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꽃분홍옷 걸친 황매산 오르니 탄성 자아내는 산철쭉 무리

입력 : 2021-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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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웅 기자의 감성여행] ⑦ 경남 합천 황매산 산철쭉 군락지

바래봉·소백산과 함께 3대 철쭉 군락 5월 초·중순 만개 … 세곳중 제일 빨라

철쭉과 색·모양·서식지 다른 산철쭉 진한 분홍색에 뾰족하고 긴 타원형 잎 

물가에 자라 물철쭉·수달래라 하기도

 

그리운 B에게


‘나는 말 많은 평론가가 참 싫다.’

언젠가 네게 썼던 편지를 기억하는지. 주변의 과도한 관심과 평가가 부담이던 질풍노도의 시절이었으니 심혈을 기울인 작가의 작품을 두고 자신들만의 잣대로 재단해버리는 평론가들이 못마땅했을 수밖에. 한참이나 오랜 세월을 지나 도착한 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때 네 편지를 받은 뒤 나는 ‘침묵’이라는 겉옷을 하나 더 걸치게 됐다.’

여린 봄날, 수줍게 돋아나던 연둣빛 이파리들이 짙푸른 초록으로 산과 들을 뒤덮은 요즈음, 경남 합천군 황매산에 산철쭉을 보러 다녀왔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해마다 오월 초에 열리던 황매산철쭉제는 두해째 취소됐대도 따스한 햇살과 바람피우는 꽃들의 연애질이야 멈출 리 있겠니. 황매산 자락 산철쭉 군락의 규모는 시선을 압도할 정도더구나. 제1오토캠핑장에 주차하고 제1철쭉 군락지 쪽으로 올라갔다. 길을 오르는 사람들 중엔 카메라를 들지 않은 사람이 없더구나. 꽤 넓은 산 능선에 오르자 사람 키 높이만 한 산철쭉들이 벽을 이루고 있는 곳곳에는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데크들이 있었어. 올라섰더니 나도 모르게 ‘와∼’ 소리가 탄식처럼 나더구나. 여기저기서 들리는 탄성과 셔터 소리. 아름다움 앞에서의 기록 욕망은 본능인가봐. 우리가 셔터를 끊는 순간은 모두 ‘아’ 하는 순간이거든.

군락을 이룬 산철쭉 사이로 난 길을 헤집고 다녔어. 짙은 홍자색의 꽃 수백송이가 핀 어른 키 높이의 꽃나무 사이로 난 골목길. 평생을 짙은 회백색의 우중충한 도시 골목만 헤매고 다녔던 마음에 위로의 빛이 쏟아졌어. ‘꽃 골목길!’ 하고 부르니 마치 B, 네 이름을 부른 듯 설레더구나. 언젠가처럼 네가 저 굽어지는 꽃 골목길 모퉁이에 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꽃 골목길을 휘파람 불며 걷다보니 제2철쭉 군락지다.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 이곳은 꽃봉오리가 아직도 작네. 같은 곳이라도 꽃은 일시에 피고 지지 않아. 그래서 아름다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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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산철쭉 군락에 가면 도시 골목 대신 화사한 ‘꽃 골목’을 거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우리나라 3대 철쭉 군락지는 이곳과 지리산 바래봉, 소백산이라고 해. 철쭉 만개 시기는 황매산은 5월 초·중순, 지리산 바래봉은 5월 중·하순, 소백산은 5월말에서 6월초로 시기가 조금씩 달라. 황매산이 가장 빠르지. 지리적 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산철쭉이 조금 먼저 펴서 그래. 황매산에 핀 건 ‘산철쭉’이고, 나머지 두곳은 ‘철쭉’이야.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사실 둘은 차이가 있어. 같은 진달랫과지만 키나 꽃 색깔, 이파리 모양 등이 다르거든. 국어사전에도 둘은 구분돼 있어. 철쭉은 키가 2∼5m에 달하며 꽃은 연한 분홍색이고 잎은 달걀 모양이지만 산철쭉은 키가 1∼2m에 꽃은 진한 분홍색·홍자색이고 잎은 양 끝이 뾰족하게 생겨 좁고 긴 타원형이야. 집 주변 공원이나 화단에서 보는 다양한 색깔의 꽃은 영산홍이 대부분이고. 서식지도 조금씩 달라. 우리나라 전역에서 잘 자라는 것은 비슷하지만 좋아하는 장소가 다르거든. 철쭉은 주로 낮은 산에서 높은 산(100∼1800m)까지의 서늘한 평원, 응달진 비탈길에서 자라지만 산철쭉은 물을 좋아해 계곡이나 물가에서도 잘 자라니 ‘물철쭉’ ‘수달래’라고 부르기도 해. 경북 청송 주왕산 주방천계곡에서 유명한 수달래도 산철쭉인 거지. 산철쭉은 군락을 이루지만 철쭉은 넓은 곳에 듬성듬성 피어 있는 게 보통이야.

꽃도 사람과 같아서 여럿이 모여 있는 게 덜 외롭겠지. 황매산 철쭉이 하나둘이었으면 사람들이 찾았을까. 군락으로 어깨와 어깨를 겯고 서로를 감싸 안을 때 아름다운 게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꽃들도 있어. 여럿이 모여 ‘마을’을 이룬 꽃들이 있는가 하면 멀찌감치 떨어져 하나나 둘, 서넛이 모이기도 해. 저마다의 개성대로 사는 거지. 사람들은 꽃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지 않고 꽃 골목길로만 다녀. 배려와 존중. 이 간단한 원리가 세상 사는 데 그대로 적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곳엔 꽃 핀 나무들만 있는 게 아니야. 이미 곳곳에 짙푸른 잎을 일렁이는 나무들도 숲을 이루고 있어. 누구는 더디 가고 누구는 빨리 가고, 누구는 꽃을 피우고 누구는 잎을 피우고, 누구는 무리를 짓고 누구는 저만치 나앉고. 서로 다른 어떤 것도 흉이 되지 않는 세상. 우리도 꽃나무들처럼 저마다의 속도를 인정하며 각자의 시간으로 세상을 살 수는 없을까.

B, 늦은 네 답장처럼 내가 느낀 꽃의 감흥은 ‘침묵’이라는 겉옷 속에 묻어두려 해. 내 짧은 세치 혀로 어떻게 저 아름다움을 재단하겠니. 꽃들의 향연, 저 낯 뜨거운 연애의 간지러움을 표현할 수 없어 감동은 감동으로 아껴둘게. 다만 내가 다녀간 길, 그저 책을 읽다 아름다운 문장 아래 밑줄 치듯 꽃들과 꽃들 사이 밑줄만 그어놓을게. 혹여 네가 다녀간다면 읽을 수 있도록. 우리 살면서 무릎을 치는 순간이 있다면 말보다 밑줄 치며 살기로 하자. 네가 먼저든 내가 먼저든 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에 지날 수밖에 없더라도 B, 우리는 그리움보다 서로가 그어놓은 세상의 밑줄을 찾으며 살기로 하자. 그 밑줄이 곧 우리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 그토록 듣고 싶은 말일 테니까.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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