 이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옛 일본인들의 지혜였다. 억새로 만든, 경사가 심한 ‘맞배지붕’이 특징이다. 보통 기울기가 45~60도에 이를 정도로 급경사인 이유가 다 있다. 경사가 심해야 눈이 지붕에서 빨리 떨어질 뿐만 아니라 눈의 하중을 견디기에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런 지붕 모양이 마치 합장할 때 손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갓쇼(合掌)’라는 용어가 붙었다. 에도시대(1603~1867년) 후기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니 오랜 역사와 전통이 서린 가옥인 셈이다.

시라카와무라에 있는 일본 전통가옥(갓쇼즈쿠리).


주민들의 형편은 어려웠다. 쌀이 모자랐다. 산간지역이라 겨울이 긴 탓에 벼농사도 쉽지 않았다. 농사는 순전히 자급용이었다. 배고픈 생활의 연속이었다. 당시 주민들의 주수입원은 잠사. 누에를 키우면 1년에 두번 잠사회사 직원이 마을로 찾아와 사갔다. 겨울엔 뽕잎이 없어 누에를 키우지 못하니 대신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았다.

“당시 가족들이 집 안에 둘러앉아 뽑은 실로 원단을 짜고, 기모노나 생활복을 만들었죠. 옷도 자급자족용이었습니다. 아무리 만들어도 교통이 불편해 어디다 내다 팔 수가 없었으니까요.”

주민 하시와키 가즈요(75·여)에 따르면 1930년대까지만 해도 협곡의 강을 따라 난 길이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한다. 자전거도, 리어카(손수레)도 없던 시절, 잠사회사 직원도 그 길을 따라 지게로 누에고치를 지고 날랐을 정도였다. 가난했지만 1960년대 초까지 주민들의 주업은 잠사였다.

아무리 어려워도 주민들에게는 선조들의 가옥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버블시대(고도성장기)에 가옥을 편한 현대식으로 다시 지으려는 조짐이 일었다. 일부 주민이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바람에 폐가가 되는 가옥도 생겨났다. 불안감을 느낀 주민들은 1971년 마침내 ‘시라카와고 오기마치 취락의 자연환경지키기협회’를 결성, 보존운동에 나섰다. ‘시라카와고(白川鄕)’는 시라카와마을의 일본 명칭. ‘오기마치(荻町)’는 합장촌의 다른 이름으로, 오기(荻)는 지붕을 이는 억새다. 합장촌 주민 550여명 전원이 가입된 협회는 보존을 위한 주민 헌장까지 제정했다. ‘팔지 않는다’ ‘빌리지 않는다’ ‘부수지 않는다’가 그 내용이다. 가옥이든 땅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시라카와마을의 일본 전통가옥.


1976년 국가로부터 합장촌이 중요전통건축물군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이를 계기로 주민들은 ‘마을을 관광지로 발전시키자’는 의견을 모았다. 마침 일본철도(JR)가 마을사진을 홍보에 활용하면서 마을이 유명해졌다. 주민들은 본격적인 관광사업에 나섰다. 드디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단순히 가옥만 지정된 게 아닙니다. 농촌경관과 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전통이 그 요건에 다 포함됐어요. 가옥들만 도쿄에 가져간다고 과연 세계유산이 될까요?”

하시와키의 반문이었다. 무엇보다 하시와키가 자부한 전통은 ‘유이(結)’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뜻. 같이 농사짓고, 서로 일손을 돕는 것이다. 지붕 교체가 그중 한가지다. 보통 20~30년이 지나면 지붕의 억새를 교체해야 한다. 이때 주민들이 함께 돕는다. 최근의 지붕 교체작업에는 200여명의 주민들이 일을 도왔다. 어찌보면 우리의 품앗이와 매우 흡사한 전통이다. 바로 이런 유이라는 농촌공동체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세계유산이 된 것이다.

시라카와무라의 칸다가문(神田家)의 가옥안에 전시된 일본 무사 갑옷. 


볼거리뿐만 아니라 즐길거리 또한 다양하다. ‘도부로쿠’라는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술을 주제로 한 ‘도부로쿠 마쓰리(축제)’는 1년에 한번 10월 중에 열리는 시라카와마을의 가장 큰 축제다. 술을 나눠주고 마시며 관광객과 주민들이 함께 즐긴단다. 이 축제의 프로그램으로는 인형극 시시마이 공연, 칠복신들이 풍년을 기원하며 춤추는 하루코마 연극 등 다양하다.

“새로운 축제를 만들기보다 지켜나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을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을 위한 일이 바로 그것일 테니까요.”

사토우 켄 시라카와마을 야쿠바(役場) 주사(30)의 각오였다. 야쿠바는 우리나라의 면사무소 같은 곳이다. 세계유산 등재 전에는 연간 70만명, 등재 후에는 180만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세계적 관광지로 거듭난 시라카와마을은 민박과 식당·기념품가게 운영 등으로 주민들의 삶이 과거에 비해 한결 나아졌다.

시라카와무라 집성촌 거리. 공예품가게와 식당 등이 들어서 있다.


“일자리가 늘어나 주민들이 건강하게 살고 있어요. 83세 어르신이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그곳이 아니면 83세 어르신이 어디 가서 일하겠어요?”

한 주민의 말처럼 관광지화는 마을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매일 그랬던 것처럼 가옥을 보존하기 위해 “불조심하세요!”를 외치며 오늘도 하루 네번 마을을 돈다. 목조가옥이라 불이 나면 순식간에 사라질 자산이기에 하루도 경각심을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강영식 기자 river@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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