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망망대해 같은 인생…운주사 천불천탑 만나 위안을 얻다

입력 : 2021-09-10 00:00 수정 : 2021-10-0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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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전남 화순 운주사의 와불. 과거 민초들은 누워 있는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믿었다. 

[김도웅 기자의 감성여행] ⑮ 전남 화순 운주사 

부부처럼 머리 맞댄 거대한 와불 인상적

석불 100여좌 대부분 근엄한 인상 아닌 토속적·평면적 … 왜소하고 못생기기까지

특이한 형태의 석탑 21기도 곳곳에 산재

신라 승려 도선, 한반도 지형 배(舟)로 보고 균형 맞추고자 호남에 천불천탑 세웠다 전해

 

친애하는 Y에게



음유시인이자 가수인 정태춘은 삶을 바다로 떠나는 배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떠나가는 배’가 그렇고 ‘서해에서’라는 노래가 그렇습니다. ‘서해에서’의 노랫말입니다.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데 고요히 잡아주는 손 있어 서러움을 더해주나

저 사공이 나를 태우고 노 저어 떠나면 또 다른 나루에 내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어두워지는 저녁 바다에 섬 그늘 길게 누워도 뱃길에 살랑대는 바람은 잠잘 줄을 모르네

저 사공은 노만 저을 뿐 한마디 말이 없고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육지 소식 들려오네



첫 소절부터 이별입니다. 그러나 울고 있을 때가 아니지요. 인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머나먼 ‘갈 길’은 고독한 삶의 여정입니다. 결국 생은 봇짐 하나 달랑 메고 혼자 떠나는 일이 아니던가요. 사공은 인생입니다. 여기저기 빈 나루터에 내려줄 뿐 여기가 어딘지, 삶이 무엇인지 ‘한마디 말’도 없습니다. 해가 져도 멈추지 않고 ‘살랑대는 바람’은 끊이지 않는 근심, 걱정으로 들립니다.

 

전남 화순 운주사에 다녀왔습니다. 국내 최대 와불(臥佛)로 유명한 곳이지요. 많은 사람이 힘들고 지칠 때 와불을 보고 위안을 얻는다고 합니다. 오래전부터 저도 삶의 무게로 어깨가 무거울 때마다 와불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운주사 일주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다양한 모습의 석불이 반겨줍니다. 둥글거나 각진 얼굴,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불상들이 모양도 제각각입니다.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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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입구 쪽 구층석탑 옆에 있는 석불들. 화려하지 않고 투박한 부처의 모습이 마치 우리의 모습 같다.

 

가다보면 제일 먼저 만나는 탑은 구층석탑(보물 제796호)이에요. 거대한 암반 위에 서 있으며 별도의 기단을 구축하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대웅전까지 죽 올라가며 감상하고 싶지만 와불님을 빨리 뵙고 싶은 마음에 산으로 난 계단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와불을 드디어 눈앞에서 만납니다. 특이하게 이 불상은 혼자가 아닙니다. 키가 각각 10.3m, 12.7m인 부부처럼 보이는 2좌의 불상이 서로 머리를 기대고 누워 있어요.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는데 왜 갑자기 울컥했을까요.

운주사는 신라 승려 도선국사(827∼898)가 세웠다는 설과 운주가 세웠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 기원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정확한 자료는 없습니다. 다만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천상의 석공들을 불러 하루 만에 천불천탑(千佛天塔)을 쌓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보물 제798호 원형다층석탑.

1530년(중종 25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천불천탑과 석불 2좌가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석조감실이 있다고 기록돼 있지만 지금은 100여좌의 석불과 21기의 석탑이 절 곳곳에 흩어져 있을 뿐입니다. 이곳 석불·석탑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불상이나 탑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요. 떡시루를 중첩해놓은 것 같은 원구형석탑과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등 탑의 모습이 특이합니다. 또 여러 종류의 석불은 수십㎝의 소불에서 10m가 넘는 거불까지 산과 들에 흩어져 있습니다. 불상도 근엄한 모습이 아니라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 모양, 어색하고 불균형한 팔과 손, 기다란 귀와 코, 혹은 몸의 일부가 없거나 잘려나간 모습 등 우리의 모습보다 못하기까지 합니다.

운주사는 구름 운(雲)에 살 주(住) 자를 써서 ‘구름이 머무는 절’ 혹은 ‘구름 속에 머무는 절’ 등의 의미로 읽힙니다. 하지만 옮길 운(運)자에 배 주(舟)를 쓰기도 합니다. ‘배를 움직인다’는 뜻이지요.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석불의 배치가 배 형상을 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전남 영암 출신인 도선은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았다고 합니다. 동쪽인 영남은 산이 많아 무거운 데 반해 배의 중심인 호남 땅에는 산이 적어 배가 기울 것을 염려해 이곳에다 천불천탑을 하루 만에 도력으로 조성했다는 것이지요. 또 일설에는 별자리를 바탕으로 세웠다고도 합니다. 와불을 만나러 가는 길에 일곱개의 칠성바위가 있는데, 북두칠성 7개 별의 밝기에 비례해서 원형 돌을 다듬어 별자리와 동일하게 배치했다는 설입니다. 그렇게 북두칠성이 있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별자리와 운주사 불상·탑들의 배치가 닮았다는 거지요. 모두 가설이지만 배의 형상과 별자리를 연결한 상상은 왠지 그럴 듯합니다.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부처. 그리고 아내(?)와 함께 누워 있는 와불까지.

운주사가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왜일까요. 와보니 알 것 같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는 일이 아닌가요. 이제 깨달아요. ‘인생사(人生史) 운주사(運舟事)’라는 것을요. 나루에 닿지 않는 한, 힘들다고 바다 한복판에서 내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배가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얼른 반대편에 저만의 ‘천불천탑’을 지을 일이지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동서남북 방향을 알려주는 것은 오직 밝게 빛나는 별자리뿐. 별자리에 의존해 홀로 나아가야 하는 고독한 인생길에 운주사의 와불과 곳곳에서 만나는, 저처럼 못생기고 왜소하고 깨지고 헐벗은 부처들이 함께합니다. 아내와 함께 누운 와불은 ‘그래, 외롭지? 서로 사랑을 해’라고 속삭입니다.

작가 신영복 선생은 최고 형태의 관계를 ‘입장의 동일함’이라고 했습니다. 나와 같은 모습으로 함께 존재해주는 것. 우산을 씌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 사랑하라고 몸소 보여주는 것. Y, 제가 와불 앞에서 울컥한 이유입니다.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다시 나아가기 위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별자리를 올려다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이만 총총.

당신의 W가

글·사진=김도웅 기자 pachino8@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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