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아프면? 안될 말!…안전 축산물 생산 도우려 불철주야 ‘열일’

입력 : 2019-12-02 00:00
기자(오른쪽)가 돕는 가운데 이한경 수의사가 직접 조제한 설사약을 송아지에게 먹이고 있다.

[현장 속으로, 기자체험 25시] 농민신문 김민지 기자가 간다 (32)대동물 수의사

26년째 대동물 진료하는 이한경 수의사의 일일 조수로 김제 구석구석 돌며 가축 돌봐

설사병 걸린 송아지 변 채취하고 브루셀라병 등 검사 위해 채혈한 피통도 꼼꼼히 챙겨

흥분한 소에 치일 뻔하고 분뇨 범벅된 채 시술 다반사

농가 다 돈 후에도 할 일 남아 진료 기록 정리…각종 연구도

우리 먹거리 안전하게 지키고 축산농 돕는단 사명감 ‘무장’



쇠고기는 우리 식탁 위에 올라올 때까지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다. 그 중에도 맛 좋고 안전한 한우고기가 시장에 나오려면 ‘이 사람’이 꼭 필요하다. 바로 ‘대동물 수의사’다. 농가를 다니며 소·젖소·말 등 덩치 큰 가축을 진료하는 의사다. 매일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 600㎏이 훌쩍 넘는 거대한 소에 주사를 놓는 건 기본이다. 분뇨가 질퍽하게 쌓인 축사 한가운데서 각종 시술을 하기도 한다. 난산 우려가 있는 암소가 성공적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새벽에도 출동하기 일쑤다. 대동물 수의사의 일일 조수가 돼 그의 하루를 밀착 취재했다. 



“나 아픈 건 괜찮아도 소는 아프면 안돼요, 원장님! 빨리 와주세요.”

수의사가 휴대전화를 받는 순간 농민의 다급한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한경 행복을찾는동물병원 원장(56)은 대동물 수의사로 26년째 전북 김제지역에서 소와 말을 진료하고 있다. 기자가 이 원장의 일일 조수 겸 견학생으로 출근한 당일 오전 8시, 일일 상사에게 제대로 인사를 건넬 틈조차 없었다. 그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댔기 때문이다. 주말 동안 진료예약이 쌓여 한농가라도 더 방문하려면 바삐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원장의 차에 바로 올라탔다. 차 안에는 방역복, 주사기, 휴대용 검사기기 등 각종 위생·의료용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료를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축사를 나서고 있다.


진료~수술 후 관리…책임지고 출동

논밭 사이를 굽이굽이 운전해 15분 정도 달리자 첫 환우(患牛)가 기다리는 축사에 도착했다. 자신은 병에 걸려도 상관없지만, 소는 아프면 큰일 난다던 강신규씨(75)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이 원장을 맞았다. 기자는 이 원장을 따라 트렁크에서 방역복을 꺼내 입었다. 신발은 비닐로 감싸고 손엔 장갑도 꼈다. 외부 오염물질이 축사 내로 들어가는 걸 최대한 막기 위해서다. 이 원장은 문제의 암소를 찬찬히 살펴봤다. 이 소는 최근 질탈, 즉 질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질병을 앓아 치료했는데 수술 부위가 잘 아물지 않는 듯해 이 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다행히 아무 문제 없었다. 이 원장의 입에서 “괜찮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강씨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소 키워서 먹고사는데 한마리 한마리가 소중하죠. 원장님 덕분에 살았구먼.”

이 원장은 다시 서둘러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다음 목적지를 확인하고자 수첩을 펼치는 와중에도 이 원장의 휴대전화가 정신없이 울렸다. 수첩을 넘길 때마다 소 진료를 요청한 농민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매일 김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느라 이 원장의 차는 하루에 200~300㎞를 달린다. 김제의 소 키우는 농가는 다 이 원장 손바닥 안에 있는 셈이다. 웬만한 농가는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 척척 찾아간다고 했다.

“오늘은 좀 바쁜 편이네요. 그런데 많은 소가 분만하는 봄철엔 훨씬 더 바빠요. 하룻밤에 네군데서 난산을 겪는 어미소로부터 송아지를 받은 적도 있죠.”

봄철 환절기엔 송아지 진료가 유독 많단다. 아무래도 면역력 약한 송아지들은 각종 병원균과 바이러스에 취약하기 때문. 기자가 찾아간 날은 봄철도 아닌데 설사 증세로 이 원장의 손길을 기다리는 송아지가 세마리나 됐다. 이 원장은 축 늘어진 송아지 한마리를 뉘어놓고 설사병의 원인을 알아내는 검사를 시작했다. 드디어 조수에게도 할 일이 주어진 순간이다. 이 원장을 도와 송아지의 변을 채취했다. 검사기에 변을 묻히고 5분 정도 기다리니 바로 원인이 드러났다. 크립토스포리디움증이었다. 기자가 송아지를 잡고 있는 동안 이 원장은 송아지 귀 옆에 링거주사를 놓았다. 주사가 자신을 낫게 한다는 걸 아는 것인지, 움찔거릴 힘조차 없는 것인지 가만히 주사를 맞던 송아지는 곧 잠들었다. 속이 좀 편안해진 듯했다. 각각 다른 원인으로 설사병을 앓던 다른 농가의 송아지들에게도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놓고 나자 벌써 해가 중천이었다.

 

 이 수의사의 차 안엔 진료와 수술에 필요한 모든 물품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축산농민에게 없어선 안될 존재

이 원장은 대학의 수의학부생 시절까지 합하면 30년 넘게 소를 연구한 소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 진료차 농가에 가도 진료만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농민들은 이 원장을 붙잡고 사육방법, 출하시기 등에 대한 질문을 했다. 소 진료로 시작해 농민컨설팅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번에 네마리 출하해서 4800만원 받았어요. 무조건 원장님이 하라는 대로 했더니 이제 한마리당 1000만원은 거뜬하네요.”

직업군인으로 활동하다 전역 후 귀농한 백완철씨(73)는 10여년 전 한우 사육에 나서자마자 이 원장을 찾아갔단다. 그만한 소 전문가가 없단 소문을 들은 것이다. 백씨가 성공적으로 출하했단 얘기를 들은 이 원장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열심히 키운 건강한 소를 출하해서 저렇게 기뻐하실 때마다 뿌듯해요. 이 일 하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죠.”

아픈 소가 있는 농가에만 이 원장이 출동하는 건 아니다. 소를 거래하거나 이동신고할 땐 브루셀라병과 결핵병 검사가 필수인데 이것도 이 원장의 주요 업무다. 농민이 소를 제압하면 재빨리 주삿바늘을 꽂고 검사용 피를 뽑는다. 이날엔 한농가에서만 20마리 넘는 소를 대상으로채혈하기도 했다. 기자는 이 원장이 채혈하면 피가 든 통을 재빨리 받아 챙겼다.

살이 오를 대로 올라 집채만 한 덩치를 자랑하는 소에게 주사를 놓다보니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벽 쪽으로 달아나던 소에 이 원장이 치일 뻔하기도 했다.



책임감을 원동력 삼아 일한다

이날 마지막 10번째 농가에서 진료를 끝내고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진료가 끝나도 이 원장에겐 할 일이 남았다. 낮에 각 농가 소에서 채혈한 것을 정리·기록하고 다음날 방문할 농가를 추려 수첩에 적어야 한다.

더 효과적으로 소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도 그의 중요한 일과다. 요즘 이 원장은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과 협업해 지역별·양상별·성별로 송아지 설사병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설사병을 앓는 송아지를 많이 접하는 이 원장은 그가 진료하는 송아지의 분뇨 샘플을 수집해 연구한다.

고작 하루 동안 이 원장을 따라다니며 간단히 보조역할만 했을 뿐인데 기자는 녹초가 됐다. 이 원장의 얼굴에도 피곤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대동물 수의사 일이 힘들진 않느냐고 묻자 이 원장은 “너무 힘들죠! 당연한 걸 물으시네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당연히 힘든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축산농민을 돕고 우리 먹거리를 지키는 일이니까요. 이 책임감에서 힘이 나옵니다.”

김제=김민지,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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