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나도 한때 바닥 좀 쓸었지” “지금 들어도 진짜 신나는데요”

입력 : 2021-03-29 00:00 수정 : 2021-03-29 23:38
근대 생활사 체험박물관인 전북 ‘전주난장’의 디스코텍에서 이연경 기자(왼쪽)와 김도웅 기자가 그림 속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따라 세대 통 합의 춤판을 벌이고 있다.

선후배 세대공감여행 전북 ‘전주난장’ 

구옥 마을에 조성된 근현대박물관 과거 공간 생생 재현 … 물품도 전시 

지금은 보기 힘든 ‘크로바’ 책가방 잡지 ‘뉴히트송’ 보며 추억 속으로

화려한 조명이 켜진 고고장 입성 ‘할렘 디자이어’ ‘타잔보이’ 맞춰

선후배 하나 돼 그때 그 시절로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의 일본어 발음) 없이는 못 마십니다 뿜빠라뿜빠. 이 유명한 유행어를 모르나? 어?! 서영춘을 모른다꼬?!”

아…. 한때 날렸던 유행어인 것 같다는 감은 오는데 당최 이해를 못하는 후배는 선배 입에서 속사포처럼 뿜어져나오는 ‘뿜빠라뿜빠’가 당혹스럽기만 하다. 애당초 사이다가 인천 앞바다에 뜨길 왜 뜨는 건가? 웃어야 하는데 웃을 수가 없으니 후배는 그저 시선을 피하는 수밖에. 2021년 현재 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국민학교 한반 정원이 60명이 넘었던 2차 베이비붐세대 김도웅 기자와 초등학교를 다닌 밀레니얼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 이연경 기자. 우리는 과연 20년 가까운 시간의 간격을 메울 수 있을까. ‘레트로(Retro·복고)’를 넘어 ‘뉴트로(Newtro·새로운 복고)’가 확산하는 트렌드에 맞춰 1970∼1980년대 생활을 체험해볼 수 있는 전북 전주의 ‘전주난장’으로 두 기자가 함께 ‘세대여행’을 떠나봤다.


전주난장은 전주한옥마을 근처의 50∼60년 된 구옥 열채를 이어 붙여 조성한 공간에서 조문규 사장(63)이 평생 모은 근현대 골동품을 관람·체험해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크게 학창시절·엄마시절·군대시절 등으로 나뉘며 청춘·사랑·놀이문화 및 화개장터 테마의 전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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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웅 기자가 풍금을 연주하고 있다.


학창시절을 테마로 한 공간에 들어서자 김 선배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리 와봐라” “이기 몬지 아나?” 하고 후배를 소환해 추억을 공유했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푹푹 나는 페달을 꾹꾹 밟으며 신나게 풍금을 연주하던 그는 책가방이 눈에 띄자 또다시 감탄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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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유행했던 ‘크로바’ ‘황태자’ ‘쓰리패스’ 책가방과 운동회 때 쓰던 청군·백군 모자.

“이야, 이거 <크로바> 아이가?”

그의 설명에 따르면 <크로바> <황태자> <쓰리쎄븐>은 당대 책가방 브랜드의 삼대장(三大將).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에 빨간색·남색의 책가방들이 그의 향수를 자극했는데, 특히 <크로바>가 제일 알아줬다고. 어린 시절 책가방의 추억은 중·고교 시절 최고의 패션 브랜드였던 <나이키>와 <아디다스> 이야기로 넘어갔다. “아 그때는 밤하늘의 초승달이 <나이키>로 보였다 아이가.”

9.9㎡(3평)도 안되는 방에 웬만한 노트북 화면보다 작은 흑백 텔레비전이 놓여 있는 모습에 선배는 또 목소리가 커졌다. “이 손바닥만 한 TV를 놓고도 앞에서 보면 ‘눈 베린다’고 어른들이 난리였지. 채널은 또 어찌나 안 잡히던지, 아버지가 지붕에 올라가서 안테나를 이쪽저쪽 비틀고선 식구들한테 ‘보이나?’ 외치곤 했다 아이가.”

방 한쪽엔 누렇게 변한 <뉴히트송> <대중가요>란 잡지가 놓여 있었다. 무슨 책인가 싶어 눈여겨보는데 선배의 눈이 추억에 젖어 가느스름해졌다. 가수 이용과 이선희가 최고의 스타였던 시절, <뉴히트송> 속 악보를 뒤적이며 통기타를 두드린 청년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음악다방 이야기도 이어졌다. 음악다방의 백미는 바로 신청곡 코너로, 디제이(DJ)에게 신청곡이 빗발치니 결국 ‘꽂히는’ 멘트를 써내는 게 관건이었단다. 물론 <농민신문>의 ‘감성시인’으로 불리는 선배는 신청곡의 단골 주인공이었다고(본인께서 말씀하셨다).

‘화려한 조명이 우리를 감싸는’ 디스코텍(고고장)에 들어서자, 비트에 맞춰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옛날 춤이라도 따라해볼까 싶어 도전한 선후배 세대 화합 댄스의 첫곡은 1980∼1990년대 최고의 히트곡 ‘할렘 디자이어(Harlem Desire)’. 당시 이 노래를 틀지 않는 디스코텍이 없었을 정도였단다. 또 다른 그 시절 히트곡 ‘타잔 보이(Tarzan Boy)’가 댄스플로어를 쿵쿵 울렸다. 김선배는 후렴구인 “워어워어워우워어↗오↘워워”를 한참 흥얼거렸다. 중독성 있는 후렴구를 슬쩍슬쩍 따라 불러보니 은근 입에 착착 붙는다. 옛날 노래여도 좋은 건 좋은 법이다.

걷다보니 요즘은 희귀해진 공중전화도 보였다. “니 그거 아나? 전국의 공중전화는 다 슬픈 얘기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젊은 연인들은 동전이 딸깍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전화통을 붙잡고 “사랑해”를 속삭였다는 설명이다.

취재가 끝나고 노포가 즐비한 막걸리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몇십년 된 노포의 벽면엔 온갖 낙서가 빼곡했다. ‘지영&재환 영원하자’ ‘응 아니야∼’. 저 많은 연인들의 사연은 지금쯤 어찌 됐으려나. 여기를 거쳐간 사람들에겐 이곳에서의 여행조차도 이미 추억이 됐을 것이다.

“낸들 내 세대가 박물관 안으로 들어갈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나. 니는 안 그럴 거 같제? 후배 기자 붙들고 떠들게 될 날이 곧 올 끼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는 건 인간사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언젠가는 내가 지금 걷는 거리도 역사가 되고, 나도 그렇게 ‘아짐(아주머니의 전라도 방언)’이 될 테다. 선배가 ‘아재’가 돼버린 것처럼.

전주=이연경 기자 , 사진=김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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