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아라가야 흔적에서 인생 순리를 생각하다, 함안 말이산고분군

입력 : 2021-10-08 00:00 수정 : 2021-10-0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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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은 말이산의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산 위의 산’이라는 경외감이 들게 한다. 가야시대 단일 고분 유적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김도웅 기자의 감성여행] ⑯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

‘아라가야’ 삼한시대 변한 6가야 중 하나 주변국 불러 국제회의 했을 만큼 번성

신라에 끝까지 항거해 기록 거의 없어 남은 것은 함안 말이산 주능선 고분뿐

45호분 덧널무덤, 4호분 돌덧널무덤 등 크고 작은 무덤 128기서 역사 드러나

다양한 금공예품 등 유물도 다수 출토

역사적 가치 인정 … 유네스코 등재 앞둬  

 

친애하는 C에게


언젠가는 제 손으로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막연하게 한 것은 아마 초등학교 때 시골에 있는 먼 친척뻘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고 난 후였던 것 같아요. 마당 곳곳에는 건축 재료들이 쌓여 있고 본채인 한옥도 건축 중이었어요. 다만 내부는 완성돼 실내생활은 가능했었지요. 어른들 이야기를 엿들으니 수년 동안 그 자그만 할아버지가 혼자서 직접 집을 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놀라며 든 생각은 ‘어라, 집을 전문가가 아니어도 지을 수 있어?’였습니다. 일반인이 집을 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아마 그때부터 막연하게 제가 살 집은 직접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경남 함안군청 소재지 가야읍에 위치한 말이산고분군에 다녀왔습니다. 함안은 삼국시대 이전 삼한시대(마한·진한·변한) 때 변한의 6가야 중 한 고대국가인 ‘아라가야(阿羅加耶)’의 영토였습니다. 백제와 신라 사이에 있었지요. 가야읍이라는 지명도 아라가야에서 따왔습니다. 사람들은 ‘가야’ 하면 경남 김해의 ‘금관가야’, 경북 고령의 ‘대가야’ 정도만 기억하지 아라가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합니다. 그러다보니 가야의 역사도 얼마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백제나 고구려와 비슷합니다. 기원을 전후로 비슷한 시기에 건국해 백제는 660년, 고구려는 668년에 멸망했고 아라가야의 멸망은 560년 무렵이었으니 이들 나라보다 불과 100여년 정도밖에 뒤지지 않습니다.

6가야는 기원 후 400년을 전후해 전기와 후기로 나뉩니다. 전기에는 금관가야와 아라가야, 후기에는 대가야와 아라가야가 가야를 대표하는 양대 세력이었습니다. 아라가야는 529년에 신라와 백제, 왜를 불러들여 국제회의를 개최했을 만큼 고대사의 주역을 담당해 주변국으로부터 ‘형님의 나라’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바로 아래쪽에 있는 진동만을 통해 일본, 북한 쪽의 낙랑, 중국과도 해상교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라가야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삼국유사> 등 문헌에서는 함안지역에 존재했음을 기록하고 있지만 실체는 확인하지 못했지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532년 멸망한 금관가야는 마지막 왕인 10대 구형왕이 신라 법흥왕에 항복해 나라를 넘겼지만 아라가야는 끝까지 싸우다 멸망했거든요.

금관가야는 항복했으니 그 유민들이 신라에서 벼슬도 얻고 대접받으며 삽니다. 김유신 장군은 바로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자입니다. 하지만 신라는 끝까지 항거한 아라가야를 탄압하고 씨를 말려버립니다. 이때 많은 아라가야인은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넘어갔지요. 신라의 말살정책에 의해 아라가야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겁니다. 남은 것은 고분군뿐입니다. 해발 60m 안팎의 작은 봉우리들이 2㎞ 가까이 걸쳐 있는 말이산의 주능선 위에 가야 최대 고분 등 대형 봉분이 줄지어 있습니다. 다른 역사적 기록물이 없으니 이 봉분들은 아라가야의 비밀을 알려줄 유일한 ‘타임캡슐’인 셈입니다.

말이산에는 128기의 크고 작은 무덤들이 조성돼 있으며, 약 52만㎡(15만7000여평)로 가야시대 고분 유적으로는 최대규모를 자랑합니다. 1917년 일본에 의해 조사랄 수도 없는 첫 조사가 13일 만에 진행됐고 제대로 된 학술조사는 1990년대에 들어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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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분 내부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모형으로 말이산고분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이후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며 베일에 싸였던 아라가야의 역사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45호분은 대형 봉분을 갖춘 덧널무덤(목곽묘), 4호분은 돌덧널무덤(석곽묘)임이 밝혀졌습니다. 또 45호분에서 아라가야의 화려한 금공예품 제작기술이 반영된 봉황 장식 금동관을 비롯해 집모양토기·사슴모양토기 등 보물급 상형토기와 말갖춤·말안장 등 268점이, 4호분에서는 수레바퀴모양토기·오리모양토기·사슴뿔장식철검 등 284점의 유물이 출토돼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설명드린 모든 것은 함안박물관 근처의 ‘말이산고분전시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4호분 내부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모형과 들보시설 등 아라가야만의 독특한 고분 축조기술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특히 고대 벽화에서만 볼 수 있던 말갑옷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온전한 형태로 나온 것은 이곳이 처음이랍니다. 해설사가 상주한다고 하니 설명을 들으면 아라가야인의 삶과 지혜를 엿볼 수 있을 겁니다.

전시관을 나와 뒤편의 말이산으로 올라갑니다. 말이산(末伊山)이라는 이름은 우리말 ‘머리산’에서 왔다고 합니다. ‘왕의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지요. 야트막한 구릉 위로 능들이 곳곳에 솟아 있습니다. 관리를 잘해 마치 잘 다듬어놓은 산책길 같습니다.

지금 말이산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습니다. 2013년에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올랐고 현지 실사를 거치는 등 등재를 위한 열한개 과정 중 여덟번째 과정이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설명을 듣고 능 사이를 걸으니 능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하네요.

C. 능들을 둘러보니 제가 짓고 싶었던 집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때 막연히 이런 생각을 했어요. 집이 직사각형의 삭막한 콘크리트가 아니라, 야트막한 뒷동산처럼 흙으로 둥글게 덮여, 그 위에 꽃도 자라고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뛰어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그만 뒷동산을 닮은 둥근 흙집이 상상이 가시나요? 언젠간 시골에 ‘언덕 같은 집’을 지으리라 다짐했지요. 하지만 그 생각을 포기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좋아 뒷동산이지 생긴 건 ‘무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에 능 사이를 걸으니 더이상 무덤이 낯설지 않습니다.

‘산다는 건 어차피 지난날의 저 왕들처럼 무덤으로 가는 길이야. 내가 들어갈 무덤, 내가 파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아라가야 고분을 보며 다시 흙으로 덮여 무덤같이 생긴 시골의 ‘언덕 집’을 짓기로 작정합니다.

C. 언젠가 제 손으로 지을 언덕처럼 생긴 집, 제 ‘무덤’에 초대할게요. 놀러 오실 거죠? 이만 총총.

당신의 W가

글·사진=김도웅 기자 pachino8@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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