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굴욕의 역사 뒤로한 채…민초의 쉼표로 태어났네

입력 : 2018-12-07 00:00 수정 : 2018-12-09 00:05
치욕의 역사 현장이기도 한 남한산성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인기 산행 장소가 됐다. 한 연인이 성곽길을 걷고 있다.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경기 남한산성

인조가 병자호란 때 피난했다가 버텨내지 못하고 청에 굴복했던

비운의 역사 그대로 보존된 곳

행궁 중 유일하게 종묘 갖추고 군사 지휘하는 누각 수어장대 있어

성곽길, 적당히 오르내림 이어져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어 인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아름다운 외모도, 드높은 명성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다. 이 진리는 문화유산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는다. 치욕적인 역사의 현장이었지만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또한 접근성 좋은 산행 장소로 많은 사랑을 받는 남한산성도 그렇다.



난공불락(難攻不落) 천혜의 요새인 남한산성. 하지만 애석하게도 남한산성하면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인조가 피난한 곳이란 사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약 400년 전 겨울,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며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경기 광주·성남·하남에 걸쳐 있는 남한산성은 동서남북 사방에 들머리가 있어 어디로 가든 길이 된다. 2012년 복원된 행궁을 시작으로 수어장대를 거쳐 서문을 지나는 코스로 산행을 계획하고 산성로터리에서 첫발을 뗐다.

가장 먼저 만난 행궁의 첫인상은 소박했다. 임금이 도성을 떠났을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라기에 규모가 꽤 클 것이란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임금의 침전이 자리한 내행전 중앙마루에는 해와 달이 그려진 병풍인 일월오봉병, 어좌 같은 소품이 놓여 있었다. 수수한 광경에 병자호란이란 역사가 덧씌워지니 괜히 더 쓸쓸해 보였다.

이곳 행궁의 가장 깊은 곳엔 다른 행궁에선 볼 수 없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좌전이다. 조선시대 20여개의 행궁 중 종묘를 갖춘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남한산성(행궁)이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공간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좌전을 끼고 뒤쪽으로 나오니 소나무숲이 펼쳐졌다. 숲 입구의 안내판은 900m 앞에 수어장대가 있다고 가리켰다. 숲을 오르는데 땀방울이 어느새 이마를 적셨다.

조금 쉬어갈까 하는 생각이 들 찰나, 눈앞에 늠름함을 갖춘 수어장대가 나타났다. 이곳은 장수가 성 밖을 관측하고 휘하 군사를 지휘하던 누각이다. 그런데 사실 들어갈 수 없고, 오를 수도 없는 수어장대보단 그 옆 보호각에 더 눈길이 간다. 거기엔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보관돼 있다. 병자호란의 시련과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 후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뜻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영조가 이름 지은 것이다. 무망이라는 글귀 앞에 마음이 무거워져 웅장한 건물과 가슴까지 탁 트이는 전망이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어장대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나 있는 성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성곽길은 넘실대는 파도처럼 적당한 오름과 내림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덕분에 힘들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성 밖의 풍광을 감상하며 걸었다. 이윽고 길의 끝에 서문이 있었다.

“조선의 왕은 성을 나올 때 서문으로 나오라. 조선의 왕은 죄인이므로 정문인 남문으로 나올 수 없다.”

추위와 굶주림, 연이은 패배를 맛본 상황에서 결국 청에 항복하기로 한 인조(박해일 분). 그는 청의 황제 홍타이지의 명령에 따라 말에서 내려 서문을 통과한다. 곤룡포 대신 신하의 남색 옷을 입은 채. 처연한 그 모습에 백성과 신하들은 눈물을 흘린다. 몸서리쳐지게 춥던 날, 남문을 통해 산성에 들어올 때 자신이 서문으로 나갈 것이라 예상이나 했을까. 역사만큼이나 어둡고 좁은 서문에서 인조의 심정이 전해졌다.

서문

서문을 뒤로한 채 산성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출구가 가까워지자 식당과 커피숍이 나타났다. 등산객들은 차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면서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 광경 위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졌다. 남한산성 성벽에 핀 민들레꽃과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했던가. 남한산성에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내 살아남은 민초들이 현재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경건하게 느껴졌다.

광주=최문희, 사진=김덕영 기자 mooni@nongmin.com

 


 

영화 ‘남한산성’

인조 피난 이야기 담은 김훈의 원작 소설 재현

 

김훈 소설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조선의 왕 인조가 청나라의 침입을 피해 47일 동안 남한산성에 머물렀을 때의 이야기를 그렸다. 탄탄한 원작을 그대로 스크린에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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