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붉은협곡 사이로 쏟아지는 옥빛水, 삼척 미인폭포

입력 : 2021-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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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틈 없이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보노라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폭포는 늘 새롭다. 청자처럼 아름다운 옥빛의 미인폭포 아래서 연인들이 흐르는 시절의 한때를 즐기고 있다. 김도웅 기자

[김도웅 기자의 감성여행] ⑫ 강원 삼척 미인폭포 

오봉산·백병산 사이 ‘통리협곡’의 상류 30여m 높이서 떨어지는 폭포수 장관

석회질 섞여 옥빛 띠는 물 색 신비로워

수많은 청혼 뿌리치며 세월 보낸 여인 짝 찾고나니 이미 백발노인 되었다는… 

폭포에 얽힌 비극적인 전설엔 울림이

 

친애하는 S에게


“함벽루는 처마 끝에서 흐르는 빗물이 황강으로 바로 떨어질 만큼 강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처마에서 떨어진 빗물이 강으로 바로 흐르는 정자는 전국에서 아마 이곳밖에 없을 겁니다.”

취재차 경남 합천의 함벽루에 들렀을 때 한 주민이 한 말입니다. 함벽루는 합천 황강 언저리에 위치한 정자로 합천 8경 중 제5경으로 꼽힙니다. 이곳에 앉아 바라보는 황강은 참으로 평화롭습니다. 시간을 잊은 듯 너무도 잔잔해 마치 흐르지 않는 호수 같아요. 잠시 함벽루에 앉아 황강을 바라봅니다.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참 아름다운 강이에요.

아, 이번 여행지는 함벽루가 아니라 강원 삼척시 도계읍에 위치한 미인폭포입니다. 태백시 통동에서 삼척시 가곡면으로 넘어가는 오봉산과 백병산 사이에 있는 아름다운 폭포지요. 통동 통리는 해발고도 700∼800m로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며 ‘구름이 창문 너머로 지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높은 곳입니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폭포 쪽으로 내려가려니 입구에 관리인이 있네요. 입장료가 1000원입니다. 가는 중간에 ‘여래사’라는 조그만 절이 있어 이곳을 관리하는 모양입니다. 입장료를 내니 오후 4시30분까지는 다시 돌아와야 한답니다. 한시간 반 남짓 남았네요. 시간이 촉박해 내일 올까 잠시 망설입니다. 사실 이곳에 오면서 비가 오기를 바랐지만 결국 오지 않았거든요. 비가 오면 수량이 많아져 훨씬 더 멋진 장면을 당신께 보여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비가 오지 않아 실망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내일 다시 오겠다고 했더니 입장료를 돌려주며 예상치 못한 답변을 합니다. “비가 오면 폐쇄합니다.” 내려가는 길이 경사가 급하고 미끄럽기 때문이랍니다. 얼른 입장료를 다시 내며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바람대로 비가 왔으면 들어가지도 못할 뻔했네요.

계단을 내려가니 여래사가 나옵니다. 이곳부터 폭포까지는 300여m에 불과하지만 길은 미끄럽고 경사가 꽤 급한 편이었어요. 15분가량 내려가는데 숲속인 데다 폭포까지 가까이 있어 서늘한 기운마저 감돕니다. 한여름 더위를 피하기에 최적일 것 같아요. 폭포에 다다르니 평일인데도 이미 많은 사람이 와서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통리협곡의 상류에 해당됩니다. 협곡의 길이는 10㎞, 협곡 암벽의 높이는 270m에 달합니다. 흔히 이곳을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협곡과 비교하지만 총연장 450㎞에 달하는 그곳과는 규모 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지요. 비교하는 이유는 형성 과정이나 지질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폭포 옆으로 길게 뻗은 협곡에는 바위 면에 가로로 줄이 그어져 있는 붉은색의 퇴적암을 볼 수 있습니다. 퇴적암 중에서도 자갈이 많이 포함된 것을 역암이라고 하는데 둥근 자갈이 많은 것은 자갈이 둥글어질 때까지 수도 없이 부딪쳐서입니다. 협곡이 붉은 것은 공룡이 살던 시절부터 쌓인 퇴적암이 공기에 노출돼 산화됐기 때문이에요.

30여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장관입니다. 위를 바라보면 물의 낙하 지점이 둥글게 움푹 파여 마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아래 소에 고인 물은 청자처럼 신비한 옥색입니다. 저런 물 색깔은 처음 봅니다. 석회 성분이 포함돼 그렇다네요. 한여름 더위도 잊은 채 사람들은 차가운 계곡에 발을 담그거나 폭포 아래서 사진을 찍으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곳 폭포에는 미인에 관한 여러 전설이 내려옵니다. 그중 하나를 들려드릴게요.

예전에 아름다운 여인이 근처에 살았다고 합니다. 수많은 남자들이 청혼했지만 어떤 남자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수십년이 흘렀어요. 어느 날 폭포 아래 그토록 자신이 그리던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곧장 달려가 애타게 당신을 기다렸노라고 고백했지요. 그러자 남자가 그러더랍니다. “할머니, 왜 이러세요. 거울도 안 보세요?”

미인은 그제야 계곡에 비친 자신의 늙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폭포에 몸을 던졌답니다. 세월은 끝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그녀는 끝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무는 폭포수를 보며 자신에게도 세월이 흐르지 않는다고 느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포수가 제게 말을 겁니다.

나를 기억하겠니? 못하는구나. 마치 다음 생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도 찾아와 놓지 않겠다는 허튼 사랑의 맹세처럼, 너도 내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니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나는 물이야. 네가 함벽루에 앉아 지켜보던 그 강이야. 어느 산속 졸졸 흐르던 그 도랑물이야. 어느 새벽 낮은 산기슭에 걸려 있던 그 운무야. 더운 여름 네 목을 축이고 흐르는 땀을 씻어주던 바로 그 계곡물이야. 너는 내가 이렇듯 모습을 바꿔 폭포로 떨어지니 알아보지 못할 뿐, 나는 네가 어디서나 만났던 그 물이야.

폭포수를 보러 온 거지?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내게 사랑한다고 속삭이지 마. 네가 보고 있는 폭포는 내가 아니야. 이미 나는 바닥으로 떨어져 저만치 흐르는 샛강이 되었어. 아름다운 모습에 속지 말고 그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도 나를 알아봐줘. 네가 사랑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내 허상일 뿐.

흐르는 강을 만나거든 조용히 물어봐. 이야기해줄 거야.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바위를 만나 퍼렇게 멍들어 길을 돌리기도 했으며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 무거운 모래를 퍼 나르기도 했다고. 나는 아직도 흐르고 있으며 내 앞에 놓일 어떤 모습의 생애도 알지 못해.

폭포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툭툭 떨어집니다. 여기저기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은 급하게 자리를 떠날 채비를 합니다. 저도 엉겁결에 장비를 챙기고 수건으로 카메라를 감싼 채 되돌아 나왔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미 제 몸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씬 젖어 있었습니다.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아! 불현듯 조금 전 미인폭포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도 나를 알아봐줘.’ 그래요. 저를 적신 이 비는 미인폭포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비가 아니라 폭포 아래서 그 폭포수를 맞았던 겁니다. S, 당신은 또 어떤 모습으로 제 앞에 나타나시렵니까. 이만 총총.


당신의 W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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