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여름보다 더 뜨겁게 당신을 기다리는 부산의 봄

입력 : 2021-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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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절벽에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 너머로 보이는 승두말과 오륙도. 승두말은 반도의 모양이 말 안장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도웅 기자의 감성여행] ⑥ 부산 오륙도

승두말서 일직선으로 솟아오른 6개 섬 ‘오륙도’

해안절벽 위 유리다리 놓은 스카이워크 풍경 장관

30분가량 섬 한바퀴 도는 유람…낚시꾼에 인기

‘해맞이공원~동생말’ 갈맷길 새·파도·바람소리 황홀

 

친애하는 J에게


어느 해 몹시 더운 여름날 오후였습니다.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네거리, 편도 6차선 도로의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따가운 햇볕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 옆으로 족히 20㎏은 돼 보이는 배낭을 멘 노랑머리 외국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쳤군, 이 더위에. 뭐 볼 게 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신호등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을 여행하려고 벼르고 벼르다가 이제야 온 거구나. 지구 반대편에서 저 무거운 짐을 싸서 이곳까지 날아와 나와 함께 ‘여기’ 서 있는 거구나. 그러니 덥다고, 비 온다고 숙소에 처박혀 있을 수는 없지. 내겐 점심식사를 마치고 몇발자국만 떼면 되는 이곳이 저들에겐 ‘지구 반대편 미지의 여행지’가 되는구나. 갑자기 건널목 저편의 풍경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서울 여행은 그날로부터, 아니 정확히 그 건널목 앞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부산 오륙도를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이곳은 많이 변해 있었어요. 높다란 아파트 수십동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그 앞으로는 커다란 연못을 품은 자연정원이 멋지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정원 쪽에는 수선화가, 바닷가 절벽 쪽으로는 유채가 만발해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10여년 산 적이 있습니다. 거기 살 때 한두번 다녀가긴 했었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나 봅니다. 오륙도가 저렇게 내륙에 가까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오륙도는 승두말(바다를 향해 생긴 반도)에서 일직선으로 솟아 있는 6개의 섬을 말합니다. 승두말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방패섬부터 솔섬·수리섬·송곳섬·굴섬·등대섬이 순서대로 놓여 있습니다. 1740년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 ‘산천조(山川條)’에 동쪽(달맞이고개)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로 보이고 서쪽(영도)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로 보인다는 기록이 있는데 거기서 유래했다고 하네요. 갯바위로 이뤄진 오륙도는 12만년 전에는 하나의 산 능선이었지만 오랜 세월 거센 파도의 침식작용과 세차례의 융기운동으로 분리된 것입니다. 2013년 10월 이곳에 스카이워크가 생겼습니다. 35m 해안절벽 위에 철제 빔을 설치하고 유리판 24개를 말발굽형으로 이어놓은 15m 길이의 유리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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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바라본 승두말과 오륙도의 전경. 멀리 해운대와 달맞이고개가 보인다.

오륙도 유람도 할 수 있습니다. 선착장에서 유도선을 타고 섬을 한바퀴 돌고 오는 거지요. 30분가량 걸립니다. 낚시꾼들은 원하는 섬에 내려 낚시를 하다가 마지막 배를 타고 나오기도 해요.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해파랑길과 남파랑길 때문입니다. 해파랑길은 이곳을 기점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전체 길이 770㎞ 10개 구간이고, 남파랑길은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횡단길로 전체 길이 1470㎞ 90개 코스입니다.

부산시가 만든 코스도 있습니다. 갈맷길이지요. 해안길·강변길·숲길·도심길 등 9개 코스에 전체 길이 263.8㎞로 조성돼 있습니다. 안내표지에는 이곳이 ‘남해안과 동해안을 가르는 기준점’이라고 설명돼 있습니다. 오륙도 오른쪽으로는 동해, 왼쪽으로는 남해라는 거지요. 이 기준에 의하면 광안리와 해운대는 모두 동해입니다. 부산 살 때 친구들끼리 이런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해운대는 광안리보다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어요. 그래서 동해가 보고 싶으면 “동해로 가자” 하며 해운대로 가고, 남해가 보고 싶으면 “남해로 가자” 해서 광안리로 갔었지요. 그때는 정확한 행정구역을 알 수 없을 때였으니 그냥 심리적 위안이었던 겁니다. 오빠가 하나뿐인데 “큰오빠”라고 불렀다가 “작은오빠”라고도 불렀던 제 동생처럼 말이지요.

행정구역은 국내외 혹은 국내라도 기관에 따라 기준이 서로 다릅니다. 1997년 해양수산부 발표에 따르면 울산 태화강 하구와 일본 시마네현 이즈모시(市)를 이은 직선이 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했지만 이미 1992년 국립해양조사원 <수로업무편람>에서는 오륙도와 승두말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가장 최근 발표된 기준은 2012년 10월 국립해양조사원에서 발간한 <우리나라 해양영토>라는 책자입니다. 여기서는 해운대 달맞이고개 해월정 앞바다를 동해와 남해의 경계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담당자는 “일반적으로 부르는 동해·남해·황해의 경계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드물고, 부처별로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으니 이것은 어느 기관의 행정적 기준일 뿐 제 마음속의 기준은 아니지요. 여전히 저에게 해운대는 동해, 광안리는 남해입니다.

갈맷길을 걸었습니다.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동생말까지 4.7㎞의 이기대해안산책로 구간입니다. 바닷길을 따라 새소리와 파도 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걸었습니다. 바다와 해운대 달맞이고개, 광안리 도심이 보입니다. 멀리서 보는 시내 풍경은 처음입니다. 저 속에 살 때는 부산 곳곳이 이렇게 아름다운 여행지인지 몰랐습니다. 참, 서울 여행은 어떻게 됐냐고요? 그날 건널목에서 시작된 서울 여행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6년간이나 계속됐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더워도 점심시간의 여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때로 귀찮을 땐 건널목에 무거운 짐을 들고 서 있던 여행자를 떠올렸어요. ‘지구 반대편’에서 왔는데 비가 온다고 어떻게 나가지 않을 수 있나요. 그렇게 6년간 사대문 안 도성을 여행했지요. 매일 보던 모든 것이 새로웠어요. 이전까지는 보기는 보았으되 자세히 보지 않았던 거지요.

어디에 계시든 J, 당신이 계신 곳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에겐 미지의 여행지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아름다운 4월, 어디든 가야겠다면 건널목에 섰을 때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여행자를 떠올리십시오. 분명히 건널목 맞은편 간판부터 달라 보이실 겁니다. 당신을 떠나서야 당신을 떠올리고, 부산을 떠나서야 부산이 보이는 저의 우를 부디 당신은 범하지 않으시길. 이만 총총.


당신의 W가


글·사진=김도웅 기자 pachino8@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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