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가치] 소나무숲은 마을을 보듬고 사람은 숲을 지키다

입력 : 2021-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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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하회마을에는 낙동강 가까운 곳에 마을숲의 원형이 잘 보존된 ‘만송정숲’이 있다. 이 숲은 마을주민과 관광객들이 산책하거나 낙동강의 풍광을 감상하기에 좋다. 안동=김병진 기자

안동 ‘만송정숲’에 가보니 

조선 선조 때 겸암 류운룡이 조성

마을숲 가꾼 덕분에 큰 홍수 없고 여름엔 시원 겨울엔 찬바람 막아줘

수백년간 마을 수호해준 일등공신

주민들도 지속적으로 나무 심으며 만송정숲 보호하는 파수꾼 역할

 

‘아낌없이 주는 나무’.

유명한 동화 제목이지만 나무의 쓸모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무는 토양이 빗물과 바람에 쓸려가는 것을 막고 생태계를 보전하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사람에게는 목재와 과실을 제공하고 심신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식목일을 맞아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 조성된 만송정숲을 찾았다. 마을을 지키는 나무, 나무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무의 쓸모를 생각해본다.


“소나무가 80년 이상 살면 가지를 내린다고 하죠. 이렇게 빼어난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가 수백그루 자라고 있어요. 마을을 보듬어주는 어머니와 같은 숲이죠.”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473호로 지정된 만송정숲이다. 조선 선조 때 서애 류성룡의 친형인 겸암 류운룡(1539∼1601년)이 1만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정자를 세웠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으며 자연스레 생긴 모래 퇴적층에 들어선 숲에는 천태만상의 곡선미과 직선미를 그리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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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맞은편 부용대에서 내려다본 마을 전경. 마을과 강 사이에 만송정숲이 기다랗게 조성돼 있다.

“미세먼지가 많을 때 공기를 정화해주지, 여름에 그늘 주지, 겨울에는 찬 바람을 막아주니 정말 고마운 존재예요. 만송정숲은 다른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 같아서 좋아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마을과 강을 이어주는 그런 통로요.”

매일같이 숲에서 산책을 한다는 마을주민 류주한씨(81)의 이야기다. 이처럼 만송정숲은 수백년 동안 마을을 지키며 마을숲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왔다. 과거엔 대부분의 마을에 이런 마을숲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선조들이 마을 가까이에 숲을 가꾼 이유를 알려면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비보(裨補)’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비보란 ‘부족한 것을 채운다’는 뜻이다. 강변이나 하천변에 조성돼 홍수를 막는 호안림,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물고기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어부림, 마을의 지형적인 결함을 보완해주는 보해림 등을 들 수 있다.

만송정숲은 보해림의 성격에 가깝다. 숲 맞은편 깎아지른 절벽에 날 선 바위로 가득한 부용대를 바라보면 숲이 왜 생겨났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류한욱 안동하회마을보존회 이사장은 “부용대의 기가 드세고 마을 북서쪽의 산이 낮아 땅의 기운이 흩어질 수 있다”면서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과 좋은 기운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숲을 조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태자 하회마을 해설사는 “마을이 낙동강으로 빙 둘러싸여 있어 치수에 취약할 수 있는데 마을숲 덕분인지 수백년간 마을에 큰 홍수가 없었다”면서 “겨울에는 찬 기운의 북서풍을 막아줘 방풍림의 역할까지 도맡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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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보호수. 수령이 400여년으로 추정된다.

하천을 따라 길게 늘어진 숲의 면적은 43만6430㎡(13만2020평)로 한바퀴를 도는 데 10분이면 넉넉하다. 최근 숲의 상태를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1000여그루의 소나무가 있는데 한아름 정도의 굵은 나무가 250여그루, 반아름 정도의 나무가 50여그루 심겨 있다. 수령은 100∼150년이다. 그 외에 최근 주민들이 심은 어린 나무들도 있다.

이렇듯 숲이 제 모습을 지켜온 데는 마을주민들의 역할이 컸다. 사람과 숲이 끊임없이 소통해온 것이다. 사람이 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마을을 보호하고, 그것에 보답하고자 사람이 숲을 지키는 파수꾼이 된다.

류주한씨는 “과거 다양한 이유로 나무가 사라지기도 했으나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나무를 심으면서 숲을 지켜왔다”며 “지금도 안동하회마을보존회가 중심이 돼 숲 바깥쪽에 어린 나무를 심어 가꾸고 있다”고 전했다. 일제강점기 땐 숲의 명맥이 끊길 뻔한 적도 있었다. 또 다른 주민 류시주씨(79)의 이야기다.

“독립운동 하는 이들이 숲에 숨을 수 있다며 일제 순사들이 몇번이고 들이닥쳐 나무를 다 베어버리려고 했단 말이지. 그런데 그때마다 류씨 집성촌 사람들이 똘똘 뭉쳐 나무 한그루라도 손을 대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거예요. 기고만장한 순사들이라도 중과부적이었던 셈이죠.”

과거 조상들은 매년 음력 7월16일 밤만 되면 낙동강에서 ‘선유줄불놀이’를 즐겼다. 부용대와 숲 사이에 줄을 연결해 불을 붙인 뒤, 불꽃이 어우러진 이색적인 야경을 즐기며 시를 짓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수백년 전 겸암은 야심한 밤 자신이 가꾼 소나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가 남긴 시 속의 숲은 한폭의 수묵화다.

‘일찍이 만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더니/세월이 지나면서 울창한 숲을 이루었네. 고요한 밤 솔바람 소리 아련히 들리고/널따란 강에 푸른 그림자 드리웠네.’

안동=이문수 기자 leemoonsoo@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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