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양돈장, 쌓이는 빚, 재입식 요원…豚 없다, 돈 없다

입력 : 2019-10-21 00:00

경기 북부지역 양돈농가 생계 유지조차 어려워

당장 재입식한다고 해도 판매까지 상당한 시일 걸려

대책 요구에 정부 ‘묵묵부답’ “피해대책 특별법 제정 시급”
 


생존권을 지키려는 경기 북부지역 양돈농가들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대한한돈협회 소속 농가들은 14일부터 일주일간 청와대·농림축산식품부·환경부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펼친 데 이어 같은 날 연천군청 앞에선 지역 내 모든 돼지를 수매, 예방적 살처분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18일엔 의정부 경기도청 북부청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기도 했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중재로 집회는 열리지 않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은 상태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전파 위험을 무릅쓰고 농가가 거리로 나서는 이유는 지속적인 요구에도 정부가 합리적인 살처분 보상책을 내놓지 않아서다. 15일 정부는 농가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정부의 대책 마련이 지연될수록 농가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예방적 살처분으로 모든 돼지를 없애는 바람에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기 연천군청 앞에서 열린 무분별한 살처분 정책 반대 집회 현장.


연천의 번식농가 박모씨는 “2년 전 은행 대출을 받아 돈사를 신축하면서 매월 갚아야 하는 이자만 2000만원”이라며 “내다팔 돼지가 없어 돈을 못 버는 상황에서는 이자를 갚는 것은 물론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생계의 막막함을 호소하는 농가는 박씨뿐만이 아니다. 파주의 양돈농가 김모씨는 사료비 걱정으로 며칠째 밤잠을 설치고 있다. 사료업체에 사료비를 내지 못해 빚더미에 나앉게 돼서다. 대부분 농가는 돼지와 농장시설 등을 담보로 외상으로 사료를 산다. 이후 돼지 판매대금이 들어오면 사료업체에 사료비를 갚는데, 살처분 이후 수익이 없어 사료비를 갚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는 “살처분 보상금이 들어와도 사료비 갚고 나면 생활비로 쓸 돈이 없어 큰일”이라고 걱정했다. 정부는 살처분 당일 시세로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는 농가의 손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기약 없는 재입식도 농가의 시름을 더한다. ASF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르면 발생농장은 이동제한 해제일부터 40일이 지난 다음 60일간 단계별로 시행하는 입식시험에서 이상이 없을 때 돼지를 재입식할 수 있다. 이때 이동제한은 마지막 발생농장의 돼지에 대한 살처분과 소독조치가 끝난 날부터 21일이 지난 후 여러단계를 거쳐 해제된다. 발생농장이 재입식을 하기까지 이동제한 해제일을 포함해 최소한 4개월 이상 걸리는 셈이다.

또 발생농장 반경 500m 이내의 양돈장은 발생농장이 입식시험에서 이상이 없을 때만 돼지를 들일 수 있다. 결국 발생농장 반경 500m 이내의 양돈장들도 재입식 시기가 발생농장과 같다. 그 외 지역 양돈장은 이동제한 해제일로부터 40일이 지난 후에 재입식할 수 있다.

이처럼 재입식 절차가 마련돼 있지만 언제 ASF가 추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확한 재입식 시점을 전망하긴 어렵다. 다행히 재입식을 한다 해도 돼지를 판매하기까지 시간이 걸려 당장 수익을 낼 수 없다.

번식농가의 경우 후보돈을 들여와 교배하기까지 3개월, 임신기간 약 4개월(115일), 새끼돼지 생산 후 30㎏까지 키워 비육농장으로 보내기까지 2~3개월 등 적어도 10개월 이후에나 첫 판매를 할 수 있다. 일관사육 농장이라면 여기에 비육기간 5개월이 추가된다. 돼지 판매대금을 손에 쥐기까지 최소 1년3개월이란 시일이 걸리는 셈이다.

하태식 한돈협회장은 “농가들에 신속하고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피해대책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법률 조언을 받아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 후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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