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등록문화재 여행] 지나간 역사라지만 여전히 아프고 아련한 것을…

입력 : 202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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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인 춘포역. 이젠 기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폐역이다.

등록문화재 보고(寶庫) 전북 익산

일제시대 비옥한 토지로 명성 농업 관련 시설 많이 남아

조선 3대 명문고 ‘이리농림’ 일본인 지주들이 설립한 ‘익옥수리조합’ 원형 그대로

한때 상권 번성했던 평동로 주단거리 형성돼 명맥 유지

쌀 수탈에 활용된 ‘춘포역’ 아픈 역사 품고 지금은 폐역  

 

일제의 한반도 수탈이 한창이던 시기, 일본인들이 ‘지미(地味)가 뛰어나다’고 부르던 도시가 있었다. 강토의 아름다움(美) 대신 비옥한 땅에서 나오는 쌀의 맛(味) 때문에 일본인들은 ‘이리’, 즉 오늘날의 전북 익산에 군침을 흘렸다.

당시 전국 곡창지대엔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농장과 거기서 나온 쌀을 수탈할 철도가 놓였고, 수로 및 각종 농업 시설이 건설됐다. 배 부른 게 소원인 시대였으니 농업에 투자금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등록문화재 중에는 농업 관련 시설이 많은데, 익산은 농업 관련 등록문화재들을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우선, 1922년 익산엔 농업 역군을 키우기 위한 전문학교가 최초로 세워졌다. 수원농림·진주농림과 함께 조선 3대 명문으로 불리던 이리농림고등학교엔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모여들었는데, 국민 조미료 ‘미원’을 만든 대상그룹의 임대홍 회장,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 고건 전 총리의 아버지기도 한 고홍균 박사 등 한국 근현대사를 이끈 인물들이 이곳 출신이다. 참고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익산 부근을 지나가면서 “내가 이리농림이 안돼 대구사범을 갔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화려했던 이리농림학교의 흔적은 현재 전북대학교 익산캠퍼스 내에 남아 있다. 등록문화재 제178호로 지정된 ‘이리농림학교 축산과 교사’와 제758호로 지정된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 건물이 바로 그것. 특히 1932년 건립돼 학생들이 양잠 실습을 하던 축산과 교사는 현재 학생들의 동아리실로 활용되고 있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폐쇄됐지만, 댄스 동아리의 거울 몇개를 제외하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학교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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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익옥수리조합의 사무소 건물. 영화 ‘동주’ 촬영지로 알려졌다.

쌀 수탈을 위한 일제 산미증식계획 중 핵심사업이던 수리조합 창설의 역사도 익산에 남아 있다. 등록문화재 제181호로 지정된 ‘익옥수리조합 사무소와 창고’ 건물로, 현재는 익산왕도미래유산센터로 쓰이고 있으며 최근 영화 ‘동주’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수리조합이란 관개용 저수지나 제방 등을 조성하기 위해 토지 소유자들이 결성한 조합을 일컫는데, 대농장을 소유한 일본인 지주들은 수리조합을 통해 소작농 조선인들에게 과도한 공사비와 물값을 전가했다. 원래 30% 수준이던 소작료는 수리조합 결성 이후 50%까지 인상됐고, 1924년 발생한 오랜 가뭄에도 농민들에게 물을 주지 않아 농민들이 수리조합 제방을 파괴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오늘날에야 그저 단정한 붉은 벽돌 건물로 보일 뿐이지만, 그때의 사람들은 이 건물을 보며 ‘목 타는’ 증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리조합 측도 스스로 악랄한 행태를 알긴 했던지, 조선 민중의 울분이 폭발할 것에 대비해 지하 터널을 파 비상탈출구도 만들어놨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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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세워진 구 신신백화점 건물. 현재 1층에는 주단집, 2층엔 다방이 영업 중이다.

그래도 돈이 있는 곳에 상권이 번화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수리조합 건물에서 멀지 않은 평동로엔 주단거리가 형성됐다. 현재의 ‘이사도라 주단(등록문화재 제763-4호)’ 자리에서 기업 쌍방울이 ‘형제섬유’로 사업을 시작했고, ‘신신백화점(등록문화재 제763-2호)’을 비롯한 다양한 소매점이 행인들을 유혹했다. 특히 신신백화점은 1960년대 건립 당시 건물 모습이 꽤 남아 있는 데다 2층엔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명금다방이 운영 중이니 생강차 한잔 맛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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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문을 연 신신백화점 건물 2층에서 영업 중인 명금다방. 그 시절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명금다방에서 나와 차로 10분 거리에는 ‘춘포역(등록문화재 제210호)’이 있다. 국내에 현존하는 최고(最古) 역사로, 지금은 폐역이지만 당시엔 호소카와(細川) 가문의 대농장이 생산한 쌀을 일본 열도로 실어 나르느라 바쁘기 그지없었다.

농장주 호소카와 모리타츠는 일년에 한번쯤 농장에 들러 자신의 재산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본국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그의 손주가 바로 1993년부터 79대 일본총리를 역임한 호소카와 모리히로다.

“태평양 전쟁은 침략전쟁이며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유감을 표한 양심적 정치인으로 유명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는 자신이 누려온 가문의 부(副)가 사실은 치부(恥部)였음을 역사 앞에서 고백했다.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로 인정한 한 개인의 용기가 언제쯤 평화의 결실을 얻을지 문득 궁금해지는 날이다.

익산=이연경 기자 world@nongmin.com, 사진=김병진 기자 fotokim@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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